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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레진 코믹스의 블랙리스트 이메일 공개…'갑질 기자' 등극

[취재파일] 레진 코믹스의 블랙리스트 이메일 공개…'갑질 기자' 등극
● 블랙리스트 관련 메일 공개
레진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
지난 12월 7일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번진 이른바 '레진 사태'는 급기야 지난 정권에서 벌어졌던 작가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이어졌다. 레진에서 작품을 연재했던, 또 현재 연재를 하고 있는 여러 작가들을 만나고 레진의 해외 에이전트들을 취재했다. 몇몇 작가들의 계약서를 구해 분석하는 과정에서 '사측에 찍혀 힘들어하는' 작가들의 사연을 접했다. 또 이 사태를 앞서 취재하기 시작한 기자들 몇 명을 따로 만나 사실관계에 대해 설명도 듣고 조언도 구했다.
레진관련 일요시사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의 기사 '[단독]레진코믹스 블랙리스트 추적' 은 지지부진한 양측의 줄다리기를 정리한 대단히 의미 있는 기사였다. 이 기사를 쓴 기자를 통해 제보자에게 연락했고 감춰져있던 블랙리스트 세부 내용을 8뉴스를 통해 공개하는 데 허락을 받아 이메일 사본들을 두 차례에 걸쳐 전달받았다. 이후 입수한 이메일이 레진 내부에서 실제로 오간 '진품'인지를 수신자와 발신자의 신원 취재를 비롯해 다양한 경로를 통해 검증하고 확인을 마쳤다.
레진 보도 캡쳐
지난 11일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처음 세상에 알린 SBS의 보도가 나간 뒤 레진 측은 SBS가 공개한 내용이 회사의 내부 이메일이 맞다고 인정했지만 실제로 블랙리스트 같은 작품 프로모션 등의 편파 운영은 없었다며 앞뒤가 맞지 않는 모호한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곧이어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는 지난해 9월 내놓았던 웹툰표준계약서를 보완하고, 유료 플랫폼의 웹툰 작가 처우 보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개정해 이르면 오는 6월쯤 내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 단독 가로채기? 갑질 기자?

문화과학부에서 출판과 대중문화를 모두 담당하는 기자로서 적절한 시기에 나름대로 의미 있는 보도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후 아침에 일어나보니 '중소매체의 단독기사를 가로채 갑질을 하는 기자'가 되었다.
미디어스 기사
<미디어스>는 'SBS 중소매체 단독 가로채기 갑질' 기사에서 SBS와 일요시사 두 언론사를 마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하청관계처럼 표현하며 '기술 탈취'나 '가격 후려치기'도 아니고 밑도 끝도 없이 「SBS가 갑질하는 대기업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썼다.

해당 기자는 심지어 타사의 기사를 베낀 뒤 '단독'을 달고 출고하는 상황을 설정하고 데스크와 담당 기자의 논의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기라도 한 듯 대화체로 묘사하는 상상력까지 발휘했다.
미디어스 기사
<미디어스> 기사가 가장 크게 문제삼는 건 '왜 단독이라는 표시를 했느냐' 하는 것이다. 일요시사가 먼저 보도한 사안을 보도하면서 '단독'이라는 표시를 한 것을 모든 비난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SBS 보도에는 이전 보도에 없던 내용들이 있다. 먼저 SBS 보도는 블랙리스트 논란의 실체가 된 증거물을 처음 공개했다.

일요시사 기사에는 내용 설명으로 소개된 것을 직접 실물 화면으로 내보냈다. 계약조건 변화 전후로 두 종류의 웹툰 연재 계약서를 각각 입수해 계약서 전문 변호사를 찾아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는 일방적 계약 조건을 밝혀낸 것 역시 중요한 SBS만의 취재 내용이었다.
레진 보도 캡쳐
하지만 <미디어스>는 이메일 문건의 내용이 12월 다른 매체에서 단독으로 보도한 것과 같다는 이유로 결국 기사 베끼기라고 주장했다. 만약 타사 기자들을 통해 전해 듣고 이를 통해 제보자와 접촉해 의미 있는 결과를 내놓는 경우에도 절대로 단독 보도라고 할 수 없다면 큰 사건이 진행 중일 때 추가적인 내용을 취재해서 단독이라고 보도하고 인정받은 과거의 수많은 사례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당 기사에 인터뷰가 등장하는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의 최진봉 교수는 "그 정도의 의미 있는 영상을 처음 공개했으면 단독으로 문제가 없다"며 "그저 대형 언론사가 인터넷 매체의 기사를 그대로 옮긴 뒤 단독이라고 하는 예전의 일부 사례를 비판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미디어스> 기자가 전화해 "한 언론사가 다른 언론사 기사를 그대로 인용해 [단독]을 붙여서 내는 게 어떠냐"고만 물었다고 했다. 결국 정확한 인터뷰의 취지나 전후 내용 설명 없이 인터뷰이의 비판 멘트만 유도해 낸 셈이다.

특히 이 취재와 보도 과정에 대한 본 기자의 해명과 반론 기회는 처음부터 없었고 (<미디어스>에는 SBS를 맡고 있는 출입기자도 있다!) 영하의 날씨에 기자와 레진 본사 앞에서 함께 취재했던 일요시사 기자에게도 팩트 확인을 위한 단 한 차례 문의도 없었다고 했다.
 
언론사들이 '단독'이라는 표시를 남발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은 이전에도 있어왔다. 이번 기사가 굳이 '단독' 표시를 할 정도의 기사였느냐고 지적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람마다, 언론사마다 '단독' 기사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일부 언론이 과도하게 '단독' 표시를 남발해 시청자와 독자를 오도한다는 지적에도 일부 수긍할 만한 면이 있다고 본다.
미디어스 로고
그렇다고 '단독' 표시를 한 기사가, 그 앞의 기사를 아무 노력 없이 베낀 것도 아닌데, 그 이전에 해당 사건을 취재, 보도했던 기사에 대한 탈취라거나 갑질이라고 몰아가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더구나 미디어 비평을 전문으로 하는 언론에서 정확한 상황에 대한 확인 과정도 없이 '당연히 그럴 거야'라는 식으로 편리하게 '갑질 프레임'을 갖다 붙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통상 미디어 전문지가 이른바 일반 언론의 기사에 대해 비판하는 기사를 실으면 다소간 불만이 있거나 사실관계가 틀린 것이 있어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일로 언론중재를 신청하거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도 어색한 일이니까. 하지만 이렇게라도 글을 남기는 것은, 그냥 있을 경우 이번 사안을 대형 매체의 소형 매체에 대한 갑질이라는 구도로 규정하는 것을 수긍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싶은 우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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