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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투'가 그저 폭로에만 그치지 않도록

박하정 기자 parkhj@sbs.co.kr

작성 2018.03.06 10:49 수정 2018.03.13 14:2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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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미투가 그저 폭로에만 그치지 않도록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 열풍이 거셉니다. 현직 검사가 조직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며 TV 인터뷰를 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용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함께 나섰습니다. 검찰뿐 아니라 문학, 연극, 영화, 학계까지 폭로가 잇따랐습니다.

폭로의 대상은 대체로 유명인이었습니다. 대중 모두가 이름을 들었을 때 고개를 끄덕일 만큼 아는 사람은 아니더라도, 나름의 능력을 인정받아 그 분야에서 권위라는 것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자리를 내려놓고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반성하고 자숙하겠다는, 흔하다면 흔한 사과문이 줄을 이었습니다. 어쨌거나 그런 방식으로 그들은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누군가의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권위는 어떨까요. 밥벌이를 하기 위해 우리는 직장에 다니고 그곳의 권력관계 속에서 상사 혹은 다른 구성원을 만납니다. 그중에서도 상사가 성희롱, 성추행 혹은 성폭행을 저지른다면 피해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명확한 권력 관계 속에서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고 또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여기 그런 일을 겪었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A 씨는 지난 2016년 8월 한 언론사에 취업했습니다. 기자로 일하던 A 씨는 입사한 그달부터 상사였던 편집국장에게 폭행과 성희롱, 성추행 등을 당했다고 합니다. 편집국장이 사무실에서 자신에게 갑자기 다가와 양손으로 어깨를 짓누른다거나 양쪽 집게손가락으로 허리를 찌르고, 업무상 이어진 술자리에서는 소주병을 들어 팔을 때리거나 이로 팔을 깨물기도 했다는 게 A 씨 설명입니다.

또 '내 셋째 아이를 낳아 달라'는 등의 성희롱성 발언과 함께 음담패설도 일삼았고 A 씨는 그때마다 편집국장에게 그러지 말라는 말을 거듭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A 씨는 지난 여름휴가 이후 갑작스럽게 면직 통보를 받았고 결국 고용노동부 서울서부고용노동지청에 상사의 폭행과 성희롱, 성추행 건에 대해 진정을 넣게 됐습니다.

[A 씨]
"저는 근로감독관이 피해자의 편에 서서 시시비비를 명백하게 가려줄 줄 알고 갔었습니다. (중략) 그런 일이 있으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는데 해리성 장애 진단까지 나왔고 이런 걸 보면 남아 있는 친구들이 자신들이 피해자이면서도 폭력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있다 보니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미쳐서 사실 그냥 경찰에만 고소한 걸로도 끝날 수 있는 문제였지만 고용노동부까지 할 때 그냥 확실하게 하자 해서 고용노동부까지 제가 문을 두드렸던 건데…."

[취재파일] '미투'가 그저 폭로에만 그치지 않도록진정에 이은 첫 번째 조사를 위해 근로감독관과 마주했던 자리에서 A 씨는 아래와 같은 말을 듣게 됐습니다.

[감독관과 A 씨 대화 녹취]

감독관 : 우리 같은 경우는 뭐 메이저 (언론사)만 다뤄서 그런지 몰라도….

A 씨 : 메이저에서 그렇게는 안 하고요.

감독관 : 아니 우리가 조중동이라든가 KBS, MBC 이런 메이저들하고만 얘기해봐서 저거인지 몰라도 이런 무슨 우리 같은 경우 지방지 있잖아. 지방신문 ○○일보니 이런 것도 우리 신문으로 치지도 않았거든. 지들은 뭐 껄떡거리고 와 가지고 아 취재 어쩌고 무슨 지방지. 나 참 이건.

A 씨 :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어가지고 언론이 우후죽순하다 보니까. 이 사람이, 가해자가 ○○○○, ○○○○ 출신입니다. 그때도 갑질 엄청 많이 했었다고 다른 ○○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중략)

A 씨 : 그리고 성희롱 부분이 또 있는데요. 자기 아들들이 목욕 후에 나체로 돌아다닌다고 하면서 *** **** 흔들고 다닌다 이런 말을 한 달에 5~6차례….

감독관 : 이거 뭐 던지지 마세요. 막 던져 가지고 그 저거 또.

