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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우리는 왜 노벨과학상을 못 받는 걸까?

한세현 기자 vetman@sbs.co.kr

작성 2017.10.20 07:43 수정 2017.10.20 17:48 조회 재생수15,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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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우리는 왜 노벨과학상을 못 받는 걸까?
‘노벨과학상’이라고 부르는 생리의학상과 물리학상, 화학상 수상자가 모두 결정됐습니다.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과학자 이름은 불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왜 노벨상을 못 받을까?’란 질문은 돌림노래처럼 올해도 반복됐습니다. 최근 들어 이웃 일본과 중국이 수상자를 연거푸 배출하며 이 같은 강박적인 질문의 강도는 더 세지고 있습니다.

기자이기 전에 기초의학 전공자(수의학박사)로서, 저 역시 이 질문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학술공동체’ 안에서 연구자의 길을 걷는 선배, 동료, 후배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도 커졌습니다. 과연, 노벨과학상을 받은 연구자들은 누구이며, 우리는 왜 그런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요? 또, 오늘날 노벨과학상이 가지는 의미와 한계는 무엇일까요?

● 쫓아가는 ‘추격형 연구’의 한계

한국인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안 나오는 이유 중 한 가지만 말하라고 한다면, 저는 우리 과학계의 ‘연구 풍토’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과학계는 앞서 간 연구를 쫓아가는 ‘추격형 연구’에 머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기초과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1970년 이후부터입니다. 당시 기초 토대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과학 선진국의 앞선 연구를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과거 어느 날, 한 과학 선진국에서 ‘카세트테이프’란 걸 개발했습니다. 이후 카세트테이프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됐습니다. 뒤늦게 개발에 나선 우리는 ‘더 좋은 카세트테이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앞서간 연구를 따라가는 동안, 과학 선진국들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CD(Compact Disk)’란 걸 선보였습니다. 놀란 우리는 또 다시 ‘더 좋은 CD’를 만들려고 애썼지만, 그동안 선진국들은 아예 음악과 영상을 파일로 보고 듣는 시스템을 만들어 세상을 바꿔 버린 겁니다.

‘추격형 연구’는 가야 할 ‘목표’가 분명합니다. 애초 목표가 정해져 있어 그 목표를 얼마나 빠르게 달성할 수 있는지만 고민하면 됩니다. 대신, 이런 ‘추격형 연구’는 어떤 현상의 근원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고찰할 여유를 제공하진 못합니다. 앞서 간 연구 성과를 따라가기도 벅차기 때문이죠. 과거 ‘2G 휴대전화기’가 대세를 이루던 때에 비유하자면, 우리는 '조금 더 좋은 2G 휴대전화기'를 만들려고 노력했지, 소통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는 ‘스마트폰’을 개발하는 건 상상조차 못 했던 겁니다.

● 최근 노벨과학상은 ‘인류에 공헌’하는 기초연구에 수여

그렇다면, 최근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은 어떤 연구를 주로 해왔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다른 학술 연구 혹은 더 나아가 인류에 공헌한 ‘기초과학’ 연구 분야에서 수상자들이 나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휴대전화기로 각종 동영상을 보고, 각종 메신저로 폭넓게 소통하고, 사진과 영상을 찍습니다. 또, 수십만 개가 넘는 애플리케이션이 우리 삶을 극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그 대변화를 처음 이끌어낸 스마트폰 최초 개발자 ‘스티브 잡스’란 사람에게 노벨상을 주는 셈입니다.

실제로, 올해 생리의학상을 받은 ‘생체시계’는 1980년대 초부터 연구가 진행됐던 분야입니다. 수상자들은 1984년 '피리어드(Period) 단백질'이 생체시계를 조절하는 핵심적인 유전자라는 걸 밝혀냈는데, 이 생체시계 연구는 '시차 적응' 등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더 나아가 항암치료 등을 하는 데 있어 생체리듬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어떤 주기에 치료하면 최적의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노벨물리학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라이고(LIGO) 중력파 연구팀'은 1960년대부터 관련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공동 수상자들은 검출하기 매우 힘들었던 중력파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는데, 그 중력파는 그동안 광학, 전파를 통해 볼 수 있었던 우주연구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냈습니다. 한마디로 '세상과 우주를 볼 수 있는 눈'을 창조해낸 것이죠.

그럼, 노벨화학상은 어떨까요? 수상자 리처드 헨더슨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도 1990년 전자현미경을 통해 원자 분해능에서 ‘3D 단백질 이미지’를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프랭크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이 기술을 여러 분야에 적용하는 수준까지 확장해냈습니다. 실제로,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는 "저온전자현미경을 통해 생화학지도 작성이 가능할 것"이라며 수상 배경이 ‘다른 학문 분야에 대한 공헌’에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들 연구의 공통점은 다른 학문은 물론, 전체 인류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연구란 점입니다. 기존의 것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인류와 학술공동체에 공헌할 수 있는 새로운 초석을 쌓은 연구란 겁니다.

우리는 왜 노벨과학상을 못 받는 걸까?

무너져 가는 우리나라 ‘기초과학 연구’

다시 우리 얘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기자이기 전에 연구자로서 주변을 보면. 참 열심히, 성실히,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실험하는 연구자들이 많습니다. “밤이 깊어도 연구실 불은 꺼지지 않습니다.”라는 어느 광고 문구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불철주야 연구에 매진하는 훌륭한 연구자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연구자들의 피와 땀이 오늘의 우리나라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 연구자를 둘러싼 ‘시스템’입니다. 연구비 지원과 같은 기초적인 ‘시스템’은 아직 연구자 개인들이 들이는 노력에 미치지 못하고 생각합니다.

