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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탄생 10주년' BF인증, 왜 이렇게 허술할까

[취재파일] '탄생 10주년' BF인증, 왜 이렇게 허술할까

BF인증을 BF인증 답게 만드려면

배정훈 기자 baejr@sbs.co.kr

작성 2018.04.28 09:06 수정 2018.04.30 14:3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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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탄생 10주년 BF인증, 왜 이렇게 허술할까
● 대한민국 헌법 14조, 모든 국민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모든 대한민국 국민은 거주의 자유와 함께 이전의 자유, 그러니까 어디로든 옮겨갈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이 자유가 어떤 이에게는 참 가닿기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바로 보행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들이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보도 위를 걷는 것도,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타는 것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공건물을 이용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은 비장애인들에게 맞춰져 있으니까요. 휠체어 장애인에게 경사로 없는 계단은, 시각 장애인에게 점자블록 없는 길거리는 커다란 절벽이고 나침반 없는 황야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2008년 BF인증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BF는 Barrier Free를 줄인 것인데, 우리말로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이라고도 합니다. 말 그대로 장애인을 포함한 보행 약자들에 대한 장벽(Barrier)을 없앤 것을 인증한다는 겁니다. 제도 도입 이후 정부에서 지정받은 BF인증기관들은 2,750개의 예비인증과 본인증을 발부했습니다(2018년 2월 28일 기준). 2015년 7월 이후부터는 신축된 공공시설이나 건물에 대해 BF인증이 의무화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BF인증을 받은 곳이 많아졌으니, 장애인들의 이동권의 폭도 확 넓어졌을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 BF인증 받은 곳 가봤더니
장애인의 날, 장애인 시설 불편실제 BF인증 본인증을 최우수 등급으로 통과한 몇 군데를 가봤습니다. 실상은 참담했습니다.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좁은 화장실이 상당수였고, 일부 장애인 화장실에는 세면대가 설치되어 있지 않기도 했습니다. 서울의 한 구청에 설치된 시각장애인용 점자판은 음성안내버튼이 꺼진 채 방치돼 있었고, 사람들이 주로 드나드는 뒤편 출입구에는 점자블록마저 깔려 있지 않았습니다.

취재에 동행한 장애인들은 입을 모아 얘기했습니다. “이런 곳이 BF인증을 받았다는 것이, 그것도 최우수 등급으로 통과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맞습니다. 저도 처음엔 믿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BF인증제도를 조금 더 속속 살펴보니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너무 낮은 기준

후천적인 시각장애인 가운데는 점자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교육과정을 통해 체계적으로 점자를 익힐 기회 자체가 적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점자를 읽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안내장치’는 BF인증 기준 안내판 항목의 의무사항이 아닙니다.

장애인 화장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에게 충분한 넓이의 장애인 화장실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폭 1.4m, 깊이 1.8m만 되면 BF인증 기준을 맞출 수 있습니다. 보통 길이가 1미터가 넘어가는 전동휠체어는 들어가기조차 버거운 크기입니다. 척수장애인 등 손 사용이 비장애인에 비해 제한적인 장애인이 뒤처리를 깔끔하게 하는 데 필수적인 내부 세면대조차 BF인증 통과에 필수사항은 아닙니다.

BF인증은 94개 항목에 의거해 각 부문에 나뉘어 있는 배점을 합산해 점수가 매겨집니다. 288점 만점인데, 100점 환산 점수가 70점이 넘으면 인증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80점이 넘으면 우수 등급, 90점이 넘으면 최우수 등급이 주어집니다. 각 항목별 최저 기준을 반드시 충족해야 하긴 하지만, 앞서 설명한 것처럼 현실과 맞지 않은 최저 기준이 적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더군다나 특정 항목에서 점수를 잃는다 해도, 다른 항목에서 배점을 많이 받으면 최종 합산 결과 우수 등급, 더 나아가 최우수 등급까지도 받을 수 있습니다. 앞서 실제 취재과정에서 살펴본 어딘가 어설픈 BF인증 최우수 시설들이 ‘최우수’일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속사정이 있었던 겁니다.

-둘째, 애매한 배점 기준

BF인증 통과를 위한 채점표의 각 항목은 2개 혹은 3개로 나눠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장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하면 항목별 최고점인 3점을 받고 그게 안 되면 2.4점, 최저 기준만 충족시키면 2.1점을 얻는 식입니다. 하지만 최고점과 최저점을 가르는 기준이 어딘가 석연치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장애인 화장실 대변기 옆에 있어야 하는 손잡이가 ‘차갑거나 미끄럽지 않은 재질’이면 최우수 기준을 충족하고, 장애인 화장실 내 세면대가 ‘대변기 사용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으면’ 최우수 기준을 충족합니다. 차갑거나 미끄럽지 않은 재질이 뭔지, 대변기 사용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으려면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는 따로 적시돼 있지 않습니다. 평가하는 인증 기관의 내부적 기준에 따라 자의적인 점수 매기기가 이뤄질 개연성이 있는 겁니다.

