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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스페셜] 5·18 헬기사격, 조작과 파기 ② "무관하다"던 전두환 정부, 조작은 왜?

장훈경 기자 rock@sbs.co.kr

작성 2017.11.07 08:50 수정 2017.11.07 12:58 조회 재생수8,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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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스페셜] 5·18 헬기사격, 조작과 파기 ② "무관하다"던 전두환 정부, 조작은 왜?
● "사람 죽여 놓고 자위권 발동이 뭐야?"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첫 진상 조사는 88년 11월 시작된 5공 비리 청문회였습니다. 일어난 지 8년 만에 이뤄진 청문회의 최대 관심사는 전두환 씨의 증인 출석 여부였습니다. 전 씨는 1년 넘게 강원도 설악산 백담사에서 은둔하다 89년 12월 31일 국회 연석청문회 증언대에 섰습니다.

전 씨는 "당시 5월 22일 자위권 발동도 가능하다는 계엄사령부의 작전지침이 지휘계통을 통해 하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을 시작했습니다.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뉘앙스에 곧바로 의원들의 고성이 이어졌습니다. 의원들은 "사람 죽여 놓고 자위권 발동이 뭐야?"라고 소리쳤고 "살인마 전두환"이라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회의는 더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자정이 넘어 전 씨는 다시 백담사로 돌아갔습니다.

5.18과 자신은 무관하다는 전 씨의 주장은 올 초 낸 회고록에서도 되풀이됐습니다. 전 씨는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서리를 겸직하고 있었으나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 사이 나는 광주 어디에도 실재하지 않았다"며 민주화운동 관련 챕터를 시작했습니다. 군은 철저히 지휘계통으로 움직이는데 5.18 관련 발포 등 지시는 모두 계엄사령관과 관련됐고 보안사령관이었던 자신은 작전에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 전두환 정부가 만든 '80 위원회'

아무 관련 없다던 전두환 씨의 5.18 관련 행적이 최근 추가로 드러났습니다. 헬기 사격 의혹 등을 조사하고 있는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가 밝혀낸 것이지요. 전두환 정부가 85년 '80위원회'를 구성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전 씨의 최측근인 '충복'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 주관 하에 '광주사태' 관련 모든 자료를 수집, 검토해 백서를 발간하는 것을 목표로 '광주사태 진상규명 실무위원회'를 꾸린 것입니다.

거창한 이름의 이 위원회는 정작 제 이름을 숨긴 채 활동했습니다. '광주사태 진상규명 실무위원회'라는 정식 명칭 대신에 '80위원회'라는 위장 명칭을 썼지요. 국방부 5.18 특조위는 "정부 차원의 기구 구성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최대한 막으려고 위장했을 것"이라며 "80위원회의 활동으로 5.18 관련 역사적 사실이 왜곡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관련 사진● 80위원회가 남긴 '조작의 흔적'

특조위는 80위원회가 남긴 조작의 흔적을 찾아냈습니다. 광주 참가 군인들의 체험수기 내용이 사라지고 바뀐 것입니다. 이번에 발굴된 81년 작성 체험수기가 그 예입니다. 도청 앞 집단 발포가 있던 5월 21일 오후 1시 반에 이미 자위권 보유 천명이 하달됐고, 무릎쏴 자세로 시민들을 향해 집단 사격을 했다는 내용이 수기에 적혀 있었습니다. 계엄사령관이 자위권을 공식 발표한 건 21일 저녁 7시 반이었는데 이미 한참 전에 자위권 보유 명령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무릎쏴 자세로 정조준해 시민들에게 집단 발포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충격적입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88년 군사연구소가 발간한 체험수기에는 빠져 있었습니다.

표현을 바꾼 흔적도 발견됐습니다. 88년 발간된 체험수기에 "공포 사격으로 쫓아 보냈다"고 적혀 있는 문장 일부분이 수정액으로 지워져 있었습니다. 종이 뒷면을 빛으로 비춰 지워진 부분을 보니 '간혹 지면 사격으로'라는 글자가 보였습니다. 시위대를 향한 직접 사격을 의미할 수 있는 내용을 지워버린 것입니다. 이외에도 체험수기 3~4줄을 지우고 복사본을 첨부한 경우가 있었다고 특조위는 설명했습니다. 모두 85년 80위원회의 활동을 전후로 나타난 조작의 흔적들입니다.

● 아무 관련 없는데 왜 조작했나…

80위원회가 활동한 85년 6월은 전두환 정부를 향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가 분출했을 때입니다. 85년 5월 15일엔 전국 39개 대학 1만 5천여명의 학생들이 5.18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같은 달 23일에는 대학생 73명이 '광주 학살 책임지고 미국은 공개 사죄하라'는 등의 구호를 적은 종이를 갖고 서울 미국문화원을 기습 점거하기도 했습니다.

전두환 정부는 이런 사회적 요구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범정부 차원의 위장 기구를 만들어 관련 기록 조작에 나섰습니다. 37년째 5.18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전 씨는 대체 왜 관련 기록들을 은폐하고 조작했을까요. 답을 생각해내는 건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 [취재파일 스페셜] 5·18 헬기사격, 조작과 파기 ① "핵심 기록은 이미 다 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