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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입영 거부" 판결 대기자만 6백여 명…이들의 운명은?

박세용 기자 psy05@sbs.co.kr

작성 2017.11.09 15:47 수정 2017.11.09 16:53 조회 재생수4,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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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입영 거부" 판결 대기자만 6백여 명…이들의 운명은?
●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 불가피", 사실인 듯 사실 아닌 보도

유남석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났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유 후보자의 의견이 쟁점 중 하나였습니다. 한 언론은 9일 "유 후보자는 종교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 문제에 대해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어 징병제를 실시하는 우리 현실을 고려할 때 형사처벌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것만 보면 유 후보자가 마치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에 반대하는 것처럼 비칩니다.

그런데 사실, 유 후보자의 말은 저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청문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양심 때문에 전과자가 되는 현실은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면서, 대안 중의 하나가 대체복무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기자는 유 후보자의 말을 있는 그대로 전했지만, 발언의 전체적인 취지와 다르게 전달한 것입니다. 

● 1985년 전두환 정권 때 "대체복무제 허용해야"

유남석 후보자는 이미 1985년, 전두환 정권 때 과감한 내용의 논문을 낸 적이 있습니다. 청문회 전에 이 내용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는 육군본부 군사법연구라는 책자에 중위 신분으로, '양심상의 병역거부에 관한 법적고찰'이라는 논문을 냈습니다. 그는 여기서 미국과 서독의 병역법과 판례를 검토하고, 결론에서 우리나라도 양심상 병역거부 문제에 관한 국가정책을 적극적으로 표명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또 양심상 병역거부를 단순히 국가안보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일축할 것이 아니라, 병역상 특례를 인정하는 쪽으로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웬만한 소신 없이는 쓰기 힘든 내용입니다.

1985년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병역법 조항이 아니라 군형법 항명죄로 처벌하던 시절입니다. 지금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구속되지 않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습니다만, 그때만 해도 일단 강제로 입영을 시켜서 집총명령을 하고 이를 거부하면 항명죄로 처벌을 했습니다. 항명죄는 2년 이하의 징역형이었는데, 2년 이하면 당시 군 복무기간보다 짧다는 이유로 집총명령을 일부러 2번 하고, 두 번을 불응했다고, 3년까지 가중처벌을 하곤 했습니다. 군 복무 기간보다 징역을 길게 살아야, 처벌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죠. 그런 시대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지지하는 논문을 현역 군인 신분으로 낸 것입니다.

● 2004년, 2011년 모두 '합헌', 2018년 헌재의 결정은?

유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는 큰 진통 없이 국회에서 처리됐습니다. 헌법재판소장은 국회 본회의 표결을 거쳐야 하지만, 소장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무난하게 재판관으로 임명될 것 같습니다. 지금 헌법재판소에는 병역법 88조 1항과 관련한 사건이 2011년 이후 또 30건 쌓여 있습니다. '또'라는 표현을 쓴 것은, 앞서 2011년 합헌 결정이 나기 이전에도 병역법 조항 사건이 계속 쌓여온 선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병사, 군인우리 병역법 88조 1항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는 경우에는 3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정당한 사유'에 헌법상 양심의 자유가 포함되느냐가 오래된 논란의 핵심입니다. 헌재는 2004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이 조항을 합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두 번 모두 합헌이 7명, 위헌이 2명이었는데, 사실 2011년 위헌은 '한정위헌'이라고 해서, 병역법을 그냥 위헌이라고 하면 양심의 자유와 무관하게 병역기피를 하는 사람을 처벌할 조항이 사라져버리니까, '정당한 사유'에 양심의 자유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한 위헌이다, 이렇게 조건부 위헌 결정을 내린 겁니다.

2011년 합헌 결정 뒤에도 어떤 피고인들은 헌법소원으로, 어떤 재판부는 위헌법률 심판 제청으로 병역법 88조 1항을 다시 판단해달라고 했고, 그런 사건이 30건이 쌓여 있는 것입니다. 헌재에서 결정을 못 내리고 묵힌 사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사건입니다. 지난해 박한철 당시 헌법재판소장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병역법 사건을 자신의 임기 안에 결정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적 있는데,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대통령 탄핵 심판에 들어서면서 모든 심리는 중단되었습니다. 이제 유남석 후보자가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면 다시 '9인 체제' 완전체가 되니까, 이 병역법 사건을 서둘러 심리할 것으로 보입니다.

