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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혐오표현과 표현의 자유가 부딪힌다면?

전형우 기자 dennoch@sbs.co.kr

작성 2017.08.07 15:57 수정 2017.08.07 17:34 조회 재생수5,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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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혐오표현과 표현의 자유가 부딪힌다면?
▶ '맘충'·'김치녀' 늘어나는 혐오표현…이대로 괜찮나요?

●  어디까지가 혐오표현일까? 

혐오표현(hate speech)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한국에서 혐오표현 논의는 최근의 일입니다. 2012년 ‘일베’ 사이트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혐오표현이 이슈화됐습니다. 지난해에는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여성혐오에 대한 논의가 촉발됐습니다.

사회가 양극화되면서 약자들이 또 다른 약자를 찾아 공격하고,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계층과 남녀, 지역 간의 갈등으로 몰아가는 일이 생겨납니다. 사회적 소수자를 희생양으로 찾아 문제를 덮어 씌우고 증오하는 환경에서 혐오표현은 자라납니다. 

먼저 어디까지가 혐오표현인지 기준을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비하하는 말을 하는 것과 도를 넘어서 혐오에 이르는 것은 어떻게 구분될까요.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혐오표현을 '소수자집단에 대한 혐오에 근거해 소수자와 일반청중을 대상으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사회적 소수자는 성별(여성), 인종(흑인·동남아시아), 성적 지향(성소수자), 지역 출신(전라도), 종교(무슬림), 장애 등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혐오표현이 다수가 아닌 소수자로만 특정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은 있습니다. 홍성수 교수는 혐오표현의 개념을 세우고 해악을 명확히 하는 데는 이러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합니다. 예컨대 남성을 비하하는 '한남충'은 비하 발언은 될 수 있으나 규제가 필요한 혐오표현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반면 사회적 소수자인 여성을 지칭하는 '김치녀'나 동성애 혐오 발언은 혐오표현에 해당됩니다.
혐오표현● 혐오표현의 해악

어찌 보면 혐오표현의 기준이 이중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혐오표현이 단순히 '기분 나쁜 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는데 실질적인 위협과 불안을 가져온다는 판단에서 나온 기준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혐오표현의 피해자를 상태로 실태조사를 하고 보고서를 냈습니다. 한국에서 공공기관이 혐오표현 피해에 관해 다룬 것은 이 때가 처음입니다. 여성과 이주민, 성소수자와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실시한 결과, 혐오표현을 당한 사람은 두려움과 지속적인 긴장감, 자존감 손상과 소외감 등의 심리반응이 나왔습니다.

또한, 자살충동과 우울증, 공황장애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심리적 피해 뿐 아니라 혐오표현에 노출된 소수자는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직장을 그만두거나 학교를 휴학, 전학하기도 했습니다.      

지하철역 출구에서 혼자 기다리는데 어떤 아저씨가 와서 "어디서 왔어? 외국인 맞지?"하고서는 "너 여기 와서 힘들게 돈 벌잖아. 나랑 같이 가면 매달 30만 원 용돈으로 줄게. 네가 나한테 와서 아내로 있든지 내 여자로 있든지 하면 된다."
- 이주민 여성 A의 목격 사례 

한 번은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저한테 "몰래 연애하다가 부모한테 맞아서 목발 짚게 됐지?"라고 깔깔 웃으면서 묻더라고요.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는데 "연애 해봤냐"고 하더니 "결혼은 했냐?", "섹스는 해봤냐". 처음 봤는데 그런 소리를 해요.
- 지체장애인 여성 B

퀴어퍼레이드가 열렸을 즈음인데 직장에서 동료들이 뉴스를 보고 성소수자가 화제에 오른 거에요. 그때 동료들이 "만약 내 옆에 '저런 것들'이 있으면 다 때려죽이겠다"는 말을 했다고
- 성소수자 C

영화가 나오고 한 6개월 간 협박 전화를 받게 됐는데요. 하루에 두 번 오기도 하고 세 번 오기도 하고. "조심해라", "너희 나라로 돌아가", "조용히 살아", "죽이겠다"
-한국 여성과 로맨스 다룬 영화의 주인공으로 출연한 이주민 남성 D


이처럼 혐오표현은 피해자인 소수자의 기본적인 존엄성을 침해하기도 하지만, 갈등을 유발해 사회적인 해악을 끼치므로 혐오표현을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논의도 나옵니다.

● 혐오표현도 자유에 속할까

혐오표현 규제 논의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기존에 가졌던 포지션이 뒤집힙니다. 한국의 경우, 진보 진영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해왔습니다. 군사정권에 의해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어온 경험 때문입니다.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가 정부에 대한 비판을 막는 수단으로 악용된다며 폐지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반면 한국의 보수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공산주의나 북한에 대한 찬양표현은 규제되어야 한다는 쪽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일베 사이트의 여성·호남 혐오 등이 일어나면서 진보 진영이 일베 사이트 폐쇄나 혐오표현 규제를 주장했습니다. 반면 보수는 표현의 자유 논리를 가져와 부작용이 크므로 규제는 옳지 않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한국에서도 혐오표현 규제에 대한 입법 시도는 있었습니다. 2013년 6월에는 안효대 의원이 '인종 및 출신지를 근거로 공연히 사람 혐오한 자를 1년 이하 징역,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형법개정안을 발의했고, 2015년 6월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이 혐오발언 규제 입법 토론회를 열고 발의를 준비했지만 두 번 다 통과되지는 않았습니다.  

