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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왜 '황금번호판'은 강남 외제차에 몰려있을까

전형우 기자 dennoch@sbs.co.kr

작성 2017.09.08 15:02 수정 2017.09.08 17:21 조회 재생수78,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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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왜 황금번호판은 강남 외제차에 몰려있을까
▶ '7777' 황금 번호, 추첨이라더니…특정 지역에 몰린 이유?

▶ "잘 아는 공무원에 부탁…" 수백만 원 '황금 번호' 뒷거래

● 강남의 고급 외제차량에 몰린 '황금번호'

자동차 번호 중 '7777, 8888'처럼 한 숫자로만 이뤄졌거나 '3000, 4000'처럼 1천 번대 숫자는 운전자들 사이에서 '황금번호'라 불립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장모 김장자 삼남개발 대표의 차량도 황금번호인 '7777'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번호들은 기억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고, 주로 과시용으로 사용됩니다.

자동차등록령에 따르면 차량번호는 무작위로 추첨된 10개 숫자 중 운전자가 마음에 드는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정해집니다. 추첨을 통해서라면 지역과 차종에 상관없이 비슷한 비율로 ‘황금번호’가 분포돼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서울 강남 지역의 고급 외제차량에서 유독 황금번호가 많이 눈에 띕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실제로 강남구 청담동을 1시간 가량 걸어서 돌아다녔더니 황금번호판이 달린 차량이 8대나 있었습니다. 모두 벤틀리, 벤츠, 아우디 등 비싼 외제차량이었습니다.
자동차 황금번호국토교통부가 박성중 의원실에 제출한 2014년부터 올해 7월까지의 통계를 분석해봤습니다. 한 숫자로 이뤄졌거나 0이 세 개 들어간 차량번호(자가용, 2017년 현재 운행되는 차량기준)를 모으니 전국에 2만7천 대가 나왔습니다. 지역과 차종은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서울의 경우 한강을 기준으로 남쪽과 북쪽이 차이 났습니다. 차량 소유주의 거주지를 기준으로 강남구는 황금번호가 553, 서초구 298대, 영등포구 306대인데 강북구는 73대, 동대문구 103대, 은평구 128대 등이었습니다. 지자체별 등록된 차량 숫자로 나눠 봐도 강남구는 360대당 한 대꼴로 황금번호가 있었는데 강북구는 830대당 한 대로 2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황금번호판차종 또한 고르게 분포되지 않았습니다. 현대나 기아 등 국산차들도 황금번호가 있었지만 1억 원이 넘는 고급차량들도 높은 비율로 황금번호가 있었습니다. 롤스로이스 중 38대, 벤틀리 94대, 포르쉐 318대, 랜드로버 471대, 벤츠 2천7백 대 등이 황금번호판을 달고 있었습니다. 이런 고급 차량들이 국내에 출시된 숫자를 감안하면 매우 높은 확률로 황금번호를 얻은 겁니다.  

● 50만 원에서 300만 원까지 거래되는 황금번호

강남의 고급 외제차 소유주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황금번호를 확보한 건 물론 운이 좋아서는 아닙니다. 황금번호는 자동차등록령에 명시된 추첨과 관계없이 돈을 주고 매매되고 있었습니다. 적게는 50만 원에서 많게는 300만 원까지 시세가 형성돼 있었습니다. 

차에 관심이 많은 30대 남성 A씨는 자동차 딜러를 통해 '포커번호'라 불리는 한 숫자로만 이뤄진 황금번호 2개를 구매했습니다.

[A씨 / 황금번호 구매자]
"골드번호에 관심이 많았는데 추첨으로는 뽑히지가 않아서 주변 분들한테 알아보니까. (황금번호를) 사는 거지 운 좋게 (추첨으로) 뜰 것 같냐는 이야기를 듣고 (황금번호 하나당) 2백만 원 선으로 저는 구매했어요."


황금번호는 차량 주인이 자동차 딜러를 통해 요청하면, 딜러는 자동차 등록 대행업체로부터 좋은 번호를 건네받는 방식으로 매매됐습니다. 구청 자동차등록사업소에 머물며 등록을 대신해주는 대행업체 직원들 또한 추첨 방식을 통해 뽑힌 10개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원칙입니다. 일반 시민과는 달리 대행업체 직원은 어떻게 황금번호를 원하는 대로 확보할 수 있었을까 서울에 한 구청을 찾아갔습니다.

[A구청 관계자]
(황금번호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습니까?) "그런 거 없어요. 랜덤으로 10개 뜨면 선택하시면 돼요. (황금번호가) 언제 나올지 저희도 모른다니까요."


