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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그래, 나 58년 개띠다. 어쩔래?"

<한국 베이비 부머는 정년 후에도 안식이 없다>

올해가 무술년(戊戌年)이다. 황금 개띠 해라고 야단들이다. 그냥 개띠가 아니라 굳이 ‘황금’ 개띠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무(戊)라는 글자가 큰 흙 산을 의미하는데 색으로는 노란색 즉, 황금색을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유명한 58년 개띠들이 60세를 맞아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하는 해이기도 하다.
2018년 무술년 황금개띠
58년 개띠가 왜 유명할까? 모르는 사람과 나이로 시비가 붙었을 때 가오(?) 잡기 위해 “그래, 나 58년 개띠다. 어쩔래?”하고 대거리하는 게 유행일 때가 있었다. 서점에 가보면 58년 개띠와 관련한 책도 다양하게 많이 나와 있다. 참 특이한 현상이다. 여기엔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58년 개띠가 한국 베이비 붐의 대표적 세대로 꼽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베이비 부머는 6.25전쟁 후인 1955년부터 가족계획정책이 시행된 1963년까지 8년 동안 태어난 사람들을 말한다. 7백만 명이 넘는, 전체 인구의 15% 가까이 차지하는 거대 인구집단이다. 통계청 자료를 가지고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베이비 붐이 시작된 1955년부터 57년까지 출생인구는 80만 명대였다. 58년 개띠를 기점으로 90만 명대로 급상승하기 시작한다. 진정한 베이비 붐 세대를 이끈 대표주자라는 상징성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것이 유명세를 타는 이유 중 하나다.

입학시험이나 사회생활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살아온 이들이 현역에서 은퇴하고 새로운 삶을 찾아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 자료에 따르면 58년 개띠가 퇴직 후 확보하는 순자산 규모는 평균 3억 원 가량이고 그나마 2억 2천여만 원의 부동산을 제외하면 금융자산은 8천6백만 원 수준밖에 안 된다고 한다. 백 세 인생이라는데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하기 위해선 은퇴 후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베이비 붐 세대는 현역 때와 마찬가지로 은퇴 후에도 남은 삶을 위해 또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어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베이비 부머 추이
우리보다 먼저 베이비 붐 세대를 겪었던 미국과 일본의 경우는 어떤가. 미국 베이비 부머는 2차 세계대전 후 다산 열풍이 불었던 1946년부터 1964년 사이에 태어난 7천7백여만 명, 미국 전체 인구의 1/3이나 차지한다. 일본은 일본을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이끈 ‘단카이(塊) 세대’가 바로 베이비 부머들이다. 1947년부터 49년까지 태어난 단카이 세대는 680여만 명으로 일본 인구의 5%에 해당한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미국과 일본의 베이비 부머들은 2006년에서 2007년 은퇴를 시작했다. 미, 일 두 나라에서는 이 문제를 놓고 개인적, 사회적 고민을 했고 시행착오를 겪었다.

우리도 올해 정년을 맞은 58년 개띠들로 시작된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 노인 인구보다 많은 베이비부머들의 고령화는 백세 시대 노인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베이비부머들의 은퇴와 노후 준비는 개인도 당연히 해야겠지만 미국과 일본처럼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최근 퇴직을 앞둔 지인으로부터 감명 깊게 읽었다며 추천해 준 책이 있었다. 일본 작가 우치다테 마키코가 쓴 ‘끝난 사람’인데 일본에서 15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영화화돼서 올해 개봉된다는 소식도 들린다. 한국에는 두 달 전쯤 번역돼 나왔는데 꽤 공감을 받고 있다는 평가다.
[취재파일] '그래, 나 58년 개띠다. 어쩔래?
‘끝난 사람’은 막 퇴직한 일본 베이비 붐 세대의 당혹감과 공허함, 실패담 등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주인공은 도쿄대 법대를 졸업하고 일류 은행에 입사한 소위 엘리트다.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으나 임원 문턱에서 좌절하고 65세에 자회사 전무로 정년 퇴직을 하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퇴직하고 맞닥뜨리는 여러 문제에 실망과 좌절, 낭패를 보다가 우연히 조그만 회사 대표 자리를 맡게 되는데 끝내 엄청난 빚까지 떠안는다. 주인공은 말한다. “퇴직하고 사회적으로 끝난 사람이 되고 나니 잘나갔던, 못나갔던 다 똑같았다. 일렬 횡대다……”

평생현역이란 불가능하다. 책에서 인용한 ‘떨어진 벚꽃, 남아있는 벚꽃도 다 지는 벚꽃이다’라는 일본 격언처럼 언젠가 은퇴할 바로 당신을 위한 내용이라는 것도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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