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무기개발 3대축 수장 인선…"통반장도 이렇게는 안 뽑아"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7.08.20 12:06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무기개발 3대축 수장 인선…"통반장도 이렇게는 안 뽑아"
지난 3월 18일 북한은 80tf(톤포스) 힘을 지닌 백두산 엔진의 지상연소 실험에 성공했습니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의 1단 추진체 엔진을 개발한 것입니다. 김정은은 지상연소 실험 현장에서 엔진 개발에 공헌한 과학자를 번쩍 업어 줬습니다. 7월 4일 백두산 엔진을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급인 화성-14형 시험 발사에 성공했을 때는 미사일 개발자를 안아 줬습니다.

김정은에게 업히고 안긴 북한 과학자들은 물론이고 옆에 있던 동료 과학자들도 펑펑 눈물을 쏟았습니다. 김정은의 얼굴은 더없이 밝았습니다. 김정은은 체제를 유지하는 절대 동력인 핵과 미사일의 개발을 맡은 과학자들을 이토록 우대합니다. 북한의 두뇌들은 앞뒤 안 가리고 명예와 돈, 보람이 뒤따르는 과학을 전공하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 인생을 바칩니다.
북한 미사일 과학자들을 격려하는 김정은무기 개발자들이 '최고 존엄'에게 극진한 사랑을 받는 북한과 우리나라의 현실은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방위사업청, 국방과학연구소(ADD),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국산 무기를 개발하는, 자주국방의 3대 메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권이 바뀌면 수장도 바뀝니다. 정권 공신들이 추천한 인물이 발탁되거나 공신들 중 적임자가 있으면 이른바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누가 됐든 무기를 알고 연구와 개발을 해본 전문가라면 환영받을 일입니다. 그렇지 않고 무기 개발과 도입 사업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인물들에게 전리품 마냥 3대 무기개발 기관을 넘기면 정권 눈치 보며 제 딴에는 정무적 판단을 해대는 통에 허투루 돈만 쏟아 붓고 똑바로 된 무기 하나 못 건질 우려가 큽니다.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소속 과학자들은 허탈해서 웅성거리고 있습니다.

●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 공모기간 또 연장…소장에 누구를 앉히려고

ADD는 소장을 공개 모집하면서 벌써 두 차례나 공모 지원서 제출 기간을 연장했습니다. 당초 지난 4일이 공모 지원서 제출 마감일이었는데 그제(18일)로 2주 연장했고 돌연 제출 시한을 한두 시간 남겨둔 그제 오후 다시 2주를 연장했습니다. ADD 속사정에 정통한 군 관계자는 "청와대가 미는 사람이 바뀐 것 같다”며 “대통령이 임명하는 유일한 군 연구기관의 장을 뽑는데 이 모양"이라고 혀를 찼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 ADD처음 지원서 제출 기간을 연장할 때는 아예 소장 응시 자격을 바꿨습니다. 4가지 응시 자격 가운데 민간인 관련 조항은 쏙 빼고 군인에게만 문호를 넓혔습니다. 군인의 응시 자격을 장성급에서 영관급 이상으로 바꾼 것입니다. 대선 캠프에 기웃거렸던, 무기 개발과는 전혀 무관한 모 예비역 대령을 위해 제도를 변경한 위인설법(爲人設法)이라는 반발이 국방부 안팎에서 나왔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니 청와대로서는 그 예비역 대령을 ADD 소장에 앉히기가 부담스러워졌나 봅니다. 소장 지원서 접수 마지막 날인 그제 오후, 국방부가 갑자기 접수 기간을 2주 더 연장한 이유입니다. 방산업체 관계자는 "그 예비역 대령을 뽑을 수 없으니 급히 새로운 인물을 찾은 것으로 안다"며 "이런 저런 증명서 떼고 지원서 작성하는데 1주일 정도 걸리니 접수 기간을 넉넉히 연장했다"고 귀띔했습니다. 그는 "동네 통반장도 이렇게는 안 뽑는다"고 비꼬았습니다.

이제는 군 이외의 국책 연구기관들의 수장들은 전문 연구인들이 맡고 있습니다. 유독 ADD 소장 자리만 정권 공신들의 전리품입니다. ADD는 자주국방의 상징과도 같은 곳입니다. 전리품 따위가 될 수 없습니다. 최고 수준의 기술자, 과학자가 수장을 맡아 뼈 속까지 철저히 개혁을 해야 할 곳입니다.

● 낙하산 관료가 무기 개발?

KAI는 국영기업이나 다름 없어서 정권이 바뀌면 정권이 새로 사장을 뽑아 앉혔습니다. KAI 신임 사장에는 청와대 수석에 내정돼 일주일 간 일을 하다가 인사 검증에 걸려 내정이 철회된 인물이 물망에 올랐나 봅니다. 청와대 수석의 길이 막히니 KAI 사장으로 보내는 '돌려막기 인사'를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는데 "일을 기막히게 잘 한다"는 신문 기사에 이어 며칠 전에는 이 인사가 KAI 사장에 유력하다는 기사까지 나왔습니다. 경제부처 차관 출신입니다. 해당 기사들은 그를 일 자리 창출에 적격이라는 평가했습니다.
한국항공우주산업 KAI그렇다고 전투기 만들어서 해외에 수출하는 일도 잘할까요? 전투기를 본 적이나 있는지 의문입니다. 전투기를 모른다고 해서 전투기 개발업체 CEO 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KAI의 사장 자리가 사실상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시점까지만 보장되기 때문에 어지간한 두뇌 아니고는 전투기 공부하느라 세월 보내기 십상입니다. 전문 지식이 없다 보니 해외 사업 파트너를 만나면 말문이 막히기 일쑤고 낙하산이면 정권 눈치 보기 바쁩니다. 관료들은 전투기의 생산 및 영업관리, 구조조정에 대한 이해도 모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방위사업청장으로는 전제국 전 국방부 정책실장이 임명됐습니다. 국방부 정책실장 출신일 뿐 군인은 아닙니다. 22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관료입니다. 몇 년 간 국방품질관리소 같은 곳에서 근무하긴 했지만 무기 개발 및 도입 전문가도 아니고 기술자, 과학자는 더더욱 아닙니다. 
방위사업청방위사업청은 KAI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무기의 도입과 개발을 주관하는 기관입니다. 관료의 정무적 판단보다는 기술자, 과학자의 기술적, 과학적 판단이 우선해야 합니다. 기술 한 톨 모르는 방위사업청장이 정무적 판단을 토대로 무기 개발, 도입 사업 밀어붙이다 망친 사례가 여럿입니다. 기술적으로 부족한 군이 무기의 작전요구성능(ROC)을 부적절하게 정하면 제동을 걸기 위해서라도 방위사업청장은 과학자, 기술자가 맡아야 맞습니다.

실제로 고위 관료 출신들이 여러 번 청장이 됐었지만 좋은 평가를 받으며 퇴임한 예가 많지 않습니다. 과학자에게도 단 한번 기회가 오긴 했었는데 과학자로서의 실력과 비전보다는 대통령과의 인연을 따진 인사여서 끝이 안 좋았습니다.

진보 정권이든 보수 정권이든 통제 불능의 북한과 맞서야 합니다. 강력한 국산 무기는 필수입니다. 무기를 개발하는 과학과 기술에는 진보도 보수도 없습니다. 무기 개발 책임자는 정권의 색깔, 정권의 부침(浮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야 합니다. 훌륭한 무기 과학자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