(중략)

A 씨 : 사실상 근무를 하면서 사주한테 내용증명 보내는 건 쉽지가 않습니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으면 특히 때리지 말라는 말조차도 어린 후배들은 못 했고요. 그냥 고스란히 맞았습니다, 후배들.

감독관 : 왜냐하면, 우리도 감독관이기 이전에 우리도 월급 받는 사람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건 아는 데 나름대로 참고 저거 한 것도 도가 있고 그리고 특히 언론 기자라고 하면 상위, 깨인 사람 저거인데 이런 얘기대로라고 하면 상식 이하의 저거인데 이걸 갖다가 한 1년 가까이 저걸 했다? 이게 누가 상식적으로. 무슨 옛날 70년대 구로공단 여공들도 아니고.

(중략)

감독관 : 근데 내가 배부른 소리인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막말로 쓰레기 신문사 저기 그건데

A 씨 : 네, 맞습니다. 쓰레기 신문입니다.

감독관 : 쓰레기 신문사, 쓰레기 거기에 1년 동안 다닌 건 뭐냐는 얘기에요.

A 씨 : 같이 쓰레기가 되는 거겠죠, 참았으니까.


정의당 이정미 의원은 지난해 10월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사례를 언급하며 근로감독관의 전문성 부족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직장 내에서 해결이 안 돼 고용노동부의 문을 두드리는 건데, 이렇게 오히려 모욕을 주면 누가 무서워서 성희롱 사건을 신고하겠느냐는 거였습니다. 이 의원은 해당 근로감독관을 조사해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징계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4개월여가 지난 현재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방고용노동지청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감에서 문제가 제기된 뒤 해당 근로감독관과 관련 담당 과장이 함께 의원실을 찾아 경위를 설명했고 해당 감독관은 이후 교육을 받았다면서, 당시 이런 발언이 징계 사유까지는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담당 부서 과장이 A 씨에게 사과했다고 말했습니다. 해당 근로감독관은 여전히 A 씨의 사건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어떤 맥락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이냐고 묻는 기자에게 감독관은 "메이저급 언론이라고 하더라도 최근엔 기업들에 갑질을 하지 않는데 작은 언론사에서 갑질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뜻이었다"면서 "피해자 진술이 사실이라면 그건 정말 회사에서 쓰레기 같은 짓을 한 거 아니냐, 그런 정도의 회사에 왜 이렇게 오래 1년 정도 되도록 그렇게 있었느냐"는 뜻에서 한 말이지 모멸감을 주려는 게 아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그럼에도 피해자가 그런 불쾌함과 모멸감을 느꼈다면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기관 차원에서 관련 담당 과장이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정미 의원이 이날 국정감사에서 언급한 사례는 하나 더 있었습니다. 한 중견기업에 경력으로 입사했던 B 씨는 같은 팀에서 일을 함께 하던 상사에게 성희롱 발언을 거듭 들었다고 했습니다. 해외 출장 도중 있었던 업무상의 자리에 대해 '출장을 보내놨더니 법인장하고 술 마시고 놀아났다', '네가 너무 예뻐서 이렇게 입고 오면 내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일하기가 힘들다' 고 말하는가 하면 여성의 가슴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함께 업무를 봐야 하는 상사의 발언과 행동에 B 씨는 불쾌함을 느꼈고 상사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상사는 사과하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B 씨는 인사팀장에게 문제를 알렸지만 돌아온 건 오히려 '경력직(B 씨)의 조직 부적응 문제'라는 답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B 씨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회사에서 인정되지 않았던 상사의 성희롱은 이곳에서 성희롱으로 인정됐습니다. 회사에는 가해자인 상사를 징계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사실이 알려진 뒤 회사 내 다른 동료가 B 씨에게 한 말이 B 씨에게는 또 한 번의 피해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남자에게 애교 부려서 승진한다'거나 '너 같은 여자 어떻게 되는지 너무 많이 봤다'는 류의 비난이 그것이었습니다.
[취재파일] '미투'가 그저 폭로에만 그치지 않도록[B 씨]
