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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립공원 음주 금지, 과태료 부과가 능사일까

강청완 기자 blue@sbs.co.kr

작성 2018.03.08 10:01 수정 2018.03.08 14:2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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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국립공원 음주 금지, 과태료 부과가 능사일까
● 대청봉과 '21년산 양주'의 추억

대학교 2학년이던 약 10년 전, 친구 한 명과 무작정 설악산 대청봉을 오른 적이 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무런 배경지식도 장비도 없이 배낭 안에 랜턴과 컵라면 하나 달랑 넣고 씩씩하게 산을 올랐죠. 어찌어찌 대청봉까지 가기는 했는데 날은 저물어 오고, 배는 고파서 컵라면을 꺼내니 아뿔싸, 물이 없습니다. 설악산 같은 높은 산, 그것도 국립공원을 찾을 때는 물과 버너를 가져가서 직접 물을 끓여야 하는 걸 모르고 뜨거운 물 나오는 정수기라도 있을 줄 알았던 거죠.

다행히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생라면을 뜯어먹어야 하나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저희를 마음 좋은 등산객분들이 구해주셨습니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주시는 것도 모자라 밥까지 말아주고, 불고기까지 넉넉하게 나눠주십니다. 연신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배를 채우고 있는데 한 분이 금속 플라스크를 꺼내더니 갈색빛이 나는 액체를 종이컵에 따라 주십니다. 네, 그게 제가 처음 마셔본 '발X타인 21년산'이었습니다. 기껏해야 한 모금이었지만 지금도 그 맛이 생생합니다.

● "국립공원서 술 마시면 과태료 5만 원"

저에게는 추억이지만 앞으로는 그런 맛도, 멋도 즐기기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새롭게 바뀐 자연공원법 시행령이 적용되는 오는 3월 13일부터 자연공원 내 음주행위가 전면 금지되기 때문입니다. 국립공원은 물론이고 도립, 군립공원 내 산 탐방로, 정상 근처는 물론 대피소까지 모두 포함입니다. 사실상 대한민국의 어지간한 산은 다 해당된다고 봐야겠죠. 만약 술을 마시다 적발되면 한 번은 5만 원, 그 다음부터는 10만 원의 과태료를 물게 됩니다. (다만 처음 6달은 계도기간이기 때문에, 실제로 과태료를 부과하는 건 6달 뒤인 9월부터입니다)

아마 산을 즐겨 찾는 분들께는 상당히 관심이 갈 만한 소식일 것 같습니다. 사실 가끔 산을 오르다 보면 정상 근처나 탐방로 주변 평평한 바위 위에서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분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주말 산악인들 가운데는 산도 좋지만 곁들여 마시는 낮술 때문에 산을 찾는다는 분들도 꽤 있으니 말이죠. 이런 관심을 반영하듯 4~50대 중년 위주로 구성된 저희 보도국 편집회의에서도 이 소식을 둘러싸고 꽤나 뜨거운 관심이 집중됐다는 후문도 있었습니다.
국립공원, 음주 과태료, 5만원● "위험하니 금지해야" VS "국민 정서 안 맞아"

시민들의 의견을 직접 듣기 위해 북한산국립공원을 찾았습니다. 역시나, 반응은 둘로 엇갈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술을 마시면 위험하니 금지하는 게 맞다", "술을 마시다보면 어쩔 수 없이 쓰레기가 나오게 되니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술을 마시고 왁자지껄 떠드는 게 시끄럽고 보기 좋지 않다는 분들도 꽤 계셨습니다.

찬성보다는 적지만, 반대 의견도 있었습니다. "무슨 재미로 산에 가라는 말이냐" 하는 의견 말고도 생각보다 꽤 많은 분들이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남에게 피해만 안 주면 되지 법으로 강제할 부분이냐는 거죠. 개중에는 '단속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넓은 산에서 술 마시는 걸 제한된 인력으로 어떻게 일일이 단속할 수 있겠냐는 의견이었습니다.

▶ 산에서 술 마시면 과태료 5만 원…올해 9월부터 시행 (03.06)

이렇게 찬반이 엇갈리는 와중에도 공통점은 있었습니다. 하나는 의견이 어떻든 다들 산에서 술 한 잔씩 해봤다는 거고, 또 하나는 이렇게 제도가 바뀌는 지 아는 분이 거의 없었다는 겁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뉴스로 알려드리는 것이겠지만, 취재진이 만난 시민 가운데서는 "갑자기 왜?" 하고 여쭤보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 안전사고 때문이라는데 '5% 수준'…"산행문화 개선 차원"

법 개정 취지에 대해 주무부처인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안전사고 예방'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넘어지거나 다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지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6년 동안 국립공원 내에서 음주로 인한 안전사고가 64건 발생했고, 이 가운데 사망사고는 10건에 달했다고 밝혔습니다.

안전은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즐겁기 위해 산을 찾는데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니까요. 다만 6년 동안 안전사고 64건이라는 수치는 그리 많은 건 아닙니다. 같은 기간 국립공원 내 안전사고는 1,328건 발생했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음주로 인한 안전사고는 전체 사고 가운데 5% 수준입니다. 물론 5%의 안전사고도 줄이고 예방해야 마땅합니다만, 법 개정의 주요 이유라고 들기에는 약간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담당 직원에게 "이렇게 바뀌는 이유가 안전사고가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많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라는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면 "늘어나는 추세냐" 하고 물었더니 "드문드문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음주로 인한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가 물었더니 "민원이 많지는 않다"고 답했습니다.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설악산 첫 단풍이에 대해 국립공원관리공단 환경관리부의 민웅기 차장은 "안전사고도 중요하지만 산행 문화를 바꾸고자 하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밝혔습니다. 안전사고가 심각할 만큼 많거나 민원이 잇따르는 것도 아니지만, 조금 더 성숙하고 건강한 산행 문화를 만들어가자는 차원이라는 겁니다. 술을 마시고 기분 좋게 어울리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자연을 즐기고 감상하는 쪽으로 문화를 바꿔 나가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습니다.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산 이곳저곳에서 아무렇게나 담배를 피거나 취사를 하고 자연을 훼손하는 풍경이 흔했지만 지금은 확 바뀌었듯이 말이죠. 물론 그 과정에서 '과도한 규제'라거나 국민 정서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충분히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라고 민 차장은 답했습니다.

