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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정말 마비됐어요?"하며 다리를 쓱…미투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리포트+] "정말 마비됐어요?"하며 다리를 쓱…미투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송욱 기자

작성 2018.03.28 15:03 수정 2018.03.28 17:2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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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정말 마비됐어요?"하며 다리를 쓱…미투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번져가고 있지만, 성폭력을 당하고도 미투를 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장애 여성과 이주 여성이 대표적인데요. 이들은 왜 똑같은 상처를 입고 끔찍한 기억에 시달리면서도 목소리는 내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오늘 '리포트+'에서는 성폭력 피해도 말하지 못하는 약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미투 사각지대
■ "그 사람은 웃고 사는데"…쫓겨날까 두려워 숨죽이는 사람들

중국에서 온 한 이주 여성은 SBS 취재진에게 17살이던 3년 전 끔찍한 일을 겪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아르바이트하던 식당의 주인에게 성폭행을 당한 겁니다. 주위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가해자를 법정에 세웠고 손해 배상 판결까지 받아냈지만, 가해자는 출소 후 잠적해 버렸습니다.
*그래픽
[중국 이주 여성]
"중국 사람이라서 제대로 신고하지도 못하고 그 사람은 아무 일 없이 웃고 계속 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진짜 너무 답답하고 속상하고…. 정신병원에도 1년 정도 있었어요. 약 먹고 치료받았고, 판결문 나올 때까지 체류비도 많이 들었어요." //
비슷한 피해가 잇따르자 정부는 이주 여성 성폭력 피해자들이 쉽게 신고할 수 있게 통역이 가능한 상담 전화를 신설하고 체류 자격도 문제 삼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주 여성이 한국 물정에 어두워 전화 상담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합니다.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강혜숙 씨는 "이주 여성 성폭력 피해자들의 언어 문제 그리고 성폭력에 대해 제대로 지원할 수 있는 이주 여성 전문 상담소가 절실하게 필요한 실정"이라며 "피해자로서 보호받고 체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 이주 여성들도 피해 사실을 이야기 할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정말 마비됐어요?"하며 다리를 쓱…장애 여성들의 눈물

장애 여성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지난 2016년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접수된 장애인 대상 성범죄는3,340건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기간 기소된 건수는 1,278건에 그쳐 기소율은 38.2%에 불과했습니다. 접수됐는데 처리조차 되지 않은 성범죄 사건도 83건에 달했습니다.
*그래픽
<장애인 대상 성범죄 기소 건수>
2013년 997건 가운데 447건 기소(기소율 45.3%)
2014년 1,236건 가운데 447건 기소(기소율 37.1%)
2015년 1,107건 가운데 384건 기소돼(기소율 33.5%)
기소율 감소 추세 (자료: 법무부)//
그나마 신고된 사건이 이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실제 피해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전문가들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장애인예술인협회 방귀희 대표는 SBS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장애 여성을 보면 여성이라는 생각보다 '저 사람은 함부로 만져도 괜찮구나'라는 생각을 먼저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장애와 여성이라는 이중 차별 속에 겪었던 일을 털어놨습니다.
항거불능
방 대표는 20여 년 전 유명 문인에게 "장애인도 성관계가 가능하냐"는 말도 들었습니다. 성적 수치심이 컸지만, 당시에는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 "미투에도 급이 있다?"…사회적 약자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야

지난 22일 서울 청계 광장에서는 성차별과 성폭력을 끝내자는 주제로 2018분, 약 33시간 반 동안 이어 말하는 ‘2018분 동안의 이어 말하기’ 행사가 있었는데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의 레티마이투 활동가는 성차별과 인종차별에 시달리며 이중으로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는 이들의 현실을 고발했습니다. 레티마이투 활동가는 "한국 여성들 사이에는 미투가 퍼졌지만 피해 지원 사각지대에 있는 이주여성들 사이에선 쉽지 않다"며 사회적 관심을 촉구했습니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외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성폭력이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을 겁니다. 성폭력 피해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미투 운동에서 또 다른 차별이 생기지 않도록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래픽
[SBS 심우섭 기자]
"사회적 약자들은 미투에도 급이 있다며 한숨만 내쉽니다. 그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 귀 기울이는 게 우리 사회에 던져진 또 하나의 의무입니다."
(기획·구성: 송욱, 장아람 / 디자인: 정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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