구청 직원으로부터 차량 소유주든 대행업체든 무조건 추첨된 10개 중에서 딱 한번만 선택할 수 있다는 원칙적인 답변을 들었습니다. 구청 맞은편 건물에 있는 대행업체를 찾아가보니 말이 달랐습니다. 대행업체 직원은 50만원이면 황금번호를 구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해당 업체는 싸게 파는 편이고 다른 곳은 시세가 더 비싸다고도 했습니다.
황금번호판자동차 대행업체 직원으로 일했던 B 씨를 만나 어떻게 황금번호를 확보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B 씨는 구청 자동차등록사업소 소장이나 과장들이 은퇴를 하고 나가서 등록 대행업체를 차린다고 말했습니다. 구청 공무원과 대행업체 사장이 선후임 관계로 엮인다는 겁니다. 또 공무원과 대행업체 간 유착에 대해서도 털어놓았습니다.

[B 씨 / 전직 대행업체 직원]
"구청 직원하고 대행업체하고 매일 보니까.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니까. 대행업체에서 (고객에게) 수수료 100만 원을 받아왔다. 그러면 (공무원한테) 밥이라도 한 끼 사줘야 하고 뭐라도 하나 해줘야하기 때문에."


B 씨는 예전에는 수수료 중 20, 30%까지 공무원에게 떼어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 구청이 대행업체에 추첨 없이 황금번호 넘겨줘 

국토교통부 취재결과, 몇몇 구청들은 대행업체에게 황금번호를 추첨 방식이 아니라 바로 등록해주고 있었습니다. 자동차등록령 21조에 의하면 말소 번호의 경우 6개월 이전에는 소유주에게 다시 발급이 가능합니다. 6개월이 지난 말소 번호는 국토교통부에서 취합해 검증을 한 뒤 다시 구청으로 보내져 추첨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발급됩니다.

대행업체가 말소된 황금번호에 대한 정보를 얻어와 구청 공무원에 이를 다른 차에 등록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구청 공무원은 국토교통부의 검증 없이 자체적으로 말소번호를 소유주가 아닌 사람에게 재발급해주는 방식으로 황금번호는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방식 때문에 황금번호는 추첨을 통해 공평한 방식으로 발급되지 않고, 대행업체가 황금번호를 독식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대행업체와 구청 간에 유착 가능성이 매우 커지고, 수배번호 등 범죄에 사용된 차량번호도 국토부 검증 없이 재발급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국토부 관계자 또한 허점이 있던 부분을 인정했습니다.

[국토교통부 담당 공무원]
"(국토부가) 회수했다가 검증하고 가져가야 하는데, (구청이) 자체적으로 바로 쓰고 있어서 나중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많아요. 저희가 조금은 정교하게 못 한 부분이 있죠."

황금번호판● 소나기가 지나가고 난 뒤 

의원실의 자료요청이 이뤄진 뒤, 지난 8월 24일 국토부는 전국의 지자체에 시스템 개선 공문을 내렸습니다. 앞서 말한 구청이 자체적으로 대행업체에 말소번호를 등록해주는 방식을 하지 못하도록 명시했습니다. 효과는 현장까지 바로 나타났습니다. 돈을 주면 황금번호를 구해줄 수 있다던 대행업체에 다시 문의를 해보니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말했습니다.

[C 씨 / 대행업체 직원]
"일주일 전에 (구청에) 공문이 내려와서 막혔데요. 해주지 말라는 식으로 내려왔겠죠 국토부에서. 그나마 ‘유도리’있던 구청도 이제 조금 막혀가지고."


자동차 등록에 대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대행업체는 '소나기를 피해야' 했다고 말합니다. 전직 대행업체 직원은 예전에 한 연예인이 외제차를 절도 했을 때, 최근에 김영란법이 통과됐을 때 한동안 공무원과 접촉을 자제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이번 국토부의 개선 조치가 있은 뒤 현직 대행업체 직원은 "당분간 아마 (황금번호 확보가) 조금 어렵게 되지 않을까. 나중에 또 (감시가) 느슨해지면 다시 하겠죠."라고 말했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는 한 공무원과 대행업체 간 은밀한 거래는 한동안 잠잠했다가 다시 고개를 내밀 것으로 보입니다. 박성중 국회의원은 "자동차등록령에 단속근거를 마련해서 경찰이 단속 할 수 있게 한다던지, 아니면 좋은 번호에 대해서는 경매를 통해서 살 수 있도록 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황금번호와 관련해 대행업체와 구청 공무원 유착을 수사한 건은 한 건도 없었습니다.

차량번호를 선정하는 것은 어찌 보면 사소한 일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황금번호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도 '은밀한 유착'과 '돈이면 해결할 수 있다'는 관행이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취재를 시작할 때 "옛날에는 그런 게 많았는데 요즘도 남아 있겠느냐"는 말을 들었고 저도 아직 이런 게 남아 있을지 반신반의했습니다. 대행업체와 구청, 국토부와 접촉하며 취재를 한 결과, 요즘도 큰 관점에서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