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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국GM '외국인 투자 지역'으로?…곤혹스런 GM의 한수

GM이 노리는 막대한 감세혜택, 우리 정부엔 난제 중 난제

박진호 기자 jhpark@sbs.co.kr

작성 2018.03.10 09:43 수정 2018.03.10 09:4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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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한국GM 외국인 투자 지역으로?…곤혹스런 GM의 한수
과연 가능할까 싶던 한국GM 회생협상이 거짓말처럼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최근만 해도 노사합의에 대한 희박한 전망, 약속했던 경영 실사를 놓고 중요자료 제출을 꺼리는 GM 측의 태도는 역시나 싶었다. 특히, 직원들의 희망퇴직금 등 구조조정 비용을 산업은행도 지분 비율대로 분담해야 한다는 요청이 우리 정부와 언론을 더 화나게 만들었다. '지원 없으면 미련 없이 가련다.' 식의 배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공적자금 투입에 예민한 반발 여론을 생각하면 어려워 보였다.

그 와중에 예상 못 했던 배리 엥글 美 GM 본사 총괄부사장의 재방한 소식이 7일 갑자기 들어왔고, 예상과 다른 보따리를 들고 온 것이다. GM 본사는 산업은행에 서신을 보냈다. 내용을 재해석하면, 먼저 한국 내 반발을 부른 '올드머니'에 대한 방침이 달라졌다. 경영 부실의 책임이 있는 한국GM의 본사 차입금 2조 9천억 원을 전액 투자금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대신 신규투자에는 한국 정부가 지분만큼 참여해달라고 했다. 신차 2종을 한국 공장에 배정하고, 미래 신제품의 디자인, 엔지니어링의 연구개발 기지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대주주의 책임 있는 역할'을 강조한 우리 정부의 3대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라, 일단 형식적으로는 신규 공적자금을 투입할 명분을 갖춰 준 셈이 됐다.

투명한 경영실사에 대한 GM의 약속이행과 산은이 투입할 자금규모가 중요해졌다. 배리 엥글은 8일 정부 면담에서 "한국GM의 희망퇴직 접수 규모가 예상보다 많다"며 구조조정 과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분위기를 한껏 띄우기도 했다. 

● GM, 인천시 등 지자체에 '외국인투자지역' 신청 움직임
 
주목할 건 또 다른 움직임이다. GM 인터내셔널이 한국 공장에 대한 신규투자와 관련해 한국GM 부평과 창원공장 일대를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해달라고 공식신청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다. 각각 인천시와 경남도에 제출해야 할 신청서에는 약 3조 원 규모의 신규투자 계획을 명시했는데, 만약 접수되면 인천시와 경남도는 GM 인터내셔널의 신청서를 검토해 주무부처인 산업부에 외투지역 지정을 의뢰하게 된다. 정부로 큰 공이 하나 넘어오는 셈이다. 형식상으로 정부는 GM이 낸 신규투자계획 규모와 적정성을 평가해 결론을 내리게 된다.

알고 보면 한국GM 공장지역의 외국인투자지역 지정을 놓고 정부의 분위기는 조금씩 변화해 온 것이 사실이다. 처음 GM사태가 불거졌을 때, GM이 한국 잔류 조건으로 외국인투자지역 지정을 요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정부 내 분위기는 '신규투자도 아니고 명백히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입장이 선명했었다. 하지만 대량 실직 위기와 같은 철수설의 부담이 커지자 '검토해 볼 수 있다'는 분위기로 바뀐데 이어, 이번엔 GM이 본격적인 신청절차에 착수한 것이다. 어느 정도의 교감이 없이 무작정 신청에 나설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정부 내부 정서의 변화 흐름이 주목된다.

'외국인투자지역'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외국 기업의 한국 투자를 늘리기 위해 도입됐는데, 외투지역에 입주한 외국기업은 파격적인 세금 감면 혜택이 주어진다. 소득세 및 법인세 5년간 전액 감면 후 2년 동안 추가 50% 감면, 관세 5년간 전액감면이 그것이다. 기업 입장에선 사실상 자유무역지대나 경제자유구역에 준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성사된다면 GM으로서는 횡재나 다름없다. 설비나 규모 면에서 최대 몸집의 외국기업인 GM이 누릴 세금감면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2002년에는 제도 활성화를 위해 제조업의 경우, 투자기준을 5천만 달러에서 3천만 달러로 낮췄고, 대형 외국기업은 외투지역으로 개별 지정할 수도 있게 했다. 이런 외국기업은 80개에 이른다.

● 구체적이고 분명한 지정 요건, 정부의 선택은?