흔히 언론에선 “우리나라 기초과학연구비는 2조 원대로, 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전합니다.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예산이 결코 적지 않다는 겁니다. 물론,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물리학과 생물학, 화학, 지구과학, 수학 등 이른바 ‘순수 기초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지원만 따져보면 약 4천억 원대로 확 줄어듭니다. 실용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공학이나 임상의학과 달리, 순수 기초과학은 연구비 대부분을 정부 지원에 의존할 수박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기초과학분야 연구비가 턱없이 부족하니, 연구를 이끌어갈 학부와 대학원생, 이른바 '포닥(Post-Doctor)'으로 불리는 '박사급 연구원들'은 '춥고 배고픈' 기초과학에 쉽게 발을 들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연구할 인재들이 없으니, 연구 성과도 당연히 잘 나올 수가 없겠죠. 성과가 없으면 연구비를 받기도 다시 어려워집니다. 한마디로 끝없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겁니다. 대학에서 '기초과학 전공' 자체가 사라져 가는 현실이 이를 반증합니다.

● 시들어가는 '풀뿌리 기초과학 연구'

이런 상황에서 총예산을 늘리지 않고, 오직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겠다는 목표 아래, 상대적으로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소수의 '스타 과학자'에게 연구비를 집중하면, 안 그래도 힘든 기초과학은 더 고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윗돌을 빼내 아랫돌에 괴는 것'에 불과한 겁니다. 안 그래도 연구비 따기 어려운 기초과학 분야에서, 소수의 스타 과학자에게만 돈이 몰리면, 소위 '풀뿌리 연구'에 대한 지원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기본 연구비조차 못 구한 과학자들이 속출하는 겁니다.

따라서, 기초과학 예산의 효용을 높이려면, 기초과학과 공학, 임상의학을 분리해 연구비를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기초과학 연구가 말라죽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동시에 기초과학에 대한 절대적인 연구비도 증액해야 합니다. 기초과학 연구비 4천억 원이 언뜻 듣기엔 대단한 액수인 듯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잠수함 1대 가격에 불과합니다. 이 돈을 학부생, 대학원생을 포함한 수만 명의 기초과학자가 잘게 쪼개 나눠 쓰는 겁니다.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지원을 분리하지 않고, 지원 총액도 늘리지 않고서 노벨상을 운운하는 건 '복권을 사지도 않고, 1등에 당첨되길 바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당장 이웃 일본은 이미 100년 전인 1917년, 과학기술 관련 연구 및 대중 확산을 목적으로, 일본 문부과학성 산하에 '이화학연구소(RIKEN)'이란 과학기술 연구소 만들어 기초과학 연구를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를 대거 영입하고, 기초과학 연구에만 매년 1천억 엔(1조 14억 원) 이상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기초연구 강국 미국도 세계 최대 과학박물관 스미소니언에 매년 1조 원가량의 예산을 지원합니다. 물론, 모든 예산의 집행권을 박물관에 맡깁니다. 예를 굳이 더 들지 않더라도, 과학기술 선진국에선 이런 사례는 전혀 낯선 모습이 아닙니다.

● 연구 성과는 개인이 아닌 ‘학술공동체의 업적’

끝으로, 노벨상의 영광은 수상자들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게 아닙니다. 다시 말해, 수많은 사람의 ‘집단적 노력’으로 이루어진 과학적 업적이란 겁니다. 나날이 복잡하고 깊어지는 오늘날 과학계에서 연구 성과는 더는 고독한 천재과학자 몇 명의 산물만이 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중력파 존재를 확인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LIGO 연구진'은 저자 목록만 3장에 이릅니다. 201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힉스보손' 연구는 연구에 관련된 인력만도 5천 명이 넘습니다. 최근엔 아무리 작은 연구라도 해도, 논문 하나에 10명 이상의 연구자가 관여하는 게 예사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도, 정부의 기초과학 연구 지원이 이른바 '노벨상에 근접한 스타 과학자' 혹은 당장 사업화할 수 있거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분야에만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그보단 장기적 관점에서, 긴 호흡으로, 좋은 연구 주제를 발굴하고 해당 분야를 체계적이고 장기적으로 꾸준히 지원할 수 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끝으로,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발전을 기원하며, 해당 분야에서 나름 독보적이란 평가를 받는 어느 연구자의 일갈로 기사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노벨상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귀한 연구결과의 격 떨어지는 것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도 오직 노벨상 얘기만 한다. 연구비 몰아주기도 심하고, 이른바 ‘트렌디(trendy)’한 연구가 아니면 연구비를 받기조차 어렵다. 행여, 연구비를 조금이라도 받으면, 어서 결과 가져오라고 압박하기 바쁘다. 이런 상황에선, 다양한 학문이 건강하게 발전하기 어렵다. 연구해본 사람들은 안다. 백 번, 천 번, 아니 만 번 실험해도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까 말까 한데, 연구비를 주는 사람들은,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 시간을 기다려줄 인내심이 없다. 결국, 이 나라에는 경쟁력 있는 연구 분야를 발굴하는 안목도, 연구를 지원할 재원도, 그리고 연구 성과를 기다려줄 인내심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