● '9인 체제', 헌법재판관들 성향 따져 보니…

현재 헌법재판관 8명이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제에 대해 뭐라고 언급했는지를 참고해서 성향을 따져봤습니다. 민주당 금태섭 의원실이 지난 국감에서 헌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체복무제에 긍정적으로 답한 재판관이 3명(김이수, 강일원, 이선애)이었고, 부정적으로 답한 재판관이 2명(이진성, 안창호), 그리고 입장을 유보한 사람이 3명(김창종, 서기석, 조용호)이었습니다. 유남석 후보자가 임명되면 긍정 쪽이 4명이 되지만, 위헌 결정에 필요한 6명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현재로서는 입장을 유보한 3명이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합헌 위헌 모두 가능한 상황입니다. 2004년, 2011년과 다른 것이 있다면 법원 쪽입니다.
법원, 재판, 생중계● 2017년 1심 무죄가 35건…"사법 역사상 유례없는 혼란"

"단일 법 조항에 대한 일선 판사들의 이와 같은 혼란은 사법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린 한 판사는 판결문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이 올해 들어서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초로 무죄 판결이 나온 게 2004년, 그리고 3년이 흘러 2007년에도 무죄가 1건 있었습니다. 그러고 한동안 유죄 판결이 이어지다가, 2015년부터 무죄 선고가 다시 나오기 시작합니다. 2015년 6건, 2016년 7건, 그리고 올해 9월까지 1심에서만 전국에서 35건의 무죄 판결이 나왔습니다.

지난해 10월에는 2심에서도 처음 무죄가 나왔습니다. 이 정도면 피고인 입장에서는 판결이 '복불복'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지역, 어느 판사에게 사건이 배당되느냐에 따라 1심에서 유죄가 나올 수도, 무죄가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죠. 물론 1심에서 무죄가 나와도 검찰이 항소하고, 2심에서 다시 유죄가 나오면 피고인이 상고해서 대법원에 사건이 올라가는데, 아직 대법원 판례는 바뀐 적이 없습니다.

● 수감자는 역대 최저, 판결 대기만 6백여 명…이들의 운명은?

백종건 변호사에 따르면,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기다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110여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3건은 항소심에서 무죄가 나서 검찰이 상고한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피고인이 상고한 사건입니다. 2011년에 기소됐는데 아직도 확정 판결이 안 난 사건도 있다고, 백 변호사는 말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수감되면 보통 1년 6개월 선고를 받고, 가석방이 되면 1년 2개월 만에도 나올 수 있는데, 6년이면 징역을 5번은 살았을 시간입니다. 1, 2심에서 계류된 사건을 합치면 판결을 기다리는 사람만 6백여 명에 달합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만약에 내년에 헌재에서 병역법에 대해 다시 합헌 결정을 내린다면, 법원 판결도 빨라질 것이고, 항소나 상고를 포기하고 징역형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날지도 모릅니다. 병역거부자 입장에서도 재판에 이의를 제기하느니, 얼른 징역 살고 나오는 것이 좋기 때문이죠. 그러면 재판을 기다리는 6백여 명에, 매년 통상적으로 수감돼 온 사람들 숫자를 더해 단기간에 거의 1천여 명이 수감될 수도 있습니다. 법원에서는 이렇게 재판이 지연되면서,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돼 있는 사람은 323명,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 "어이, 소지!" 사실상 이미 시행 중인 대체복무제

교도소에는 '소지'라고 부르는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각 방에 배식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교정직 공무원이 일일이 챙기지 못하는 잡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을 교도소 안에서는 그렇게들 부릅니다. "어이, 소지!" 외침이 끊이지 않습니다. 소지를 맡는 사람은, 물론 그런 규정은 없지만, 관례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입니다. 공무원도 믿고 쓰는 것 같습니다. 소지는 그렇게 교도소, 구치소에 수감돼 집총과 관련 없는 일을 마친 뒤에 출소합니다. 전과자가 되고, 병역은 면제받습니다. 근데 그 소지가 지금 하는 일들이 사실상 대체복무제입니다. 교도소, 구치소라는 공공시설 운영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이죠.

