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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비 내리는 땅에서 하루키가 주워든 것

하루키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고

유성재 기자 venia@sbs.co.kr

작성 2017.08.05 13:45 수정 2017.08.05 16:28 조회 재생수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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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비 내리는 땅에서 하루키가 주워든 것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2017)를 읽었다. 모두 합쳐 1,000페이지가 넘는 꽤나 방대한 양으로, 중편 정도였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2013)와 단편 모음집인 [여자가 없는 남자들](2015)을 제외하고, 이 정도 길이에 필적하는 장편소설로는 [1Q84](2009)에 이어 7년 만이다.

만약에 그동안 하루키를 전혀 읽지 않은 독자가 하루키와 처음 만난 게 이 소설이라면, 과연 어떻게 읽었을까. 다시 말해, [기사단장 죽이기] 속에서 때로는 드러내 놓고, 때로는 암시적으로 변주된 하루키의 소설 속 장치들을 이른바 '첫 독자'들은 과연 어떻게 느꼈을까. 이런 의문이 자연스레 들 정도로 [기사단장 죽이기]는 곳곳에서 충성스러운 하루키 독자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일종의 '클리셰 모음집' 같은 느낌이었다. '하루키는 뭘 읽어도 다 똑같다'는 반응은 대개 이 지점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다.

● 변주되는 '장치'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일인칭'으로의 복귀다. 출간 직후에 이뤄진 몇몇 인터뷰에서 하루키는 [기사단장 죽이기]에 대해 [1Q84] 이후 오랜만에 일인칭 '나'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1Q84]를 순수한 삼인칭으로 완성해내고 나니 다시 한번 일인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죠."
-출간 후 마이니치 신문 인터뷰 中.


일인칭으로 돌아온 [기사단장 죽이기]는 일인칭이었던 이전 작품들의 설정과 장치를 굉장히 손쉽게, 그리고 영악하게 가져와 활용하고 있다. 마치 그걸 위한 '일인칭 복귀'처럼 느껴진다. 그러면 몸에 맞는 일인칭이라는 옷을 다시 걸친 하루키가 전작들에서 가져온 것들은 무엇일까.

먼저 배경부터.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화가인 주인공이 미대 동기 아마다 마사히코의 '선의'로 정착하는 곳은 도쿄 서남쪽 가나가와현 오다와라의 산속에 있는 저택이다. 그 저택은 아마다 마사히코의 아버지인 아마다 도모히코가 저택 겸 아틀리에로 사용하던 집으로, 도모히코는 저명한 일본 화가였지만 치매로 '오페라와 프라이팬의 차이도 잘 모르는' 상태가 되어 버린 뒤 이즈 고원의 고급 요양 시설로 보내졌다.

주인공이 친구의 아버지가 사용하던 오래된 집에 들어가 잠시나마(그러나 플롯상 중요할 수밖에 없는) 시간을 보내는 설정은 [양을 쫓는 모험](1982)에서 홋카이도 내륙의 고원 한가운데 자리한 '쥐'의 아버지의 별장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두 소설 모두 '별장'에 정착한 주인공 '나'는 어느 날 초현실적 존재의 방문을 받는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는 도모히코의 그림 속 존재인 '기사단장'이, [양을 쫓는 모험]에서는 '양사나이'의 탈을 쓴 친구 '쥐'(이미 죽은 존재다)가 문득 주인공을 찾아온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주인공 '나'의 모험이 현실 역사와 접점을 갖는 설정은 [태엽감는 새 연대기](1994~1995)를 연상시킨다. [기사단장 죽이기]의 '나'는 우연히 천장과 지붕 사이 다락방에서 집주인 아마다 도모히코의 미공개 작품 '기사단장 죽이기'를 발견하고, 그 뒤에 저택의 사유지에서 기묘한 '구덩이'를 발견한다. [태엽감는 새 연대기]에서는 버려진 저택의 마당에 있는 '우물'이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구덩이'와 '우물'은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일종의 '포털' 역할을 한다. 데칼코마니 같은 설정이다. '구덩이'에서 발견된 불구(佛具) '방울'과 '우물' 속에 주인공이 들고 들어간 '야구방망이'의 역할도 현실과 비현실을 이어주는 '부적'으로서 거의 같다.

다음은 인물. [기사단장 죽이기]의 초반부, 6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함께 한 아내 유즈가 떠나는 장면은 [태엽감는 새 연대기]에서 아내 오카다 구미코가 갑자기 사라지는 설정을 떠올리게 한다. 아내의 부재(혹은 상실)는 주인공이 새로운 경험과 깨달음의 세계로 떠나는 직접적인 계기라는 점에서 역시 같은 설정이다. 도모히코의 저택과 골짜기를 사이에 둔 '거대한 크루즈' 모양의 대저택에서 홀로 살고 있는 수수께끼의 남자 '멘시키'에서는 [스푸트니크의 연인](1999)의 '뮤'가 떠오른다. 둘은 공통적으로 이상적인 패션 감각을 가지고 있고, 아름다운 최고급 자동차를 운전한다.