"그게 전형적인 2차 가해였던 것 같아요. 성희롱 피해 상황에 있는 여자를 보면서 성희롱 유발한다, 나는 성희롱을 안 당했는데 쟤가 성희롱을 당하는 것은 여자가 처신을 잘못하고 있는 거고…. 그다음에 남자 상사의 성희롱을 남자 상사의 관심처럼 이야기를 그렇게 인식하면서 그 성희롱 상황을 마치 그냥 남녀 사이처럼 표현하고 소문을 내고 이러는 것들이… (중략) 노동청 근로감독관이 저한테 '가족한테 이야기를 했나'라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어떤 말씀이시냐고 여쭤봤더니 '가족한테 상의를 해라', '나 같으면 문제를 이런 식으로 해결하지 않을 거다'라고 하시고 그다음에 긍정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우니 진정을 취하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계자 역시 기자에게 이정미 의원실에 가 사건 경위를 설명했고 해당 근로감독관에게 주의 조치 차원에서 교육을 시켰다고 설명했습니다. 해당 근로감독관은 당시 문제가 됐던 B 씨 동료의 발언이 "B 씨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이 많다, ○○○(B 씨에게 성희롱을 한 것으로 인정된 남자 상사)와도 너무 가깝게 지내지 않는 것이 좋다, B 씨의 옷차림과 행동에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여자는 조심할 부분이 있다" 등이었는데 이런 내용들을 실제 조사한 결과 관련 법규에 의거해 성희롱으로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취하 여부를 두고 변호사뿐 아니라 가족과도 상의하라는 뜻에서 말한 것이지 진정 자체를 문제 삼은 건 아니었으며 진정을 취하하라고 권유하거나 종용한 적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은 우리 일상에 그만큼 가까이 있습니다. 특히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문제가 되는 행동이나 발언을 할 경우 그 권력관계 때문에 하급자이자 피해자는 문제 제기조차 하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직장 내 성희롱을 금지하고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남녀고용평등법은, 성희롱을 한 회사 구성원을 징계하지 않거나 피해자에게 도리어 불이익을 주는 경우에 그 사업주에게 과태료를 내게 하거나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성희롱이나 임금 체불 등 노동 현장에서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의 상담을 받고 있는 서울여성노동자회의 황현숙 부회장은 "성희롱 피해자들이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했을 때 회사에서는 '회사를 고발했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업주에 대한 책임을 묻는 법 규정을 현장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겁니다. 황 부회장은 그러면서 "회사에 대해 이렇게 (고발을) 하는 직원을 받을 수 없다고 보는 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진정을 하고 난 뒤 회사에서 받는 직·간접적인 압력이 2차 피해일 수 있다며, 분위기나 심리적인 압박으로 인해 진정을 냈다가도 그것을 유지하지 못하고 취하하는 사례들도 많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여성노동자회 황현숙 부회장고용노동부가 집계한 직장 내 성희롱 신고사건 현황을 살펴보면 2014년 519건, 2015년 522건, 2016년 556건, 2017년 728건으로 매년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행정종결(즉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을 바로 사업주가 이행해 사건이 마무리가 되거나-예컨대 회사에서 성희롱 가해자에 대한 징계를 하지 않고 있다가 노동청의 징계명령을 받은 뒤 징계를 한다거나-, 성희롱 사건으로 인정되지 않거나 피해자가 진정을 취하하는 등으로 인해 사건을 특별한 조치 없이 마무리하는 것) 건수는 각 418건, 405건, 456건, 556건으로 매년 전체 신고 건수의 7~80%에 해당합니다.

이 단계에서 사실 관계가 잘 밝혀져 문제가 순조롭게 마무리될 수도 있지만, 황 부회장은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들이 보다 전문성을 가지고 사안에 대해 조사하고 진행할 수 있도록 전문 근로감독관을 배치하고 전문가를 포함해 (성희롱 여부) 판단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고용노동부도 임금 체불 등이 아니라 직장 내 성희롱 문제만을 전담하는 전문성이 있는 근로감독관을 올해 하반기까지 일선 청에 배치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사내에서 있었던 피해를 사내 구성원의 신분으로서 외부에 알려 해결하려는 시도가 자신의 SNS 등을 통해 미투를 외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는 건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그 둘 사이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나 그 사내 구성원이 비정규직이거나 계약직, 파견직이라면 이런 문제 제기가 곧바로 자신의 일자리 그리고 생계와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더욱 어려움이 큽니다.

왜 용기를 내지 않았냐고 질타하기보다는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되어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미투 운동으로 일컬어지는 용기 있는 폭로가 그저 깜짝 폭로에만 머물지 않으려면, 그리고 폭로 줄 잇기에만 그치지 않으려면, 그 후속 처리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처럼 직장 내 성희롱 등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밟도록 되어 있는 법적·제도적 조치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