국회에도 대체복무제를 규정하는 병역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습니다. 육군 복무기간 2년의 1.5배, 그러니까 3년을 복무하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체복무제 도입을 공약한 만큼, 정부가 대체복무제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수도 있습니다. 뭐가 먼저 될지 모르지만, '9인 체제'가 된 헌법재판소가 병역법 조항에 대해 합헌이든 위헌이든 먼저 결정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만약 위헌 결정을 내린다면, 현재 진행 중인 사건들은 무죄가 될 가능성이 높고, 마지막 합헌 결정이 난 2011년 이후에 처벌된 사람들도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잡초 뽑고, 사고 위험에, 구타의 두려움까지…

앞서 헌법재판관들의 성향도 따져봤습니다만, 사실 성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군의 복무 여건입니다. 헌재는 2004년과 2011년 이 조항의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결정문에 대체복무제 시행 전 선결돼야 하는 현안을 적시했습니다. 양심의 자유도 중요하고, 전과자를 양산하면 안 된다는 것도 말이 되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1년 6개월의 정찰제 판결을 내리는 것도 문제가 있고 다 알겠는데, 한 마디로 우리 군대 가면 잡초 뽑는 것부터 시작해서 언제 사고 날지도 불안하고, 솔직히 너무 힘들지 않느냐, 군의 복무 여건부터 좀 개선해야 군필자를 포함한 국민들의 불만 여론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군인헌재는 2004.8.26 결정문에서 대체복무제 도입의 선행 조건으로 "군 복무 여건의 개선을 통해 병역 기피의 요인이 제거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헌재는 2011년에도 이 문구를 그대로 가져와서 "지금 시점에서 2004년에 제시한 선행조건 중 어느 하나라도 충족됐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또 "복무 여건이 위험하고 열악하면 할수록 그 의무이행을 회피하는 행위에 대해 강력한 제재가 사용될 수밖에 없다"고 했고, 그래서 병역거부자들이 징역형을 감수하는 상황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그들을 형사처벌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했습니다. 2018년 헌법재판관들은 병역법을 논의하면서, 이 선행 조건이 해소되었는지, 다시 한번 따져볼 것입니다.

● IQ 53 행세까지…대체복무제, 어디서 몇 년이면 될까?

군대 안 가려고 2년간 치밀하게 정신병 환자 행세를 한 30대가 최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신체검사에서 원래 1등급 판정을 받았는데, 열심히 조현병 행세를 해서 정신병원 의사를 속이고, 허위진단서로 면제 처분까지 받았는데, 나중에 운전면허 따려고 IQ 검사를 받았다가 들통났다, 이런 사연입니다. 헌재도 이런 점을 염려했습니다. 2011년 결정문을 보면, "각종 총기사고나 폭발물 사고와 같은 위험에 노출돼 생활해야" 하는데, "그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외국 국적을 취득하거나 각종 불법행위를 자행하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형사처벌은 불가피하다는 논리였습니다.

▶ 군대 안 가려 정신병 환자 '완벽 연기'…의사도 속았다

군대 안가려 철저히 정신병환자 행세만약 대체복무제를 시행한다면, 그것이 잘 정착할 수 있을지 말지는 복무 여건과 특히 복무 기간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대로 현역 복무 기간의 1.5배라고 하면, 현역을 기피하는 움직임을 충분히 예방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입영 대상자들을 상대로 대체복무제의 기간을 어느 정도로 길게 하면 '차라리 현역이 낫다'는 생각이 들지, 여론도 살피는 게 좋겠습니다. 처음에는 "차라리 현역 가고 말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업무(?) 기간이어야 대체복무제 시행에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외국은 대체복무 기간을 너무 길게 하지 않아도 현역 기피하는 사람이 거의 없더라, 라는 주장도 있지만 우리 군 복무 여건은 많이 다르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대체복무제, 어디서 몇 년이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