또 주인공의 모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어떤 종류의 '비밀'을 갖고 있으며, 무엇보다 그린 듯 아름다운 백발을 갖고 있다. '멘시키'와 '뮤'의 백발은 [기사단장 죽이기]에 드러나 있듯 에드가 앨런 포의 단편소설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바다에서 거대한 폭풍을 만나 하룻밤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어부의 이야기다. 어부는 생존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는 외부적 위험에 노출되었지만, 아마도 '멘시키'와 '뮤'는 그에 필적할 만한 '내부적' 위험에 노출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내부적' 위험은 폭력을 수반한 '성적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심지어,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 '뮤'가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직접적 경위는, 역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장면-또 다른 자신이 무자비하게 강간당하는-을 봤기 때문이다. 뮤가 관람차 안에서 망원경으로 '당겨서' 본 자기 집이라는 '이격'의 공간감은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는 도모히코의 저택과 멘시키의 저택 사이의 공간적 거리로 재현된다.

여자아이의 등장도 빼놓을 수 없다. [기사단장 죽이기]에 등장하는 '아키가와 마리에'는 중학교 1학년이라는 설정이다. [댄스댄스댄스](1988)의 '유키'보다는 두어 살 위, [태엽감는 새 연대기]의 '가사하라 메이'와 [1Q84](2009)의 '후카에리'와 비교하면 역시 두어 살 아래 정도다. 하루키는 실로 교묘하게 '아키가와 마리에'를 '유키'와 '가사하라 메이'(그리고 '후카에리')의 중간 나이대로 설정했다. 이들은 모두 당돌하며, 대체로 어른의 세계에 관심이 많으며, 타인이 갖지 못한 신비한 능력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를 배경으로 이들은 다른 어른과의 관계에서는 구축되기 어려운 특수한 유대감을 주인공과 형성하고, 덕분에 주인공과 극히 배타적인 비밀을 공유하게 된다.

소설에서 '비현실 세계'에 등장하는 몇몇 존재들도 하루키의 전작들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단편 [TV피플]에서 TV 화면에서 기어 나올 수 있는 '작은 인간'의 '사이즈'는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묘사된 '기사단장'의 사이즈로 변주된다. 이즈(伊豆)에 있는 도모히코의 요양병원 병실에서 오다와라 저택 뒷산의 '구덩이'로 이어지는 비현실적 공간인 '메타포 통로'에서 '이중 메타포'로 지칭되며 주인공을 위협하는 존재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1985)의 '야미구로'의 복사판이다.

● 눈에 밟히는 친절

[기사단장 죽이기]의 마지막 장을 덮고 떠오른 작품은 단편 [중국행 슬로보트](1983)의 한 구절이었다.

'괜찮아, 먼지만 털면 아직 먹을 수 있어.'

하루키는 아마 [기사단장 죽이기]를 구상하면서 자기가 그동안 써 온 수많은 작품들을 차례로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기에게 '맞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자기가 '잘 쓸 수 있는 것'이 과연 어떤 이야기인지를 '추출'했으리라. 그래서 먼 길을 다시 돌아와 일인칭으로 정착하고,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일종의 '장치'들을 다시 가져와 재구성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루키가 새 소설의 재료로서 '먼지만 털면 먹을 수 있다'라고 생각한 이 장치들은 하루키 스스로가 평생에 걸쳐 이른바 '하루키 월드'의 토양에서 '재배'한 것들이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하루키는 이 토양의 존재까지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암시하고 있다. 바로 일본화가 도모히코의 이름(정확하게는 성-名字, 또는 苗字)인 '아마다(雨田)'를 통해서다. 여기서의 '아마다'의 뜻은 다름 아닌 '비 내리는 비옥한 땅'이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기르게 되는 딸의 이름이 '하나의 완결된 공간'이라는 의미의 '무로(室)'인 것도 절묘하다. 돌아온 아내 유즈가 지어준 이 이름은 저택 뒷산의 '구덩이'부터 도모히코의 오다와라 '작업실'과 이즈의 '병실', 그리고 도쿄 멘시키의 '사무실'까지 소설에 등장한 다층적인 '공간'이 겹치고 쌓인 '결과물'이다.

그러고 보면 작가로서 원숙기를 지나 만년기에 접어든 하루키는 뒤늦게(?) 이름(名)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본격적으로는 [1Q84]의 주인공 이름을 '아오마메(靑豆)'로 정한 작은 '위트'를 시작으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주인공을 둘러싼 주요 인물 이름에는 모두 색(色)을 넣었다.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2015)에 실린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도 중년의 성격파 배우 '가후쿠(家福)'의 행복을 이어주는 운전사 '와타리 미사키(渡 みさき)'가 나와 이름을 통한 메시지 전달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 와타리 미사키라는 이름의 의미에 대해서

● 시간은 흘러간다

많은 사람들이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고 '하루키는 다 똑같아'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똑같음'을 익숙하고 친밀한 것으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구태의연함으로 받아들일지는 독자 개개인이 하루키에 대해 갖는 자세와 온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솔직히 안심했다. 내가 20년 넘게 읽어온, 즐겨온, 좋아해 온 하루키가 그대로 거기 숨 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중국행 슬로보트]에서 위에 인용한 문장은 다음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말을 머릿속에 간직하면서, 나는 나라고 하는 한 인간의 존재와 나라고 하는 한 인간이 걷지 않으면 안 될 도정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생각이 당연히 도달하게 되는 한 지점-죽음, 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하루키는 올해 68세다. 이제 그도 많이 늙었다.

(사진=네이버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