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 제보하기

[월드리포트] 인구 감소와 취업…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최호원 기자 bestiger@sbs.co.kr

작성 2017.07.12 16:41 수정 2017.07.12 16:49 조회 재생수4,221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월드리포트] 인구 감소와 취업…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이 글은 국민대 일본학 연구소의 학술지 '일본공간' 21호(6월30일 발간)에 기고한 <인구감소가 한국 취업희망장들에게도 축복이 될까?>라는 글을 축약 정리한 겁니다. '일본공간' 분들의 노고에 감사 말씀드립니다.

지난달 일본 도쿄의 한 채용박람회를 다녀왔다. 박람회장은 취업용 정장을 입은 대학 3, 4학년생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이들보다 더 분주한 쪽은 기업들이었다.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4월 말 기준 유효구인배율은 1.48이다. 취업희망자 100명에 대해 일자리가 148곳이나 있는 셈이다. 한 기업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올해 25명을 뽑는데, 채용 예산은 2,000만 엔 이상이다. 사흘간 30, 40명이 우리 부스를 찾았다. 이들 가운데 5명 정도가 입사지원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회사는 성장하고 있다. 직원 1명이 늘면 매출이 1,000만 엔씩 늘 것으로 본다. 그래도 사람이 없다. 속이 바짝바짝 탄다.”
일본 채용박람회장에서 회사 관계자가 학생 1명이라도 잡아 회사 설명을 해주고 있다.일본 기업들은 입사지원자들을 붙잡기 위해 각종 입사 혜택을 쏟아놓고 있다. 도심 기숙사 무료제공, 월 5만 엔 이상 월세 지원, 출퇴근 교통비 전액 지원, 매년 수백 만 원의 근속 보너스 지급 등이다. 입사 경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입사하려면 엄격한 입사시험과 면접을 거쳐야 한다. 초봉은 대부분 20만~23만 엔 정도다.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중소기업들의 초봉이 25만~30만 엔으로 더 높다.
입사조건 홍보판에 '초봉 23만', '주택지원 5만엔' 등이 적혀있다.완전 구직자 우위 시장이다. 국내 취업준비생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일본 국가적으론 고민이 적지 않다. 우선 대학 교육이 부실해지고 있다. 열심히 공부를 하든, 안 하든 어느 정도 취업이 되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줄고 있다. 기업들은 우수 인재를 가려서 뽑을 수가 없다. 일본 신입 사원들의 3년 이내 퇴사율은 31.9%이다. 국내 대기업들이 신입 사원 퇴사율을 10% 이내로 줄이려는 것과 비교해보면 일본 기업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일본의 취업 시장은 역시 급격한 인구 감소와 관련이 있다. 지난 4월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일본의 생산연령인구(15~64세)은 2015년 7,728만 명에서 2040년 5,978만 명으로 줄어든다. 매년 70만 명씩 사라진다. 현재 우리 군 전체 병력 62만 5천 명보다 많은 인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인구가 감소하면 취업 천국이 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론 ‘아니다’라고 본다. 일과 일자리를 바라보는 한일 두 나라의 인식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관찰과 취재를 바탕으로 두 나라의 차이를 소개한다.
도쿄 시내 공사현장의 교통유도원들
● 1. 안전에는 '사람'이 필요하다

도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교통유도원’이다. 대부분 60대 이상의 고령자다. 일본 지자체들은 교통 흐름 및 보행자 안전에 영향을 미칠 경우 반드시 교통유도원을 배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한두 명이 아니다. 교차로마다 배치해야 한다. 어떤 공사 현장에선 작업자 4명에, 교통유도원 4명이 배치된 것도 본 적이 있다.

또, 고속도로를 지날 때면 공사표시 전광판에 사람 모양이 나와 하얀 깃발을 흔드는 걸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있는 장비다. 기계가 사람을 대체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선 전광판 주변에 이를 관리하는 사람이 별도로 배치된다. 안전 분야에는 기계보다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본 고급 칠기업체 '죠히코' 이미지
● 2. 물건의 기능이 아닌 '사람'을 산다

이미 세계 제조업의 품질 경쟁은 사람의 숙련도보다 첨단화된 공장라인과 조립 로봇들 간의 경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일본에선 여전히 많은 분야에서 사람의 수작업을 높이 평가한다. 유명한 쇼쿠닌(장인) 문화다. 대표적인 것이 칠기그릇이다. 나무를 깎아 만든 식기에 정성 들여 옻칠을 하고 무늬를 입힌다. 장인들이 만든 작은 칠기 밥그릇은 수십 만 원에 팔린다.