혐오표현이 가져오는 사회적 해악과 표현의 자유가 부딪힐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미국은 수정헌법 1조에 표현의 자유를 명시할 만큼 자유를 중요시합니다. 1919년 앨라배마 판결에서 올리버 홈스 재판관의 말이 표현의 자유 옹호론으로 인용됩니다. 공공의 안전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없는 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결국 진리가 살아남는다는 홈스 재판관의 판결, 그리고 1950년대 사회주의를 탄압했던 매카시즘의 경험으로 미국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중시하는 전통을 가집니다.

반면 미국은 오랜 인종차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흑인들이 비교적 최근까지 혐오표현과 범죄에 노출돼왔고 마틴 루터킹 목사로 대표되는 공민권 운동의 흐름도 있어왔습니다.

이 두 가지 역사적 경험으로 미국은 혐오표현을 법적으로 규제하지는 않되, 공민권법을 제정해 인종차별을 광범위하게 금지하고 혐오 범죄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법제를 확립해놓고 있습니다. 또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이나 '평등임금법' 등 각종 차별금지법을 통해 특히 고용, 교육 분야에 엄격히 차별을 금지하도록 했습니다.

● 다른 나라의 사례들

미국에 비해 유럽은 혐오표현 규제에 적극적입니다. 여기에도 역사적 맥락이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나치의 만행을 반성하기 위해 혐오표현에 대해 강하게 처벌합니다. 유태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부정하거나 인종차별 발언을 하는 경우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형사처벌합니다. 또 최근에는 SNS 업체가 신고를 받은 지 24시간 내에 혐오표현물을 삭제하지 않으면 최대 650억 원의 벌금을 물리는 법안도 통과됐습니다.
혐오 표현 미삭제 시 최대 650억 원 벌금영국의 경우 오래전부터 공공질서 유지를 중요시하며 증오선동을 법적으로 규제해왔고, 프랑스 또한 혐오표현을 징역이나 벌금형으로 형사처벌하는 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독일과 같은 2차 대전 시기 만행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혐오표현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넷우익'과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모임)'의 혐한(한국인 혐오) 표현과 시위가 늘어나면서 지난해 6월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이 통과됐습니다.

이 법은 혐오표현을 처벌하는 규정은 없지만, 차별과 혐오 선동의 해소가 시급한 국가적 과제임을 상징적으로 밝히고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을 정해 추진하는 걸 목표로 제정됐습니다. 실제로 이 법에 근거해 혐한 시위를 금지 통고하는 법원의 결정이 나오기도 했고, 연간 120건이던 혐한 시위가 법 시행 이후 30여 건으로 줄었다는 통계도 나왔습니다.

이처럼 형사처벌이 아니더라도 혐오나 차별에 대한 일반 법률이 국가적 차원에서 선언되면 실제로 사회에서 혐오 표현이나 증오선동이 줄어드는 '표현적 효과'가 생겨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 법적 규제 밖의 대안들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혐오표현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아닙니다. 실제로 혐오표현 규제옹호론자도 법적 규제, 특히 형사처벌은 제일 마지막에 이뤄져야한다고 말합니다.

일본의 인권변호사 간바라 하지메는 저서 <노 헤이트 스피치(No, Hate speech)>에서 사회생활 전반에 걸친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기본권'을 제정하고, 벌칙이 없는 혐오표현 금지 규정을 설치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인권위원회 같은 기구가 차별 중지 권고를 하고, 기업이나 학교 등 공적인 부문에서 먼저 차별과 혐오를 없애는 조치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에 따르면 차별적인 표현은 규제할 수 있더라도 차별적인 생각까지 규제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혐오표현을 사라지게 하려면 규제보다 교육과 계몽이 중요하고, 특히 정치가의 발언이나 정부의 차별 정책을 시정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간바라 하지메는 법적인 규제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시민사회의 힘과 자정능력이라고 말합니다. 혐오 표현과 증오선동에 맞서서 대항하는 표현들과 시위를 통해 소수자들과 연대해 차별주의자들을 고립시키는 것이 사회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키는 길이라는 겁니다.  
성소수자 관련 포스터 훼손 사례한국에서는 매년 여름 성소수자의 축제 '퀴어퍼레이드'가 열립니다. 몇 년 전부터는 일부 보수기독교계에서 맞불집회도 열고 있습니다. 맞불집회에서는 "동성애가 에이즈를 옮긴다. 동성애는 치료대상이다." 등의 혐오표현들이 자주 나옵니다. 지난해 서울대학교에서는 성소수자의 입학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누군가에 의해 찢겨졌습니다. 학생들은 반창고를 붙여 현수막을 이어 붙였습니다. 

사실 법적 규제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반창고를 붙인 학생들처럼 혐오에 노출된 소수자에게 메시지를 주는 일인 것 같습니다. 이 공동체에서는 누구나 인종, 성별, 성적 지향, 종교, 장애 등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 받지 않고,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을 지키면서 불안에 떨지 않고 살 권리가 있다고 말입니다.


참고자료

<혐오표현, 자유는 어떻게 해악이 되는가?>, 제러미 월드론 지음
<노 헤이트 스피치>, 간바라 하지메 지음
국가인권위,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2016.12) 
국회입법조사처, 혐오표현 규제의 국제적 동향과 입법과제(20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