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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터뷰+] 뮤지션 김수철의 40년 여정 ① : 기타로 우뚝 선 '작은 거인'

[人터뷰+] 뮤지션 김수철의 40년 여정 ① : 기타로 우뚝 선 '작은 거인'
뮤지션 김수철의 40년 여정 ①
 한국을 대표하는 록 뮤지션이자 기타리스트, 한 시대를 풍미한 인기 가수, 우리 전통음악의 세계화에 앞장선 선구자, 올림픽·아시안게임 등 국가 주요 행사의 음악감독, 어린이 만화 주제가의 작곡자 겸 가수, 주요 영화상 신인상을 차지했던 영화배우. '작은 거인' 김수철 하면 떠오르는 다양한 모습들이다. '작은 거인'은 1979년 그가 결성했던 밴드의 이름이지만 164cm의 키에 우리 음악계의 거목으로 성장한 그에게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별명이다. 그런 그가 최근 자신의 예술작업을 총괄한 책 <작은 거인 김수철의 음악 이야기>를 펴냈다. 데뷔 40주년과 환갑(그는 57년 4월생이다)이 계기가 됐다는데 이 정도의 업적을 가진 그가 '40주년 기념공연'도 없이 이 책 한 권으로 해를 마감하려 한다는 게 의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를 만나 '작은 거인' 40년의 발자취와 고뇌, 희망,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작은 거인' 김수철과의 연작 인터뷰 첫 순서로 그의 음악 활동 태동기와 대중 스타로서의 전성기, 그리고 그가 '영원한 친구'로 부르는 악기 기타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작은 거인'의 태동.. '영원한 친구' 기타>

▷ (박진원 논설위원)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책을 내셨는데 제 기억으로는 선생님의 첫 음반이 나온 해는 1979년으로 기억합니다. 그걸 기준으로 하면 2년 뒤가 40주년일텐데 왜 올해를 40주년으로 잡으셨습니까?

▶ (김수철) 제가 79년 음반 내기 전에 77년에 모방송사에서 방송을 시작했어요. <내일>이라는 자작곡을 갖고(그는 당시 KBS에 출연해 자작곡 <내일>, <야속한 사람>과 함께 외국 곡 <Down by the River>, <Walk Away> 등을 연주, 노래했다). 그래서 올해가 40주년이고... 제가 요즘 작곡 작업에 충실하다 보니 40주년 공연을 못해서... 출판사 제의도 있고 해서 40년은 그냥 지나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공연도 준비되지 않았고 해서 책을 내게 됐어요. 
 
▷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데뷔의 계기는?

▶ 제가 고등학교(용산공고) 때 공부는 안하고 만날 기타만 치다 보니 기타를 남들보다 조금 잘 친다는 소문이 났었어요. 그래서 대학교(광운대 통신공학과) 올라오자마자 방송국에서 연락이 와서 방송하자고 해서 시작하게 된 거에요. 그러니까 중고등학교 때 공부 안하고 기타만 치다 보니 77년에 방송을 하게 된 거죠.
 
▷ 학교 다니실 때 어떤 음악을 들으셨나요?

▶ 고등학교, 대학교 때 주로 듣던 음악들이, 그 때는 고고라는 장르가 세계적으로 유행을 했는데 저는 록을 좋아했어요.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라든지 제임스 갱(James Gang), 그랜드 펑크(Grand Funk), 딥 퍼플(Deep Purple), 프랑크 자파(Frank Zappa), 제프 벡(Jeff Beck) 이런 음악들을.. 그리고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그런 음악만 좋아하다 보니 헤비한 걸 하게 됐고요. 사실은 대학가요제에 이런 헤비한 사운드를 갖고 나갔다가 두 번 떨어졌어요. MBC 대학가요제(1978)와 TBC 해변가요제(1978)에서 떨어지고.. 그 뒤 대학축제 경연대회라는 것이 이었는데 거기서 제가 동상을 받아서 알려지게 된 거거든요.  그러니까 주로 록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서양의 록 음악을.. 저도 좋아하는 게 록이다보니 주로 록을 했죠.
뮤지션 김수철의 40년 여정 ①

▷ 그 1979년 TBC 대학축제경연대회에서 입상한 곡이 '작은 거인'의 <일곱 색깔 무지개>?

