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 제보하기

[취재파일] 드라마 '환락송'으로 본 중국 음악회 문화

김수현 기자 shkim@sbs.co.kr

작성 2017.09.18 14:02 조회 재생수1,195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드라마 환락송으로 본 중국 음악회 문화
중국어 공부를 위해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지 1년여, 처음엔 보보경심, 랑야방 같은 사극으로 재미를 붙였지만 요즘은 현대극을 주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 중국 사극은 아낌없이 쓰는 제작비 덕에 세트나 의상이 볼 만하고 소재가 될 만한 이야깃거리가 넘쳐서, 다소 유치하게 느껴졌던 중국 현대극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해왔어요. 하지만 사극에서 사용하는 말투가 문어체, 고어체로 현대인이 실생활에서 쓰는 중국어와는 약간 달라서 중국어 학습에 최적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좀 찾아보다 보니, 중국에서 제작되는 드라마가 워낙 많아서 개중 괜찮은 현대극도 종종 나온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현대극을 보면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중국어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현대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이나 생활양식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컸습니다. 제가 한국에 돌아오기 직전 봤던 드라마 '환락송'은 그런 면에서 더 흥미로운 드라마였고요.

상하이에서 '환락송'이라는 이름의 아파트 22층 세 집에 사는 젊은 여성들의 일과 사랑 이야기인데요, '환락송'은 베토벤의 '합창'교향곡 중 나오는 '환희의 송가'를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영어로는'Ode to Joy'입니다. 드라마의 주제음악 역시 '환희의 송가' 멜로디를 편곡해 만든 경쾌한 음악이고요. 이 드라마는 한국 케이블 채널을 통해서도 방영돼 꽤 인기를 얻었다 합니다.

'환락송' 아파트 22층에는 세 집이 있는데, 양 끝 두 집에는 각각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됐고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월스트리트 금융가에서 일하다 귀국해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는 앤디, 그리고 미국 유학을 다녀온 푸얼다이(富二代, 부자 부모를 둔 사람을 가리키는 말. 한국어의 '재벌 2세'와 비슷한 느낌)로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사업을 시작한 취샤오샤오가 삽니다. 가운데 집에 사는 세 사람은 이들과 형편이 다릅니다. 고향도 출신학교도 다르지만, 상하이에서 어떻게든 정착해보려고 분투하는 직장 여성 세 명이 비싼 방세를 감당할 수 없어 함께 살고 있습니다.
환락송'환락송'을 통해 저는 중국 젊은이들의 결혼관과 애정관,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있는 남존여비 사상, 도시와 농촌의 빈부격차 등 중국의 사회상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또 저에게 흥미로웠던 건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의 모습이었어요. 이 드라마에는 부잣집 딸 취샤오샤오가 사귀는 의사가 한 명 나옵니다. '랑야방' '위장자'등 다른 인기 드라마에도 출연했던 배우 왕카이가 맡은 역인데요, 자오성의 이 의사는 알아주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이지만 샤오샤오는 클래식 음악에는 도통 흥미가 없고 교양이 부족한 것으로 나옵니다.

22층 가운데 집에 사는 세 명 중 한 명인관관은 차분한 성격에 클래식 음악 듣기와 독서를 좋아합니다. 관관은 어느 날 음악회를 보러 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남자에게 첫눈에 반하는데, 알고 보니 그가 샤오샤오의 남자친구인자오 선생(드라마에서는 계속 '자오 의사'로 호칭하는데, '자오 선생'으로 하겠습니다.)로 입니다. 두 사람은 공연장의 음반 가게에서 동시에 똑같은 음반을 사려고 손을 뻗게 되는데요, 바로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와 슬라브 무곡이 수록된, 쿠르트 마주어 지휘로 뉴욕 필이 연주한 텔덱음반입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자오 선생은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자기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관관에게 말을 겁니다.

"드보르작을 좋아하세요? 품위 있으시군요. 클래식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대개 베토벤 모차르트 정도만 압니다. 물론 거장들의 작품도 훌륭하지만, 드보르작의 친근함과 소박함, 자연스럽고 거침없음 역시 운치가 있어요. 이 CD에 수록된 곡들은 모두 드보르작의 대표작이고, 민족적 색채와 선율감이 아주 독특해요."

이때 음반 가게 주인이 다가와 얘기합니다.

"두 분 다 정말 눈이 높으시군요. 그런데 재고가 한 장밖에 없는데 어쩌죠…."
환락송 CD결국 이 CD는 자오 선생의 양보로 관관이 사게 됩니다. 관관은 이 짧은 만남 이후 이름도 모르는 자오 선생한테 반해 음악회에 같이 온 학교 선배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어지죠. 하지만 저는 이 장면이 참 어색했습니다. 일단 자오 선생이 처음 본 사람에게 너무 잘난척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드보르작을 좋아하니 품위가 있다? 베토벤 모차르트는 '거장'인데, 드보르작은 '거장'이 아닌가? 물론 "다양한 작품을 찾아 들으니 클래식 애호가 중에서도 수준이 높으시군요", 이런 얘기를 하려는 거겠지만, 아무래도 좀 어색합니다. 가게 주인의 말도 오글거리고요.

그런데 음악회가 시작되자 더 이상한 장면이 나옵니다. 관관과 같은 집에 사는 판셩메이는 집안에 우환이 있고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와중에 기분 전환 좀 해보려고 한껏 치장을 하고 관관을 따라 음악회에 왔습니다. 하지만 근심이 있으니 음악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결국은 음악회 도중 혼자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런데 울고 있는 판셩메이를 본 자오 선생이 몰래 사진을 찍어 음악회에 동행하지 않은 샤오샤오에게 보냅니다. 중국판 카톡 같은 메신저로 사진과 함께 글까지 곁들여서요.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머리 들어 눈앞의 오합지졸을 보고, 머리 숙여 메뉴힌을 그리워하네. 머리 들어 초보 연주자를 보고, 머리 숙여 요요마를 생각하네. 마침 현장에 잘 차려입은 미녀 한 명이 내 마음처럼 울고 있네."

