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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끊이지 않는 보이스피싱, 그들은 왜 속을 수밖에 없었나?

"당신 수사 대상이야!" 20대 여성 노린 검사 사칭 보이스피싱

화강윤 기자 hwaky@sbs.co.kr

작성 2018.01.04 09:17 수정 2018.01.05 13:3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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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끊이지 않는 보이스피싱, 그들은 왜 속을 수밖에 없었나?
"지금 생각하면 말씀드리면서도 너무 어이가 없는데…."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힘들게 모은 학비 1천5백여만 원을 보이스피싱 조직에 당해 날린 한 여성의 말입니다. 알 것 다 알고, 배울 만큼 배운 사람도 황당한 낚시에 걸려듭니다. '내가 설마 저런 유치한 범죄에 속겠어?' 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돈을 뜯깁니다. 

전화금융사기, 일명 보이스피싱은, 그 수법이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데도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엔 11월까지 신고 건수가 21,594건, 피해액은 2,216억 원에 달했습니다. 

이번엔 주로 20대 젊은 여성들을 노려 수사 기관을 사칭하고 돈을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붙잡습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피해자에게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 그들은 왜 속을 수밖에 없었나? 

전화는 1566 국번으로 시작하는 8자리 모르는 번호로 걸려왔습니다. "여기는 서울중앙지검입니다. 당신 앞으로 소송이 걸려있습니다. 당신 수사 대상이에요." 

말인 즉, 피해자의 명의로 만들어진 대포 통장이 범죄에 이용됐는데 피의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걸 증명하려면 자기 말을 잘 따르라는 겁니다. '부모한테 말하면 부모도 같이 엮여서 똑같은 수사를 받을 수 있다.', '오늘 안에 수사하지 못하면 앞으로 90일 넘게 이런 일을 진행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위협했습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텔레비전 희극에 나오는 것처럼 어설프지 않았습니다. 

"저도 만약에 중국 말투나 이런 게 조금이라도 느껴졌으면 알았을 텐데 말투가 되게 딱 드라마에서 본 검사관이나 수사관들 말투? 그런 말투였어요. 아마 연습을 하고 그렇게 한 것 같은데. 그리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 같은 거? 그런 게 의심을 못 할 만한 상황을 잘 만든 것 같아요."
보이스피싱, 가족 사칭, 연기결정적으로, 검찰청을 사칭한 웹사이트까지 보여주자 피해자는 감쪽같이 속았습니다. 

"처음에 서울지검 검사를 사칭해서, 제가 그러면 지검 쪽으로 가겠다고 얘기를 하니까 어떤 사이트를 알려주면서 거기에 제 이름이랑 생년월일 앞자리만 입력하면 (고소와 관련된) 서류가 뜨게끔 해서 최대한 제가 믿게끔 유도했어요." 

도움을 청하거나 의심하기 어렵게 전화 통화를 끊지 못하게 하며 피해자의 혼을 빼놓았습니다. 

"전화를 계속해서 못 끊게 했어요. 당하는 내내 열 몇 시간을 전화를 안 끊고 계속해서 전화를 하고 있었고 그러면서 되게 분위기 같은 걸 되게 잘 만든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제가 뭐 도주 우려가 있다? 끊기면 뭐 어떠어떠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그렇게 겁을 줬어요. 그래서 만약에 제가 끊으면 바로 전화해서 '무슨 일 있었냐?' 그러면서 '사건번호 뭐뭐뭐뭐 다시 녹취 시작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잠깐 끊기면 다시 전화를 걸고, 인터넷 검색도 못 하게 막았습니다. 

"몇 번 끊었어요. 그냥 좀 인터넷 검색을 해보려고 했는데 계속해서 전화를 걸고. 데이터(통신)도 사용 못 하게 했어요. 제 명의로 된 대포폰이 있다는 말을 하면서 그걸 위치 추적을 하는데 제가 데이터를 사용하면 안 된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서. 그래서 제가 검색을 못 했어요."