▶ 네. 이게 동상을 받다 보니 그 대회를 담은 옴니버스 음반이 나오고 그 음악을 듣고 음반회사에서 판을 내자고 해서 <작은 거인 1집>이 나오게 된 거죠.
 
▷ '작은 거인'은 2집을 내면서 더욱 무거운 록을 하게 되는 데 그 때 김수철 하면 떠오르는 건 기타였습니다. 김수철 하면 일렉트릭 기타. 소리도 신선했고 현란한 스테이지 매너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음악인 김수철에게 기타란 무엇입니까?   

▶ 저의 영원한 친구. 제가 국악을 하거나 영화 음악을 작곡하거나 무용 음악을 작곡하거나 무엇을 하든 간에 늘 항상 저의 곁에는 기타가 있습니다. 물론 기타로 작곡을 많이 하고.. 피아노로도 많이 하지만 항상 제가 외로울 때는 기타를 잡았고요. 즐거울 때도 기타를 잡고 해서 지금 생각엔 영원한 저의 친구가 기타 같습니다.
 
▷ 기타 외에도 건반은 물론 현악기, 타악기까지 대부분의 악기를 잘 다루시는데 특히 기타라는 악기를 선호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기타의 어떤 면이 그렇게 좋으세요?

▶ 기타는 사춘기가 왔을 때 처음 대화를 나눈 친구였기 때문에 계속 변함이 업고, 희로애락을 표현하기가 제일 좋은 악기에요. 리듬도 나오고 멜로디도 나오고 코드도 나오고.. 강약 조절도 되고 하니까 제가 기타에 굉장히 매력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제가 처음 사춘기 시절에 처음 만났던 친구였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기타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 기타 얘기를 하다 보니 어젯밤(11일) 주신 전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내일 일기예보를 보니 영하 12도까지 떨어진다고 해서 당초 갖고 나가겠다고 약속했던 기타를 가져 가기 어렵겠다. 기타는 온도에 민감한 악기라 그렇다. 미안하다'고. 기타에 대해 갖고 계신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요즘은 주로 어떤 기타를 치십니까?

▶ 요즘 라이브를 할 때 주로 쓰는 기타는 쉑터(Schecter)와 펜더 스트라토캐스터(Fender Stratocaster) 그리고 야마하(Yamaha) SG3000이에요. 이들 세 기타를 돌아가면서 요즘 연주하는데 그날의 공연 내용이나 장르에 따라 기타가 바뀝니다. 
야마하 SG3000
좌측,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우측
▷ 어떨 때 어떤 기타를 쓰시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 쉑터는 브라이트 그러니까 밝은 소리와 아주 맑은 소리가 많이 나요. 그래서 기타 반주와 대중음악과 더불어 할 때는 이 기타를 써요. 그 다음 여러분 많이 아시는 <나도야 간다>, <젊은 그대> 같은 곡들, 록 발라드나 헤비메탈 같은 걸 할 때는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를 갖고 나가요. 그리고 사물놀이와 협연하거나 김덕수 장구와 협연하거나 이럴 경우엔 야마하를 갖고 나가요. 야마하가 중간음, 저음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좀 장르를 구분해서 기타를 연주합니다.
 

