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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3.1 운동, 백운대 그리고 독립운동 유적

[취재파일] 3.1 운동, 백운대 그리고 독립운동 유적
북한산 정상 백운대(836m)에는 사시사철 태극기가 휘날립니다. 북한산 탐방객들은 백운대 태극기를 이정표 삼아 산행합니다. 맑은 날에는 남쪽으로 비봉능선·응봉능선·의상능성, 북쪽으로 도봉산 신선대와 사패산에도 씩씩하게 휘날리는 백운대 태극기를 볼 수 있습니다. 

태극기는 북풍이 몰아치는 겨울에도, 태풍이 몰려오는 여름에도 변함없이 펄럭입니다. 눈보라와 폭풍우 속에서도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백운대 태극기는 수명이 매우 짧습니다. 강풍을 견디지 못하고 찢어지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강한 계절에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태극기를 갈아줘야 합니다. 북한산 인수대피소 직원들이 비바람에 훼손된 태극기를 교체하는 일을 담당합니다. 태극기가 찢어져 방치되면 탐방객들 호통이 빗발칩니다. 그때마다 새 태극기를 들고 백운대 정상으로 뛰어 올라가야 하는 그들의 수고로움도 만만치 않습니다.
3.1 독립만세운동 암각문
백운대를 상징하는 이 태극기 깃발 아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생생한 역사 현장이 남아 있습니다. 3.1 독립만세운동을 담은 암각문입니다. 암각문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 순으로 정자체(正字體)로 작성돼 있습니다.

獨立宣言記事 (독립선언기사)
己未年 二月十日 朝鮮獨立宣言書 作成 (기미년 2월10일 조선독립선언서 작성)
京城府 淸進町 六堂 崔南善 也 (경성부 청진정 육당 최남선 야)
庚寅生 (경인생)

己未年 三月一日 塔洞公園 獨立宣言 萬歲導唱 (기미년 3월1일 탑동공원 독립선언 만세도창)
海州 首陽山人 鄭在鎔 也 (해주 수양산인 정재용 야)
丙戌生 (무술생)

1919년 2월 20일 경성 청진정(지금의 청진동)의 최남선이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1919년 3월 1일 해주 수양산 출신의 정재용이 탑동(지금의 탑골) 공원에서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운동을 이끌었다는 내용입니다. 암각문 위아래 네 모서리에 각각 한 자씩 새긴 敬天愛人(경천애인)까지 포함하면 모두 73자입니다. 가로 1.5m, 세로 2.7m 면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인 정재용 선생이 3.1 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1920년대 중후반에 직접 새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54년 파고다 공원에 함께 방문한 정재용(좌), 최남선(우)
정재용 선생은 1886년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했습니다. 그는 1919년 2월 19일 해주에서 경성으로 왔고, 3.1 운동 전날 밤 서울역에서 100장의 독립선언서를 원산교회로 보내고, 한 장을 갖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3.1 운동 당일 민족 대표들이 종로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하는 동안 탑동공원에 모인 군중들 앞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독립선언서를 낭독해 3.1 운동의 불을 붙였습니다. 1920년 1월 20일 일본 경찰에 검거돼 평양감옥에서 2년6개월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1976년 별세(91세),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현재 육안으로 암각문의 전문을 알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00 宣言記事
己未年 二月十0 朝鮮獨立0言書 作成
000 000  六0  000 也
000


己未年 三月一日 塔洞公園 獨立宣言 萬歲導唱
00 00山人 000 也
000


0으로 표시한 부분은 마모돼 사라졌습니다. 나머지 글자도 온전하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3.1 독립만세운동 암각문
암각문은 100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백운대를 강타하는 강력한 비바람에 닳고 깎여 나갔습니다. 탐방객들이 신고 오는 아이젠에 밟혀 뭉개지는 경우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백운대 정상에 이런 역사 유적이 있는지 인식하지 못하는 탐방객도 적지 않습니다. 궁여지책으로 2010년에 국립공원 측이 3.1 운동 암각문 표지판을 세우고, 등산객들이 밟지 못하도록 통나무 펜스도 설치했습니다. 그래도 폭설과 폭풍우 등에 따른 자연적인 훼손은 막을 수 없습니다.

북한산 백운대는 태극기와 3.1 운동 암각문이라는 만세운동의 실제 흔적이 함께 있는 유일한 역사 문화 유적으로 꼽힙니다. 맑은 날 백운대에 올라 서울 시내를 바라보는 풍경은 오래도록 기억될 절경입니다. 때문에 날씨 좋은 휴일에는 하루에만 만 명 이상이 백운대를 찾는다고 합니다. 암각문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탐방객들이 누려야 할 호사를 뺏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귀중한 역사 유적이 연기처럼 사라져 가는 현실을 방치해서도 안 될 일입니다.

내년 3.1 운동 백주년 사업을 기획하는 정부 기관과 민간단체의 움직임이 부산합니다. 그 가운데 상징성 높은 백운대 3.1 운동 암각화를 영구 보존하는 대책이 포함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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