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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스페셜] 5·18 헬기사격, 조작과 파기 ① "핵심 기록은 이미 다 불태웠다"

장훈경 기자 rock@sbs.co.kr

작성 2017.11.02 15:48 조회 재생수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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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스페셜] 5·18 헬기사격, 조작과 파기 ① "핵심 기록은 이미 다 불태웠다"
5.18 헬기 사격 의혹에 대한 진실을 푸는 열쇠는 두 가지입니다. 군 기록과 양심선언이지요. 88년 청문회와 95년 특검 수사, 2005년 국방부 과거사 진상조사위까지 세 차례의 조사에서도 이 두 가지가 진상 규명의 핵심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헬기 사격을 뒷받침하는 군 기록이나 당시 군 관계자들의 시인이 있어야 37년 간 감춰졌던 진실을 밝힐 수 있습니다.

지난 취재파일 스페셜에서는 양심 고백을 기대하며 광주 출동 헬기 조종사들에 대해 썼는데 이번은 군 기록입니다. 자료, 일단 참 많습니다. 한 사람이 다 보기가 불가능합니다. 지난달에는 이건리 5.18 특조위원장이 “25권, 8천 쪽 분량의 기무사 미공개 자료를 추가로 확보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기록의 신뢰성입니다. 이 위원장은 “5.18 특조위가 가짜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체 군 기록이 어떻길래 이 위원장이 이런 말을 했을까요.관련 사진● 2002년 조사 결과 "관련 자료 전무"

SBS 기획취재부는 특조위가 확보한 25권의 기무사 미공개 자료 일부를 입수했습니다. 조작과 파기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습니다. 먼저 ‘5.18 및 계엄 관련 자료 추적 조사 결과’ 보고서가 눈에 띄었습니다. 2001년 12월, 문두식 당시 기무사령관이 지시해 만든 문건이지요. 기무사에 5.18 관련 자료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보존 실태를 조사한 것입니다. 청와대에 보고하는 최고급 첩보를 의미하는 ‘중보’ 담당 부서가 조사 대상이었습니다. 13일 간의 조사 결과는 허무했습니다. 관련 자료가 ‘전무(全無)’,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광주 민주화운동 직후인 81년부터 93년까지의 중보는 목록만 남고 실제 내용은 없었습니다.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90년 윤석양 씨 사건 때 문서 폐기를 지시했다고 기록돼 있었지요. 93년에도 원문과 5.18 관련 광디스크 2개를 사령부 소각장에서 파기했다고 했습니다. 기무사는 보고서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관련 문건이 파기됐다고 말하는 증언자까지 문건에 기록했습니다.

● "핵심 자료는 사본 만들지 않아"

기무사는 “80년대 주요 핵심 자료는 지휘부 결재 후 비서실에서 관리했고 문제 소지가 없는 자료만 정통실로 이관”했다고 밝혔습니다. 정통실에서는 마이크로필름과 광디스크 형태의 사본을 보관했지요. 지금도 국방부 5.18 특조위에 전달되는 문건들은 대개가 이런 마이크로필름 등에서 출력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 문건의 내용이 맞다면 특조위에 제공되는 자료 중에는 핵심 내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내용은 아예 사본을 만들어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 기무사도 이 보고서에 “시국 관련 중요 문서는 지휘부에서 따로 관리하다가 80, 90년대 혼란기를 거치면서 전량 파기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원본은 모두 없애고 사본만 남겼는데, 중요한 내용은 사본조차 안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본마저도 “광디스크 내 저장 문서의 내용을 열람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고 출력할 때는 ‘깨짐 현상’ 때문에 활용이 불가하다"고 했지요. 기무사가 얼마나 철저하게 기록을 조작하고 파기했는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관련 사진● "핵심 자료 불태웠다"

기무사는 사본을 만들어두지 않은 핵심 자료가 어떻게 됐는지도 조사했습니다. 광주 민주화운동 이듬해인 81년부터 85년까지 보안사 참모장이 갖고 있던 자료의 행방을 추적한 것입니다. 핵심 문서들은 철저하게 은폐됐습니다. 먼저 옮겨진 곳은 보안자재 제작실입니다. 자료를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보안 자재를 만드는 창고로 중요 문건들을 가져간 것이지요. 이 제작실은 지하벙커에 설치돼 있었는데 이마저도 은밀하게 보관하기 위해 가로-세로 70cm짜리 나무상자 8개에 문건을 옮겨 담았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뭐가 불안했는지 이 나무상자들을 벙커 구석으로 가져가 합판으로 칸막이를 만들어 못질을 해서 아예 폐쇄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창고 구석에 은밀히 보관된 자료는 96년에는 아예 불 태워졌습니다. 기무사는 96년 11월, 임재문 당시 사령관 지시로 이 문건들을 사령부 소각장으로 가져가 입구를 차단한 채 불 태웠다고 기록했습니다. 96년 11월에는 전두환, 노태우 씨에 대한 항소심이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5.18 관련 핵심 자료가 소각된 것이지요. 임 전 사령관은 SBS와의 통화에서 “5.18 관련 자료는 본 적도, 소각 지시도 한 적이 없다”며 문건의 내용을 모두 부인했습니다.

● 5·18 특조위, 연장할 듯

국방부 5.18 특조위는 군 기록의 조작과 왜곡이 심하고 파기된 핵심 자료가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기무사 자료 외에 광주 출동 부대가 직접 작성한 군 기록이나 관련자 진술 확보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입니다. 특조위는 11월 말로 예정된 활동 기간이 부족하다고 보고 국방부 장관에게 연장을 건의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이번 만큼은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의혹들을 풀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