첫 번째 문제는 외투지역 지정의 법적 요건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동차는 제조업인 만큼 '3천만 달러 이상 투자' 요건은 쉽게 충족될 전망이다. 문제는 '공장의 신설, 또는 기존 설비의 전면교체' 여부이다. GM이 만약 신차배정과 함께 투자에 나선다면 규모가 가장 크고 입지가 좋은 부평공장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운영 중인 설비를 전면 교체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정책적 판단으로 신차 배정에 따른 새 라인 설치를 전면 교체로 해석할 여지는 있다. 하지만 논란은 불가피하다.

두 번째는 묘하게도 외교적 문제이다. 지난해 12월, 세종시의 기획재정부에선 어처구니없는 소동이 있었다. 유럽연합(EU)이 다른 나라도 아닌 한국을 '조세회피처 블랙리스트'에 올렸던 것이다. 문제는 바로 이 '외국인투자지역'제도였다. 외국인에게 유리한 조세 제도를 적용하면서 OECD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존재하는 내외국인 차별제도로 지목된 것이다. 당시 정부는 외국인 세제혜택 감면제도를 손질해 투자 기업 간 차별을 없애겠다고 약속하고, 가까스로 블랙리스트에서 빠질 수 있었다. 한국GM을 외투지역으로 지정해 최대 7년간 세금감면 혜택을 주는 것은 EU 측에 내건 약속을 어기는 것으로 문제가 커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정상적으로 판단하면 있을 수 없는 결정이 된다는 지적이 벌써 나온다. 두 가지 한계에도 불구, 지정을 감행한다면 결국 떠나려는 GM을 붙잡기 위한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정책의 형평성을 버렸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결과적으로 게임이 끝나면 '모든 것이 GM의 시나리오대로 풀렸다'는 식의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은 정부의 오명이 될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엘리트 경제 관료들은 자존심이 상하고, 큰 고민에 처한 상황이다.

GM은 최근 한국 정부에 제안할 신규투자 계획과 구조조정방안을 로이터 등 외신을 통해 의도적으로 '리크(leak)'했다는 의심도 받는다. 사실 큰 결정의 대체적인 윤곽을 미리 흘려 시장의 반응을 떠보는 것은 미국의 글로벌 대기업들에겐 일종의 안전절차처럼 관행화된 면이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신규투자계획을 따져보면, 외투지역 지정과 관련된 요건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고려가 여기저기 엿보인다. 신차 배정도 그 연장선상인데, 사실 앞으로 다시 언론의 분석대상이 되겠지만 '신차'의 의미와 진정성이 도마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 자유무역구 확대로 GM 붙잡았던 중국
 
그럼에도 정부나 GM 입장에선 외투지역 지정이 전혀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항변을 할 수 있다. 먼저 국내투자 외국 기업 중에 매출과 고용규모에서 선두권인 GM이지만 별다른 혜택을 받지 못해왔다는 주장이다. 군산의 다른 외국기업과 달리, GM은 기존의 대우차를 인수했기 때문에 공장 설립에 필요한 토지 지원을 받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 당시의 '자유무역지역'이나 2008년 지정된 '새만금군산경제자유구역'에도 GM은 상당히 근접했지만 해당되지 못했다.

또 다른 주장은 GM이 공을 들여왔던 중국 사업장, 상하이 사업본부의 사례이다. 2013년 GM이 상하이의 해외사업본부를 싱가포르로 옮기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당시 중국 상하이시는 비상이 걸렸는데, 결국 중국은 '자유무역시험구' 면적범위를 4배 넘게 확장해 GM을 포함시키는 방법으로 이전설을 잠재웠다. 이 당시의 경험은 GM이 한국 철수설을 점화시키면서 한국공장의 외국인투자지역 지정을 압박하는 전략을 세운 배경으로 의심된다. 

여전히 협상은 진행 중이고, 정부와 산업은행의 원칙론은 변함이 없다지만,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간다. 한국GM의 희망퇴직 신청 규모는 예상보다 커서 엥글 부사장이'고무적'이란 평가를 내놓는 상황이다. 투명한 경영 실사는 우리 정부의 신규투자 명분을 위해선 반드시 해야 할 것인데, 이젠 GM이 양보한 무슨 조건이 된 느낌이다. 한국에 사업장을 남겨두겠다면 신차배정과 신규투자는 필수적인 것이다. 2조 9천억 원 차입금의 출자전환 계획은 반길 일이지만 그동안의 '이익 빼돌리기' 의혹은 짚어야 할 대목이다. 

이대로 순탄하게 논의가 진행되면 산업은행은 신규투자에 지분만큼 참여할 가능성이 커진다. 5천억 원 이상의 자금을 새로 투입해야 한다. GM 직원들과 협력업체들까지 15만 여명의 생계를 지켜야 할 부담이 있는 우리 정부도 선택을 해야 한다. 외투지역 지정은 글로벌 시장에서 투자와 철수를 반복하며 꾸준히 실속을 챙겨왔던 GM의 '꾼의 한 수'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