음식을 담는 그릇의 기능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장인의 정신과 솜씨를 사는 것이다. 공장 기계가 만든 칠기 그릇은 불과 수천 원에 팔린다. 이밖에 중국 공장에서 몇 초 만에 찍어낸 500엔 짜리 식칼과 일본 장인이 수십 시간 갈아 만든 50만 엔 짜리 식칼이 함께 팔리는 것이 일본 시장이다.

● 3. 책임은 '사람'에 물어야 한다

일본의 인력난이 심해지면서 우리 젊은이들의 일본 취업도 늘고 있다. 일본 회사에 들어간 한국 신입사원들은 시키지 않는 일까지 나서서 한다. 하지만, 혼나기 일쑤다. 일본 회사에선 정해진 업무와 책임 범위를 잘 지켜야 더 큰 칭찬을 받는다. 최소 3년은 사내 업무 매뉴얼을 익히는 일에 매달려야 한다. 

일본 은행과 휴대전화 대리점, 관공서 등의 창구 직원들을 살펴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일본 창구 직원들은 책임 범위가 좁다. 예상 밖의 민원이 들어오면 일단 뒤편 상사를 쳐다본다. 그 자신도 책임 범위 이상을 알려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일본 기업에선 멀티 플레이어를 찾기 어렵다. 그만큼 사람들이 필요하다.

● 4. '사람'에겐 능력보다 경력이 중요하다

일본에선 최신 지식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신입사원보다는 경력사원이 훨씬 중요하다. 한국에서도 경력 사원의 경험과 장인 정신은 중요한 자산이다. 그런데, 일본에는 또 다른 측면이 존재한다. 일본도 선진국인 만큼 공명정대한 업무처리만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일본만큼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사회도 없다. 경력 사원들은 바로 거래처와의 오랜 인간관계를 확보하는 열쇠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신입사원을 능력없다고 마구 잘랐다간 노련한 경력 사원을 확보할 수 없다.
덮법체인점 '요시노야'의 식기세척 로봇물론 일본도 인구 감소 속에 필요 인력을 줄일 것이다. 지난해 덮밥체인점 요시노야(吉野家)는 주방인력을 대체할 식기세척 로봇을 개발했다.(위 사진) 일본 편의점들은 2025년까지 모든 점포에 한 개 이상의 무인 계산대를 설치할 계획이다. 하지만, 일본의 독특한 고용 문화를 고려할 때 이런 변화의 속도는 예상보다 더딜 것으로 추정한다. 일본에선 사람이 필요한 부분들이 여전히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물결은 오히려 우리 고용 시장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한국만큼 업무 효율화와 인력 감축에 적극적인 곳도 없기 때문이다. 비단 경영자들뿐만이 아니다. 근로자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0년 간 신자유주의를 온 몸으로 경험해온 탓이다. 능력, 효율, 실적, 연봉, 경쟁 등에 익숙한 우리 근로자들에게 일본식 고용 문화는 더 이상 수용될 수 없다.

사실 일본식 고용 문화는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안전에 ‘사람’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다. 고령자 중심으로 인력이 구성되면서 안전 분야에 젊은이들의 유입이 줄어들고 있다. 일본의 장인 상품들은 너무나 일본적인 내수 중심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더욱이 훌륭한 장인 솜씨마저 무색하게 만들 새로운 제조기법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책임은 ‘사람’에게 물어야 하지만, 칸막이와 층층이로 나눠진 책임 구조는 신속한 의사 결정을 방해한다. 능력보다 경력이 중요하지만, 나이든 경력자에 비해 젊은 능력자들이 무시된다. 지난달 미국 갤럽은 각국 기업의 열정 사원 비율을 조사했다. 일본은 불과 6%로 139개국 가운데 132위를 기록했다. 경력자 중심의 인맥 문화는 사회 경제적 비효율을 가져올 수 있다.
갤럽의 각국'열정사원' 조사…일본 6%, 한국 7%일본의 인구 감소는 일자리보다 사람이 더 크게 줄고 있지만, 한국은 일자리와 사람이 거의 동시에 줄어든다. 앞으로 ‘꼭 거기에 사람을 둬야 돼?’라는 질문이 모든 분야에서 일상화될 것이다. 인구 감소는 시장마저 축소시켜 내수 기업들의 채용 확대를 막는다. 한국의 인구 감소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이를 막기 위해선 우리만의 새로운 고용 문화가 필요하다. 앞으로 다가올 4차 산업 육성도 기존 산업 인력들의 이직과 재교육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희망을 갖고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새로운 고용 시스템과 기업 문화, 사회 구조가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

**이 글은 제 주관적 의견으로 다양한 반론이 가능합니다. 일본과 관련해 전문가분들의 더 깊은 의견들은 국민대 일본학연구소(http://www.ijs.or.kr)와 학술지 '일본공간'을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