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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시각장애인은 안중에도 없는 서울시의 시각장애인 사업

[취재파일] 시각장애인은 안중에도 없는 서울시의 시각장애인 사업
일반적으로 물건 살 때, 가장 싸고 좋은 물건을 고르기 위해 오프라인에서는 이 가게, 저 가게를 돌아다니며 가격과 품질 비교를 하죠. 이 때문에 가게 점원에게 "좀 더 돌아보고 올게요."라는 말을 최소 한번은 하게 됩니다. 온라인에선 어떤가요? 포털 사이트에 물건 이름만 검색해도, '랭킹순' '높은 가격순' '낮은 가격순'  '상품평 많은 순' 별로 뜨고 최저가를 비교해주는 '싸다X' '어바X'같은 앱도 등장한 지 오래입니다.

저도 최근 5만 원짜리 스탠드를 하나 구입하는데, 여기저기 사이트와 블로그 후기를 뒤지며 고심 또 고심,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또 며칠을 고민…. 아무튼 뭘 하나 싼 걸 사려고 해도 고민되는 게 사람 마음입니다. 천원 샵 '다이X' 같은 곳에서 패리스 힐튼 된 것처럼 (색)'깔 별'로 구입할 때를 제외하고는요…호호호. 하물며 5억 원으로 한 번에 어떤 물건을 사라고 하면 어떨까요?

내 돈이라면 1년을 고심한다고 해도 막상 구매할 때는 손이 덜덜덜 떨릴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잘 써달라고 맡겼는데, 남이 막 쓰면 어떨까요? 치가 떨리겠죠. 바로 그 기분을 제가 최근 느꼈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제가 말한 '5억 원'은 서울시가 최근 '남의 돈'(a.k.a 세금)으로 막 쓴 돈을 의미합니다. 서울시는 지난해 행정안전부가 시행하는 '유비쿼터스 사업' 일환으로 5억 원의 예산을 들여 '엔젤 아이즈'라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사업을 펼쳤습니다. '엔젤 아이즈'라는 앱을 깔고, 앱에 지인 5~6명을 등록시킨 뒤, 마치 영상통화를 하듯 지인을 연결해 화면을 보여주고 안내를 받는 겁니다.
시각장애인용 특수카메라, 첨단기기, 무용지물
서울시는 이와 함께, 웨어러블 카메라(머리에 쓰는 카메라) 500대도 함께 보급합니다. 엔젤 아이즈 앱을 켜고 카메라와 연동시키면 앱에 등록된 지인이 카메라에 찍혀 전송되는 영상을 보고 안내해주는 겁니다. 서울시는 "시각장애인의 눈을 밝힌다" "시각장애인 눈이 되어줄 '엔젤 아이즈'"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펼쳤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요? 직접 시각장애인에게 사용해보도록 했더니 접속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취재한 분은 시각장애인 전자도서관 관장님이셨는데, 스마트폰 사용법을 시각장애인분들에게 가르치고 계실 정도로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하신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관장님은 이 웨어러블 카메라를 받은 지 1년이 다 돼 가도록 접속이 어려워서 사용하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제가 있는 자리에서 5분 넘게 다시 시도해봤지만 실패했습니다. (저랑 만나기 전날도 조금이라도 편한 취재를 위해서 열 번 넘게 시도했지만 실패를 하셨다고 하더군요)
시각장애인용 특수카메라, 첨단기기, 무용지물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마음이 참 답답했습니다. 이분만 그럴까요? 서울시가 이 카메라 500대 가운데 400대를 보급한 상태지만,(100대는 노는 중) 최근 6개월 동안 월 접속 건수는 16.5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거의 사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거죠. 왜 이렇게 어려운 기계가 돼 버린 걸까요?

사실 '엔젤 아이즈' 앱이라는 것도 돈 들여서 만들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원리는 복잡할 것도 없습니다. 영상통화와 똑 같습니다. 그런데 어렵게 앱을 깔고 지인 등록까지 해야합니다. 그냥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지인과 영상통화를 하면 될 것을요….

웨어러블 카메라도 마찬가집니다. 쓰고 있으면 10분도 안 돼 관자놀이가 아프고, 쓰고 다니기에도 너무 눈에 띄어서 쓰기가 꺼려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왜 이런 걸까요?

웨어러블 카메라를 만든 업체 취재 결과, 웨어러블 카메라는 애초에 시각장애인 용도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건설현장, 산업현장에서 원격 지휘할 수 있게끔 만든 거였습니다. 이미 만들어 놓은 기성품을 그대로 갖다 쓴거죠.

백번 양보해서 기성품을 그대로 갖다 쓸 수 있다고 칩시다.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이니 개발비도 적게 들고, 시간도 단축시킬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가장 화나는 부분은 이 업체도, 서울시도 시각장애인에게 이 기계를 배포하면서 단 한 번도 시각장애인에게 직접 검수를 한다던가, 착용을 하게 해본다든가 등 시각장애인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시각장애인용 특수카메라, 첨단기기, 무용지물
업체 직원 워딩을 그대로 옮기면 "애초에 시작할 때 시각장애인분인 인볼브(involve)되진 않았어요" "애초에 시각장애인분들을 타겟으로 한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장애인을 위한 기계를 구입하면서 장애인은 전혀 개입이 되지 않았던 거죠. 정말 이게 뭥뮈~….라는 기분이었습니다.
[취재파일] 시각장애인은 안중에도 없는 서울시의 시각장애인 사업
서울시도 시각장애인의 참여, 'involve' 사실이 전혀 없다는 걸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봐도 좀 그래요. 너무 이렇게 쓰고 뭘 하기가 불편하긴 하죠"라며 카메라 존재 자체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참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물론 공무원들이 신경써야할 일들이 한 두 개가 아니고 국민을 위해서 이런 저런 일들을 많이 한다고 바쁘겠지만, 이런식으로 모든 일을 진행한다면 안하느니만 못하지 않을까요?

물론 우리도 물건을 살때, 아무리 심사숙고를 하고 구매를 했다고 해도 사고난 뒤, '잘못샀구나~' 싶을 때도 분명 있습니다. 똑같이 국가에서 내 놓은 모든 정책 사업이 성공할 순 없겠죠.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정성들여서 내 물건 고르듯이, 따져 본다면…. 적어도 '심사숙고' 했다는 부분이 국민의 공감을 사고 신뢰를 얻는다면 그 '시행착오'도  빛이 되고 소금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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