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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죽음에 가장 가까운 곳' - 예멘

한세현 기자 vetman@sbs.co.kr

작성 2017.07.09 14:40 조회 재생수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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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죽음에 가장 가까운 곳 - 예멘
포격으로 인한 사상자 1만 2천여 명. 최근 한 달간 발생한 급성 전염병 감염자 3만 2,300여 명. 어린이들은 35초에 한 명꼴로 전염병에 걸려 10분에 한 명꼴로 숨지는 곳, 분변에 오염된 물을 매일 식수로 마셔야 하는 곳. 지구에서 ‘죽음에 가장 가까운 곳’, 그곳은 바로 아라비아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예멘’입니다.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IS’ 본거지가 있는 이라크나 자국민을 향해 화학무기를 쏘는 시리아, 이른바 '인종 청소' 논란을 빚은 미얀마,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최악의 인권 범죄국’으로 평가받은 북한을 두고, 전문가들은 예멘을 ‘죽음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 평가합니다. 예멘은 왜 이렇게 ‘죽음의 땅’, 사지(死地)가 된 것일까요?
 
● 비극의 시작은 ‘내전’

이 비극의 시작은 2014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예멘 북부를 장악한 ‘후티 반군’은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쫓겨난 독재자 알리 압둘라 살레 전 대통령과 연대해, 남부 일대를 통치하고 있는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현 정부에 맞섰습니다. ‘시아파’가 주축인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고 있던 ‘수니파’ 정권에 맞선 겁니다.
 
이 같은 ‘종파 갈등’은 주변국으로까지 번졌습니다. 갈등이 고조하던 2015년 3월, 사우디 주도로 형성된 ‘아랍 동맹군’이 본격적으로 내전에 뛰어든 겁니다. (※ 최근 아랍은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 헤즈볼라 등으로 구성된 ‘시아파’ 세력과 사우디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 ‘수니파’ 세력이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붙은 전쟁은 지금까지 2년 넘게 계속됐고, 포탄과 총알에 예멘인들은 쓰러져갔습니다. 집에서 잠을 자다가, 시장에서 장을 보다가, 그리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무참히 희생됐습니다. 이 기간 발생한 민간인 사망자는 4천7백여 명, 부상자도 8천 명이 넘습니다. 하지만, 이건 ‘비극을 알리는 전주곡’에 불과했습니다. 동맹군 공습으로 구호물자 공급이 끊어지며, 예멘은 말 그대로 ‘죽음의 땅’으로 변해갔습니다.

예멘 콜레라 창궐● 끊어진 구호물자, 열악한 공중보건 시설 그리고 ‘콜레라’

자국 내 산업이 붕괴한 빈민국 예멘은 식량과 생필품 등 물자의 90%를 수입에 의존해왔습니다. 이렇게 수입하는 물품의 약 80%는 서부 항구도시 ‘호데이다’로 들어옵니다. 당시 이지역은 반군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맹군의 주된 공격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습으로 항만시설은 파괴됐고, 식량과 의약품 등 구호물자는 바다 위에서 썩어갔습니다. 그리고 이는 다시 기아와 질병으로 인한 ‘간접 살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랜 내전으로 하수도와 같은 최소한의 공중보건시설이 무너진 상태에서, 식량과 의료물품 공급마저 끊어지자 전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콜레라’의 습격은 치명적이었습니다. 콜레라는 콜레라균(Vibrio cholerae) 감염성 질병으로, 오염된 물을 통해 전파되는 ‘수인성전염병(Water-born infection)’입니다.
 
콜레라는 급성설사와 구토를 동반하는데, 이때 나온 환자의 분변과 구토물은 물을 오염시켰고, 최악의 하수도 시설은 오염된 물을 정화하긴커녕 또 다른 전염병의 근원이 됐습니다. 의료물품조차 접하기 어려운 예민 국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콜레라는 수액치료만 제때 받아도 사망률을 1% 이하로 낮출 수 있는데, 열악한 위생환경과 부족한 의료시설로 예멘에선 사망률이 40% 가까이 높아진 겁니다.
 
특히, 어린이와 노인들의 희생이 컸습니다. 영양실조로 면역이 약한 노약자들은 저혈당과 신부전까지 겪는 경우가 많았고, 하루도 채 안 돼 쇼크로 숨지는 사례가 속출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 WHO도 “아침에 감염돼 그날 밤에 숨지는 노약자가 속출하고 있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전체 환자의 41%가 15살 이하 어린이이며, 33%는 60세 이상 노인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예멘 내전 고통받는 아이들● 예멘 국민의 60% 이상 ‘위생 사각지대’ 방치

예멘은 현재 국민 60%가량인, 약 1,500만여 명이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없는 ‘위생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콜레라의 전파 속도는 상상을 초월합니. WHO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예멘에선 23개 주 가운데 2곳을 제외한 21개 주에서 콜레라가 발생해 27만여 명이 콜레라에 걸렸으며, 이미 이 가운데 1,600여 명이 숨졌습니다.
 
이제 ‘죽음의 비극’은 예멘에만 국한하지 않을 거란 우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콜레라 전염 속도가 빨라져 최근 몇 주 새 감염자가 2배 이상 늘어나며, 이웃 국가로도 전파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겁니다. 유엔은 “콜레라 감염환자가 매일 3천∼5천 명씩 새로 발생하며 이웃지역으로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라며, "예멘 전 지역에서 콜레라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며 인접국가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경고했습니다. WHO도 “급속히 늘어나는 환자들로 병원 대부분이 이미 환자들로 가득 차 있다.”라며 “임시 천막을 치료소나 입원실로 쓰고 있어 전염병 확산을 막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예멘 장례식장 공습● “예멘 위기는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상황”

유엔은 “비극을 막기 위해선 내전 당사자들이 즉각 휴전하고, 유엔 등이 보낸 지원 물자 반입을 조건 없이 수용해야 한다.”라고 촉구했습니다. 또, “예멘 위기는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상황”이라며 “사우디를 지원하는 미국과 영국 등은 휴전을 위한 외교노력을 계속하라.”라고 강조했습니다.
 
지금 예멘이 겪는 비극이 언뜻 듣기엔 ‘먼 나라 얘기’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한 번쯤 곱씹어볼 점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도 이념에 따라 민족끼리 총구를 겨누며 치열하게 싸웠고, 그로 인한 고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시 콜레라를 포함한 전염병에 수십만 명이 감염됐으며, 결국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 우리나라는 여전히 콜레라를 전염성이 가장 강하고 사회적 파급효과가 큰 ‘제1군 전염병’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비극은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되풀이하며 발생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예멘이 겪고 있는 ‘최악의 위기’는 우리, 더 나아가 인류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죽음에 가장 가까운 곳’ 예멘에 하루빨리 ‘생명의 찬가’가 울리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