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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103 : 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17.09.10 07:22 조회 재생수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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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죽기 살기로 억지 부리는 사람은 얼마 없어. 대단한 탁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남이 이렇게 생각하니까, 세상이 이런 것이니까, 그런 정도의 생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야. 그런 사람들은 이쪽이 각오만 섰으면 밀어붙일 수가 있지.

물론 어디까지나 자기 아집을 관통시키려는 사람도 있어. 그런 때 건축가로서의 신념이 문제가 되는 거야. 그 자리에서 자기 생각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가는 평상시 어떻게 해왔느냐의 연장선상에 있어. 여차하면 저력을 발휘할 생각으로 있어도 평상시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았으면 갑자기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여름이 다 가버렸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이 왔지만 가 버린 여름도 아쉽네요. 봄은 청춘을 상징한다 하면 여름은 인생의 절정, 가장 뜨거운 시절을 가리킬까요. 내년에 또 여름이 오겠지만 그 여름은 올해와는 다르겠죠. '여름 별장'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보낸 여름부터 가을까지가 배경인 소설을 가져왔습니다. 일본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입니다. 원제는 '화산 기슭에서'라고 합니다. 

작가는 1958년생인데 출판사 편집자로 오랜 기간 일하다 2012년에 50이 넘은 때에 이 소설로 비로소 문단에 작가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소설로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소설엔 70이 넘은 노건축가와 약관이 조금 지난 젊은 청년이 등장하는데 작가의 연배는 그 가운데라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과거를 더듬어보고 노년을 내다보고... 하는 시점의 중간인 걸까요.

팟캐스트 첫머리에 읽은 건, 이 노건축가가 청년에게 거의 마지막으로 해주는 말입니다. 

소설은 가루이자와 라는 일본의 고급 별장지, 그리고 1982년.. 지금으로부터 보면 35년 전이 배경입니다. 무라이 건축설계사무소에 막 입사한 신입사원 사카니시의 시선에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일본의 노건축가 무라이 슌스케가 운영하는 이 사무소는 해마다 여름이면 아사마 산이라는 화산 기슭에 있는 무라이의 여름 별장으로 옮겨 일을 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여름 별장과 무라이 슌스케, 사카니시의 입사 경위 등이 고루 담긴 소설 앞머리를 먼저 읽습니다.

"안개다. 어느 틈에 어디에서 솟구쳤는지 하얀 덩어리가 계수나무 가지와 잎사귀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움직인다. 조용했다. 새도 포기하고 지저귐을 그만두었나 보다. 유리창을 열고 코를 멀리 내밀듯이 얼굴을 내밀고 안개 냄새를 맡는다. 안내 냄새에 색깔이 있다면 그것은 하얀색이 아니라 초록색일 것이다.... 안개는 아무리 깊어도, 해가 뜨면 이윽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새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지저귀기 시작한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선생님이 돌아오실 거다. 한 시간 정도 지나면 다른 스태프들도 일어나리라."

"고도경제성장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안이한 자기과시욕에 구애되지 않고, 실질적이면서도 시대에 좌우되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닌, 그러면서도 사용하기 편리한 건물을 무라이 슌스케는 하나하나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카니시가 새로 들어온 이 해, 1982년엔 무라이 사무소에 큰 프로젝트가 생깁니다. 바로 국립현대도서관 신축 공모에 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카니시가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말이죠. 여름 별장에서의 업무 풍경, 다 같이 연필을 깎는 대목에선 어딘가 장인들의 풍모도 엿보입니다. 5장을 읽습니다.

"연필 깎는 소리로 하루가 시작되는 것은 기타아오야마나 여름 별장이나 같았다. 시작해보니 분명히 그것은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작업으로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끓이는 향내처럼, 연필을 깎는 냄새에 아직 어딘가 멍한 머리 심지가 천천히 눈을 뜬다. 사각사각하는 소리에 귀의 신경도 전원이 켜진다."

"나눗셈의 나머지 같은 것이 없으면 건축은 재미가 없지. 사람을 매료시키거나 기억에 남는 것은 본래적이지 않은 부분일 경우가 많거든. 그 나눗셈의 나머지는 계산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야. 완성되고 나서 한참 지나야 알 수 있지."

"잘 다루지 못하는 새 노를 손에 들고,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나는 작은 보트를 젓기 시작하고 있었다. 곁눈질하다가는 금방 밸런스를 잃고 말 것이다. 보트는 어느 틈엔지 온화한 만을 빠져나가 망망한 큰 바다의 일렁임 속에서 어설프게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었다."

"한 점의 틈도 그늘도 없는 완벽한 건축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그런 것은 아무도 못 만들어. 언제까지나 주물럭대면서 상대방을 기다리게 할 만한 것이 자신한테 있는지, 그렇게 자문하면서 설계해야 한다네."


다시는 오지 않을 2017년의 여름을 여러분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출판사 비채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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