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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행복 호르몬이 적어 일벌레가 된 한국인"

근로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아직은 요원

[취재파일] "행복 호르몬이 적어 일벌레가 된 한국인"
● 유전적으로 행복 느끼는 물질 적은 한국인

몸속에서 분비되는 이른바 행복물질이란 게 있다. 많이 알려진 행복 호르몬 엔도르핀도 이 물질이 먼저 나와서 뇌를 자극해야 분비된다.

아난다마이드란 물질이다. 마라톤을 할 때 일정한 시간을 넘어서면 희열을 경험하게 하는 물질도 바로 이 아난다마이드인데, 일상생활에서 공포심과 불안감을 이기게 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유발하는 기능이 있다.

사람들마다 분비량에 차이가 있다. 특정 효소가 이 물질의 분비를 촉진하는데, 흥미로운 건 이 효소를 가진 사람의 비율을 보면, 한국이 14%, 북유럽이 21%, 나이지리아가 45% 정도다. 달리 말하면 한국인은 전 세계에서 가장 우울하기 쉬운 민족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자살률이 그렇게 높은 것도 이해가 된다.

심리학자들은 재미있는 분석을 내놓았는데, 이 아난다마이드란 행복물질이 적은 민족일수록 부지런한 일벌레들이란 것이다. 성실성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한국인의 근면성이 행복물질의 부족 때문이란 건 역설적이다. 웬만해선 행복감을 못 느끼다 보니 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고 명예를 좇으며 자식 교육에 올인 하는 듯하다. 달리 말하면 뭔가에 몰입하고 성취를 통해 자긍심과 행복을 느끼는 민족이 한국인의 유전적 특성이란 해석도 가능할 듯하다.
 
● 근로시간 줄면서 더 불행해진 한국인?

종전 주 44시간에서 네 시간 줄인 주 40시간 근무제가 지난 2004년부터 시행된 지 14년이 지났다. 어느새 주 35시간 근무기업도 등장했다.

신세계그룹이 이달부터 시작한 주 35시간 근무제는 일단 조직 내에서는 환영 분위기다. 특히 어린 아이를 둔 엄마나 아빠 직원은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크게 반긴다. 회사에서는 새 제도가 흐지부지될 것에 대비해 근무시간 외에는 아예 PC가 작동되지 않게 하거나 야근이 잦은 부서에 페널티를 매기는 방안까지 시행한다.

항상 OECD 1위였던 세계 최고의 근로시간도 멕시코에게 넘겨준 지 몇 년이 지났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중시하는 사회풍조에 힘입어 대기업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근로시간이 줄어든 만큼 사회 전체가 그만큼 행복해질 법하지만, 행복감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추락하고 있다.

유엔의 2017년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조사대상 155개국 가운데 56위에 머물렀다. 지난 2015년 47위에서 10계단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 높은 국민소득과 복지, 여가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북유럽 국가들이 압도적인 수위를 지키고 있는 반면, 우리는 아시아에선 타이완, 일본에 뒤져 있고 그나마 중국에 앞서 있다는 게 위안이다.

건강과 사회관계, 재정상황, 직장 안정성 등에 대한 이른바 웰빙지수 역시 계속 하락하면서 아시아 태평양지역 13개 주요 국가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전반적인 행복감의 추락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유전적 특성상 일을 많이 해야 하고 뭔가에 몰입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해서 벌어진 일일까.
시그나 그룹 2016년 웰빙조사 결과
● 좋은 일자리가 없다는 게 불행의 큰 요인

부지런한 특성을 가진 한국인이지만, 일을 통해서 성취와 보람을 느낄 수 없다는 게 행복감 추락의 원인이다. 넉넉한 임금과 복지가 보장되는 가운데 성취감을 느끼면서 일할 좋은 직장을 구하기 어렵고, 그런 일자리가 없으니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미래를 꿈꾸기 힘들며, 동시에 근로시간이 줄어도 여가를 즐길 만한 재정적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공공부문으로 대변되는 근로자 10%의 좋은 일자리는 여전히 높은 임금과 복지를 누리면서 진입 장벽을 더 키우고 있는 가운데, 정작 근로자 90%가 속한 중소기업 일자리는 고용불안과 임금 양극화에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근로시간 단축 이야기가 나오면 천8백만 명의 근로자 전체 이야기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10%도 안 되는 대기업 근로자의 이야기일 뿐이다. 나머지 근로자는 애초에 장시간 근로의 잣대를 들이 대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근로조건이 열악하다.

이들에게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의 근로시간 단축 이야기는 먼 나라 이야기이며, 일과 가정의 양립은 정책당국자의 철학적 메시지로 들릴 뿐이다.
 
●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일자리 나누기는 '요원'

일자리 생태계는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근로자는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며, 과도한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는 세 가지 큰 축으로 구성된다. 특히 저성장으로 기업이 고용창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특정 노동계층이 독점하고 있는 근로시간을 쪼개, 다른 이에게 나눠줌으로써 고용을 늘리는 일자리 나누기가 핵심 정책 과제로 부각된다.
일자리 생태계
우리의 경우는 아직도 OECD 2위의 장시간 근로를 하고 있으며, 특히 높은 임금을 받는 대기업 근로자들이 과도하게 노동시간을 독점하고 있다. 따라서 장시간 근로를 개선해 기존 근로자들에겐 삶의 질을 높여주는 동시에, 쪼갠 시간으로 다른 일자리를 만들어 고용을 늘리는 일자리 나누기는 외국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렇게 원론적으론 좋은 방안이며,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성공사례까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장 신세계 그룹의 주 35시간 근무도입에 대해서도 정치권 일부와 노동계에서는 노동 강도를 높이고 임금은 줄이려는 기업의 꼼수로 비판하고 있다.

더불어 노동시간을 줄인 만큼 다른 일자리가 전혀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정부는 고용을 늘리라고 기업을 압박하지만, 기업은 노동생산성이 낮다는 이유로 근로시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추가 고용에는 인색하다.

게다가 장시간 근로는 노사의 이해관계 일치에 따른 결과물인 측면이 있다. 임금수준이 높은 일부 대기업의 경우를 보면, 회사 입장에선 기존 인력에게 일을 좀 더 시키면서 추가 고용 부담을 덜 수 있고, 근로자들은 추가 근무를 통해 임금소득을 늘릴 수 있기에 양측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다. 일부 대형 제조업에서 장시간 근로를 통한 초과수당이 연봉의 20~30%에 육박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근로시간 단축만으론 사회적 행복이 증대되지 않는다. 삶의 질 향상과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이루려면, 기업은 일자리 창출이란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고, 근로자들은 근로자들대로 열악한 처지의 동료를 배려하고 나눠야 하며, 정부는 인센티브 정책으로 이를 북돋우는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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