<가수왕, 영화배우 신인상, 탑 스타>
 
▷ 제가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선생님은 최고의 인기 가수였습니다. 텔레비전만 켜면 나왔고 주간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1등을 하는 건 다반사였고 84년엔 KBS 가수왕도 차지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작은 거인'의 무겁고 빠른 록 음악에서 어떻게 일반 청중에게 친숙한 팝 가요로 방향을 틀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 록을 하다가 왜 가요를 하게 됐냐는 거죠? 그게 록을 주로 하면서도 작곡은 다양하게 하고 있었거든요. 포크 장르도 하고 발라드도 하고 그냥 가요 장르도 하고.. 그런데 집안 부모님의 반대로 음악과 완전히 헤어져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그래서 '기념 음반으로 한 장 내자' 한 거에요. 그 전에는 시끄러운 록 음악을 주로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발라드, 조용한 포크 이런 걸 모아서 낸 음반이 마로 '김수철 솔로 1집: 못다 핀 꽃 한송이'에요.
 

▷ 지금 언급하신 솔로 1집에 이어 2집에서도 <왜 모르시나>, <젊은 그대>, <나도야 간다> 등 엄청난 히트곡들을 양산했습니다. 그 당시 이런 음악을 하면 일반 청중에 귀에 쉽게 다가가겠구나, 히트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있으셨습니까?

▶ 그건 모르죠. 영화 만들 때 이게 히트하겠구나 하는 건 스필버그도 모를 거에요. 왜냐하면 대중은 우리가 알 수가 없어요. 열심히 만들고 발표하고 그 다음은 운이에요. 그렇게 삼위일체가 돼야 돼요. 저는 대학교 때 작곡한 걸 이렇게 여러분들이 사랑해주실 줄 몰랐죠. 그냥 냈고 사실 1집은 처음 나왔을 때 망했었어요. 발매 당시엔 사장돼 있다가 몇 곡이 갑자기 히트한 거에요
 
▷ 언제쯤 내가 가요계의 탑 스타구나 하는 느낌을 받으셨어요?

▶ 사실 제가 영화 <고래사냥>을 촬영할 때 히트를 한 거거든요. 막 저를 찾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촬영 마치고 TV출연에 복귀했는데 벌써 상위 랭킹에 올라가 있고.. 하여튼 제가 무대에 나가면 그냥 소리를 그렇게 지르더라고요. 그래서 '오~'했죠. 그리고 그것보다 돈이 많이 들어와. 돈이.. 그래서 '왜 이렇게 돈이 많이 들어와' 했죠.
 
 

▷ 지금 영화 <고래사냥> 얘기를 하셨습니다. '하고 싶은 음악을 하다가 자고 일어나보니 하루 아침에 스타가 돼 있더라'는 얘기인데 그 와 중에 안성기, 이미숙 씨와 영화를 찍어서 영화 스타도 됐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 제가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기념 음반 한 장 내고 대학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안성기씨와는 대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는데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형 나 이제 음악 안 해' 그랬더니 음악 얘기가 아니래요. 그래서 어느 다방에 나갔더니 거기 배창호 감독님, 소설가 최인호 선생님, 제작자 분들이 모여서 영화에서 '병태' 역할을 찾고 있는 거에요. 안성기씨가 '내가 아는 동생이 '병태' 같이 생긴 애가 있다. 덤벙덤벙 대고 조그만 키에..' 그렇게 소개한 건데 거기서 여러분들이 '제 병태 맞다' 이렇게 돼서 촬영을 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노래가 히트해서 영화를 촬영한 게 아니라 제가 낸 솔로 음반이 사장돼 가고 있을 때 촬영이 들어간 거죠. 촬영 중간에 <못다 핀 꽃 한 송이>가 이제 막 히트친 거죠. 이렇게 된 거에요. 거꾸로. 영화사는 촬영 중에 (히트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어요. 촬영이 끝난 다음에 얘기해줬어요. 방송국에서 너를 찾는다고..
 

▷ 그 때 그 영화로 배우들도 타기 힘든 큰 상을 타셨죠?

▶ 제20회 백상예술상 영화 부문 신인상을 받았어요. 그래서 죄송했습니다. 제가 연기자도 아닌데 상을 받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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