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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스페셜] 5·18 헬기 사격, 조종사의 증언⑤ "노태우가 지휘하는 헬기서 기관총 쐈다"

장훈경 기자 rock@sbs.co.kr

작성 2017.09.30 15:34 수정 2017.09.30 16:10 조회 재생수218,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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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스페셜] 5·18 헬기 사격, 조종사의 증언⑤ "노태우가 지휘하는 헬기서 기관총 쐈다"
● "헬기 사격, 지시 없이는 할 수 없다"

헬기 사격과 지상 사격은 차이가 큽니다. 전두환 씨는 올 초 낸 자신의 회고록에 “자위권은 상급자가 부여하는 권한이 아니다”라며 “계엄군의 발포는 시민군의 위협에 따른 정당방위권의 행사이지 발포 명령에 따른 게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계엄군의 지상 사격은 지휘관의 지시나 명령 없이 위협에 따라 자의적으로 이뤄진 것이란 주장이지요.

헬기 사격은 다릅니다. 기관총 무장이나 실탄 지급, 발포 등 이 모든 게 지시 없이는 이뤄질 수 없습니다. 기록도 남겨야 하지요. 37년 만에 전일빌딩 탄흔이라는 증거가 발견돼 사실상 처음으로 조사가 시작된 80년 5월 헬기 사격의 진실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헬기 사격이 있었다면 그 지시를 내린 명령자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 노란 비표…"502 대대 헬기가 쐈다"

80년 5월 21일, 최형국 씨는 광주 자신의 집 마당에서 헬기가 옛 전남도청 방향을 향해 기관총을 쏘는 걸 봤다고 말했습니다. 21일은 민주화운동 기간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날입니다. 최 씨는 자신이 본 헬기가 공격 헬기인 500MD였고, 발포한 기관총은 7.62mm 기관총이었다고 했습니다. 비행 기종과 기관총의 종류까지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것은 최 씨가 이 헬기 부대 출신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최 씨는 육군 제1항공여단 31항공단 502대대에서 79년에 제대했습니다. 전역 1년 뒤에 헬기 사격을 봤다고 한 것이지요. 최 씨는 502 대대 헬기 꼬리 쪽에 있는 노란 비표 때문에 사격을 한 헬기가 502 대대 헬기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취재진이 당시 출동했던 502 대대 조종사를 추적해 물어봤는데 “수도경비사령부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지상에서 봤을 때 꼬리 쪽에 있는 노란 표시를 보고 식별할 수 있도록 502대대 헬기만 이런 비표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 502 대대 지휘, 수경사령관 노태우

당시 육군 1항공여단은 모든 헬기의 지휘를 다 맡지 않고 필요한 부대에 헬기를 배속시켜 해당 부대의 명령을 받게 했습니다. 실제 당시 공격헬기 500MD 대대가 6개 있었는데 한 개 대대만 빼고 나머지 대대는 모두 다른 부대에 배속시켰지요. 502대대는 수도경비사령부에 배속돼 청와대 경비 임무를 맡았습니다. 청와대 상공을 날기 때문에 다른 대대 500MD와 달리 로켓포를 빼고 기관총으로만 무장했다고 합니다. 502대대 출신 조종사는 “수경사의 상징에 노란색이 들어가 꼬리 부근에 노란 비표를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지요.

당시 수경사령관은 노태우 씨였습니다. 전두환 씨와 육사 동기인 노 씨는 신군부의 핵심이었지요. 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의결하는 국무회의장 주변에 수경사 헌병대를 배치해 강압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등 5.18 민주화운동 초기부터 역할을 했습니다. 5월 21일 계엄군이 자위권 발동을 결정했던 국방부장관 주재 회의 석상에도 노 씨와 전 씨가 함께 있었다는 여러 기록들이 남아 있습니다.

● 21일엔 무장헬기 없다고 했는데…
5·18 헬기사격그간 육군1항공여단 관계자들은 광주에 무장헬기가 간 것은 5월 22일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헬기 사격 목격자가 가장 많은 21일에는 사격을 할 수 있는 헬기가 없다는 논리였지요. 하지만 최형국 씨의 말이 맞다면 지휘관들의 주장과 달리 누군가는 21일 이전에 무장헬기를 광주에 내려보냈다는 말이 됩니다. 육군 항공부대가 아니면 실제 지휘권을 갖고 있었던 수경사령관 노태우 씨 등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뜻입니다.

● 꾸준한 '지휘체계 이원화' 논란

사실 5.18 민주화운동 기간 중 계엄군의 발포나 진압 등에 신군부가 개입했다는 이른바 지위체계 이원화 의혹은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육군본부-2군-전투교육사령부-31사단-공수여단, 항공여단’으로 이어지는 정상적인 지휘계통 대신에 ‘보안사-특전사-공수여단’로 이어지는 또 다른 지휘계통이 있지 않았느냐는 의혹입니다.

전두환 씨는 지난 2003년 SBS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나도 계엄사령관의 부하”였다며 “지휘체계 이원화는 군에 대해서 전혀 무식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고 일축했습니다. 하지만 군 관계자들의 말은 달랐습니다. 당시 전교사 교육훈련부장으로 육군 준장이었던 임 모 씨는 95년 검찰 조사에서 "광주 진압을 총지휘한 것은 황영시 참모차장이었고, 배후에는 물론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들이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는 SBS 기획취재팀이 만난 최형국 씨와 502 대대 조종사를 만났습니다. 80년 5월 광주에 헬기 사격의 유무를 넘어 발포 명령, 지휘체계까지 밝히겠다는 의지입니다. 헬기 사격이 이뤄졌다면 지시한 사람은 분명히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