메뉴힌과 요요마는 각각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와 첼리스트 이름입니다. 자오 선생은 지금 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오합지졸, 초보자로 묘사합니다. 연주회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울고 싶은데, 마침 나의 마음처럼 울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장면에서 '헉' 했습니다. 자오 선생이 이 드라마에서 굉장히 매력적 캐릭터로 나오기는 하지만, 이 음악회장에서의 행동은 참 별로였거든요. 음악회가 진행되고 있는데 사진을 찍는다? 그것도 허락도 없이 몰래 남의 사진을? 게다가 채팅까지 한다고?

중국 인터넷을 찾아보니 자오 선생의 이 행동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이 꽤 많더군요. 하지만 비난의 이유로 음악회 관람 매너를 든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그저 허락 없이 판셩메이의 사진을 찍었고, 판셩메이를 돈 많은 남자 유혹해서 한몫 잡으려는 여자로 오해하고 있던 샤오샤오에게 이 사진을 보내서 뒷담화하는 게 잘못됐다는 얘기였습니다. 물론 그것도 큰 잘못이지만, 연주가 진행되고 있는 음악회장에서 사진을 찍고 채팅하는 것 자체가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 아닌가요.

환락송 시즌2에서는 본격적으로 연애를 시작한 취샤오샤오와 자오 선생이 함께 음악회를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취샤오샤오는 본래 클래식 음악에 전혀 취미가 없지만, 남자친구의 취향에 맞춰 줘야겠다 작정하고 억지로 따라나서는데, 파헬벨의 캐논이 연주된 음악회장에서 계속 졸다 나오죠. 하지만 '이런 음악회는 처음이지?'하고 묻는 남자친구에게 이전에 클리블랜드 관현악단, 보스턴 심포니의 음악회도 가본 적 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하지만 '클리블랜드'를 잘못 말하는 바람에 남자 친구의 놀림을 받습니다. '클리블랜드'를 중국에서는'커리푸란'으로 부르는데, '커리란푸'로 잘못 말한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회에서는 여전히 자오 선생을 짝사랑하는 관관이혼자 음악회를 보러 왔다가, 취샤오샤오와 다정하게 함께 온 그를 발견하고 상심하게 되는데요. 제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음악회에 늦게 도착한 관관이 연주가 진행되는 와중에 음악회장에 입장하는 장면입니다. 맨 뒷자리에 앉는 것도 아니고 자기 자리를 찾아가 앉느라 꽤 시간이 걸리는데, 한국에서였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음악회에 늦게 도착하면 보통 한 곡이 끝나고 다음 곡을 준비하는 사이 시간에 입장하게 하지, 연주가 진행되는 와중에 입장시키지는 않거든요.

이 드라마 배경도 상하이지만, 상하이나 베이징 같은 중국의 대도시는 클래식 음악 관객층이 꽤 두터워 보입니다. 최근 한국 통영에서 베토벤 소나타로 이틀간 연주회를 연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는 이미 올 봄 상하이 콘서트홀에서 32곡에 이르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회를 1주일에 걸쳐 연 바 있습니다. 저는 당시 공연 시작 보름 전쯤에 이 소식을 듣고 공연도 볼 겸 상하이에 다녀올까 했었는데, 공연장 웹사이트에서는 모든 날짜의 공연이 이미 매진된 상태였어요. 다른 티켓 예매 사이트에서 아직 예매가 가능한 걸 발견하고 얼른 표를 샀는데 그다음 날 그 회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매진된 공연 표를 착오로 잘못 팔았다며 환불해주겠다 하더군요. 단편적인 일화지만, 중국의 클래식 음악회 관객이 꽤 많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음악회 관람 문화는 아직 성숙한 것 같지 않습니다. 드라마에서도 나왔지만, 중국에서는 공연 때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중국 간 지 얼마 안 됐을 때 칭다오 심포니 공연 보러 갔다가 정말 놀랐어요.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을 높이 쳐들고 공연 도중에도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었습니다. 공연장 직원들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고요. 제가 다녔던 중국 대학의 교수 한 명이 자기 SNS 계정에, '지금 공연장에 와 있다'며 공연 도중 찍은 사진을 버젓이 올려놓은 적도 있습니다.

베이징과 상하이의 큰 공연장들은 공연 중 휴대전화 사용이 문제라고 인식하고 이를 막기 위해 레이저 포인터까지 동원합니다. 베이징 대극원이 개관한 이후 도입한 아이디어라고 합니다. 관객석에서 누군가 전화를 꺼내 들면 공연장 직원이 뒤편에서 레이저 포인터로 그 관객 쪽으로 붉은 광선을 발사합니다. 레이저 포인터 사용은 효과가 좋은 편이지만, 랑랑 같은 인기 음악가가 연주할 때는 관객들이 붉은 광선도 아랑곳 않고 촬영을 해대니, 마치 '스타워즈'를 방불케 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답니다.

'환락송'은 드라마 제목도 클래식 음악 중에서 따온 것인데, 그래서인지 클래식 음악이 내용 전개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글에서는 음악회 관람 문화를 주로 살펴봤는데요, 기회 되면 다른 내용으로도 계속 써볼까 합니다. 그러고 보면 드라마를 통해 알 수 있는 게 참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소 과장이 있을지라도, 드라마에는, 특히 현대극에는, 그 시대의 사회상이 반영되기 마련이니까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