-셋째, 인증기관 난립

현재 BF인증을 담당하는 기관은 한국장애인개발원, LH, 한국생산성본부인증원, 한국환경건축연구원, 한국교육녹색환경연구원, 한국장애인고용공단, 한국감정원 등 모두 7개입니다. 지난 2008년 BF인증이 처음 생겨날 때 2곳에 불과했는데, 늘어나는 수요를 감안해 10년 만에 5개가 더 지정된 겁니다. 그런데 각각 기관들의 상황이 참 천차만별입니다.

인증기관 별로 직원 수도, 맡은 업무량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직원 한 명이 처리하는 인증의 수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한국교육녹색환경연구원은 직원 1명당 5.33건(총 32건)의 BF인증을 발부한 반면, 같은 기간 한국생산성본부인증원은 직원 1명당 52.8건(총 264건)을 처리했습니다. 또, 한국감정원처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최우수 등급을 발부하지 않은 곳이 있는가 하면, LH처럼 현재까지 발부된 BF인증의 35.2%가 최우수 등급인 곳도 있습니다.

물론 인증기관에 따라 주로 맡는 시설의 종류가 달라 어느 정도의 차이는 발생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이렇게 편차가 극단적이다보니 과연 인증기관에 따라 발부하는 인증의 질이 균등할까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겁니다. 실제 한 관계자는 업계에 어떤 기관은 발부가 쉽고 어떤 곳은 어렵다는 소문까지 나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넷째, 부실한 사후 관리

일단 BF인증에 의거해 잘 지어진 건물이라도 사후 관리가 엉망이라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겁니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찾아간 서울의 한 종합사회복지관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휠체어 장애인 등 보행약자를 위해 설치된 주출입구 자동문은 전원이 꺼져 있었고, 장애인 화장실 내부 세면대는 수도꼭지가 떨어진 채 방치돼 있었습니다. 일부 직원들은 해당 시설이 BF인증을 최우수로 통과했다는 사실조차 잘 몰랐습니다. 이를 보여주듯 복지관 어디에도 BF인증을 최우수로 통과했음을 증명하는 팻말은 붙어 있지 않았습니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이런 심각한 상황을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2017년 8월 BF인증 시설 14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적정’ 평가를 받은 곳은 13곳에 불과했습니다. 전체 점검 시설의 90% 이상이 보완 조치 대상이었다는 겁니다.

5년이 기한인 BF인증에 대해 재인증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 역시 이런 부실한 사후 관리를 부추기는 대목입니다. 실제 서울 광화문 광장의 경우 2009년 BF인증을 받았는데 2014년 인증기간이 만료된 이후 재인증을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시각장애인용 점자블록이 부서져 있어도, 촉지도에 최근 새롭게 만들어진 시설이 반영돼 있지 않아도 해치광장 입구에 반짝이는 BF인증 팻말은 떼어지지 않았습니다.

● 누구나 이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
장애인 시설 불편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헌법에 명시된 어디로든 옮겨갈 자유에 대해 얘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BF인증의 취지, 공공시설 BF인증 의무화의 취지가 바로 헌법 정신에 오롯이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런 뜻이 제대로 반영되기 위해서는 BF인증이 ‘제대로 된’ 것이어야 합니다.
 
현실과 맞지 않은 인증 기준은 실사용자인 장애인을 포함한 보행약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제대로 다시 세워야 할 것입니다. BF인증 채점표에 있는 애매한 표현은 수정하거나 보완하고, 인증 기관별로 가지각색일 개연성이 크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인증을 표준화할 방책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인증 발부 후 사후 점검을 의무화하고, 만약 최초의 설계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면 인증 취소를 비롯한 ‘채찍’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BF인증은 문자 그대로 장애물 없는 인증이어야 하고, 최우수 등급은 말 그대로 가장 우수한 사례여야 합니다. 현재처럼 무늬만 BF인증, 무늬만 최우수여서는 보행약자들의 이전의 자유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할 겁니다. 결국 BF인증을 2년마다 번갈아가며 담당하는 보건복지부와 국토교통부가 헌법 정신을 제대로 살릴 주체가 돼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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