잔뜩 겁을 먹은 피해자가 상황을 믿기 시작하면, 범죄는 막바지로 치달아갑니다. 

"그때 그걸 믿고 그래서 '제가 피해자인 걸 입증을 하려면 통장에 있는 돈이 깨끗한 돈인 걸 확인해야 한다'고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현금을 빼도록 유도를 했어요."

● 노린 건 모두 '20대 초반 여성' "쉽게 속을 것으로 예상"

같은 수법으로 피해를 본 15명은 모두 20대 초중반의 대학생, 사회 초년생 여성들이었습니다.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1800만 원까지 모두 1억 3천 여만 원을 뜯겼습니다. 

"인터넷 등에서 돌아다니는 개인정보를 수집해서 주로 20대 초반의 여성들만 주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사회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까 쉽게 속을 것으로 예상한 거죠." (최광엽 / 경기 고양경찰서)

경찰에 붙잡힌 남자들은 특이하게 한국인도 중국인도 아닌 말레이시아인이었습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범행에 가담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SNS를 통한 구인 광고를 보고 말레이시아 현지에서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에 고용된 겁니다. 비행기값까지 받아 한국에 들어왔고 한국 체류비로 3일에 20만 원씩 숙박비를 전달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의 돈을 중국으로 보내는 대가로 건 당 20만 원에서 50만 원을 받아 챙겼습니다. 대부분은 도박과 유흥에 탕진한 것으로 경찰은 전했습니다. 

중국의 보이스피싱 조직은 이들을 이용해 대포 통장 등을 이용하지 않고도 손쉽게 범죄 수익을 받아 챙길 수 있었습니다. 한국어도 못 하고 나이도 20대에 불과한 이들 말레이시아인은 어떻게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받아 조직에 전달할 수 있었을까요? 
보이스피싱 범인이들은 지하철 물품보관함을 주로 범행에 이용했습니다. 전달책이 피해자와 직접 만나지 않고도 돈을 전달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려준 물품보관함에 돈을 넣어 놓으라고 한 다음에는 일부러 인천 쪽으로 가라고 했어요. 제 명의로 도용된 물건들이 인천에서 나왔다면서 그쪽에 수사관이 갈 테니 그쪽에서 만나라고." 

통장을 이용하지 않고 현금을 직접 전달하다 보니, 이 피해 금액을 구제 받을 방법도 없는 처지입니다. 현장을 찾아가니, 물품 보관함 위에는 "정부 기관에서는 돈을 인출하게 하거나 계좌이체를 요구하지 않으므로 이런 전화를 받으면 반드시 신고해 달라"는 경고 스티커가 붙어있었습니다. 

● 국제적으로 이뤄지는 보이스피싱 범죄, 쉽지 않은 근절의 길

경찰은 인터폴 등을 통한 국제 공조로 중국에 있는 보이스피싱 조직을 계속 추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이 본 피해에 대해 중국 공안의 적극적인 협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최근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제주도에 콜센터를 차려 놓고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질러온 조직원 60명을 검거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제주도의 빌라 2개 동을 통째로 빌려 콜센터를 차려 놓고 중국 본토의 중국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공안을 사칭하고 미납 전화 요금 등의 명목으로 돈을 뜯어낸 혐의를 받았습니다. 

범죄는 이렇듯 국경을 넘어 더욱 대범하고 큰 규모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지난 2014년엔 한 해에 2만 2천 여 건의 보이스피싱 신고가 접수됐고, 피해액은 1,887억 원에 달하면서 극성을 부리다가 해마다 이 수가 조금씩 줄어들더니, 지난해 다시 급증했습니다. 이런 국제공조 수사가 더욱 필요한 이유입니다. 

"저는 그렇게 된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 저 말고도 좀 안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런 일이 절대."

* 취재 과정에서 김하예슬 스크립터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울러 다른 사람들의 범죄 피해 예방을 위해 힘든 와중에도 당시 상황을 상세히 설명해 준 피해자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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