사실 이번 법 개정의 출발은 지난해 7월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경기 의왕·과천)이 발의한 자연공원법 개정안입니다. 원안은 더 강력했습니다. 자연공원 내 모든 지역에서 이뤄지는 음주는 20만 원, 흡연은 200만 원까지 과태료를 물리는 내용이었습니다. 법안이 상임위를 거쳐 국회 본회의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수정됐고 지난 연말 본회의에서 결국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그리고 주무부처인 환경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보완작업을 거쳐 지금과 같은 형태의 개정안이 적용된 겁니다.

● 일단 과태료부터? 세심한 홍보와 배려 아쉽다

글의 첫머리에서 '대청봉의 추억'을 이야기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산에서 술을 마시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산행 문화를 바꾸자는 취지에도 적극 공감합니다. 다만, 법 적용 과정에서 드러난 국회와 정부의 방식에는 아쉬움이 조금 남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랫동안 내려져 온 관행과 문화를 바꾸는 데는 반론과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안전사고 예방과 산행 문화 개선이라는 바람직한 취지를 감안하더라도 '국민 스포츠'라는 등산의 위상(?)을 생각하면 보다 적극적인 홍보와 여론 수렴의 과정이 필요했다는 생각입니다. 최소한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 하나만 돌렸어도 새 법이 더 힘을 받고 홍보가 매끄럽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굳이 이런 염려를 하는 이유는 당분간 어쩔 수 없이 현장에서 빚어질 혼란 때문이기도 합니다. 단속은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이 순찰을 돌면서 음주 현장을 적발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만 행정 지도이기 때문에 음주 측정을 한다거나 짐을 뒤지거나 할 권한은 없습니다. 생수병에 술을 담아 와서 몰래 마시는 행위까지 단속하겠다고 했지만, 그 과정에서 단속원들이 겪을 고충이나 등산객들과의 실랑이도 불가피해 보입니다. 단속 인력을 감안하면 실효성 면에서도 여전히 논란이 예상됩니다.
등산객무엇보다 충분한 홍보나 의견 수렴 과정 없이 과태료나 벌금으로 무언가를 바꾸고자 하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일 뿐 아니라 지금의 국민 의식 수준에도 맞지 않습니다. 단시간에 강력한 정책 효과를 발휘하려면 일정한 페널티를 부과하는 게 가장 확실하다지만, 매번 이런 방법을 택할 수는 없을 겁니다. 몇 년 전에는 소방방재청이 집 앞 눈을 치우지 않으면 최대 1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침을 추진했다가 거센 여론의 반발로 보류한 적도 있습니다. 그때도 문제의식은 같았습니다. 정부가 제대로 된 설명이나 캠페인 한번 없이 국민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싫은 소리를 늘어놓았지만 이번 개정안 시행으로 보다 성숙하고 가족적인 산행 문화, 또 지금보다 조용하고 깨끗한 환경이 조성되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산을 좋아하는 시민의 입장에서도 그렇습니다. 한 가지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정책의 결정과 목표만큼이나 그 과정도 아름다웠으면 하는 겁니다. 조금 품이 들더라도 시민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이해를 구하는 것이 바른 방향일 겁니다.

** 자연공원법 시행령 개정 Q&A **
(본문과 중복되는 내용이 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따로 실었습니다)


Q. 산 전체에서 음주가 금지되나?
A. 정확히는 자연공원 (국립·군립·도립공원) 내 대피소 및 탐방로, 산 정상 지점 등 공원관리청이 공고하는 지역에 한해 음주가 금지됩니다. 이렇게 보면 사실상 산 전체라고 볼 수 있지만 일률적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라 각 공원관리청에서 어떻게 지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사고 발생가능성이 높은 고지대 위주로 금주 구역을 지정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공단 황보정도 계장은 "술을 드시더라도 사실상 산행을 마치고 낮은 곳으로 내려오셔서 드시라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Q. 대피소 취사구역에서도 술을 마실 수 없나?
A. 위 설명처럼, 공원관리청에서 지정하는 구역에 일반적으로 대피소가 포함되기 때문에 지정된 대피소에서는 취사구역이라도 술을 마실 수 없습니다.

Q. 언제부터 금지되나?
A. 3월 13일부터 새 개정안이 시행되지만 6개월은 계도기간이기 때문에 실제 과태료를 무는 건 2018년 9월 13일부터입니다.

Q. 과태료는 얼마?
A. 1번 걸리면 5만 원, 2번, 3번 이상부터는 10만 원으로 모두 같습니다.

Q. 단속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
A. 아직 완벽히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 산하 관리소 직원들이 공원 내 구역을 순찰하며 음주 현장을 적발하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예전에 산불 예방 차원에서 국립공원 입구에서 라이터 소지 여부를 확인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방식으로 검사하지는 않습니다. 행정 지도이기 때문에 음주 측정이나 강제 수색이 이뤄지지도 않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등산객들의 협조를 필요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