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한국 취재진 때문에 백악관이 엉망이 됐다고요?

정영태 기자 jytae@sbs.co.kr

작성 2017.07.02 09:14 수정 2017.07.02 09:5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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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단독회담 때 취재진이 몰리면서 집무실 안의 탁자가 흔들렸고 탁자 위에 있던 전등이 떨어질 뻔한 일이 생겼습니다. 여기까지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일부 미국 기자가 SNS를 통해 '이례적으로 많은 한국 기자들이 들어와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경쟁하다 벌어진 일', '대규모 한국 언론 파견단이 있었다'라는 식으로 언급했는데 이는 일방적인 주장으로 보입니다.

확인해 보니 단독회담 당시 한국 취재진 구성은 이랬습니다. 흔히 ENG라 부르는 방송 카메라 3대 (취재 인원은 영상 기자와 스텝 포함 5명), 스틸 사진 기자 4명, 장비가 없는 취재 기자 2명. 이렇게 11명이었습니다. 대규모 파견단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 기자들끼리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했다는 건 사실이 아닙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당시 백악관 취재는 수십 개 매체의 한국 언론이 모두 개별적으로 들어가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따라서 이른바 풀(Pool) 시스템으로 취재가 이뤄졌습니다. 일종의 당번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취재기자가 많이 접근하기 어려운 행사나 재난 현장 취재를 할 때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정상회담 전체 일정을 취재하기 위해 미국으로 간 한국 언론사 기자들 중에서 각각의 개별 일정은 서로 돌아가며 소수의 그룹만 백악관 단독회담 현장 취재를 했다는 뜻입니다. 이들만이 직접 현장에 들어가 영상과 사진을 촬영하는 대신, 결과물은 모든 다른 한국기자들과 공유하는 시스템입니다. 한국 기자들끼리는 현장에서 경쟁할 이유가 없습니다. 단독회담장의 한국 취재진은 앞서 말한 것처럼 11명이었지만 미국 취재진은 이보다 훨씬 많은 이삼십 명 규모였습니다.
한미정상회담 취재진들 (사진=연합뉴스)그리고 테이블 위의 전등이 흔들려 떨어질 뻔한 일의 경위도 확인해 보니 일부 미국 언론 주장과 달랐습니다. 당시 테이블 옆에 붙은 소파가 하나 있었고 그 옆에 소파가 또 하나 이어져 있었습니다. 이 이어진 소파가 취재진에 밀리면서 테이블 옆에 있는 소파까지 밀리자 테이블이 흔들린 겁니다. 현장에 있던 한국 취재진의 증언은 미국 언론 측 주장과는 정반대였습니다. 한 한국 취재진이 소파 앞에 자리를 잡고 방송용 카메라로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뒤에 있던 한 미국 기자가 더 앞으로 가기 위해 자신의 앞에 있던 이 한국 취재진을 심하게 밀었다는 겁니다. 두 손으로 카메라를 잡고 있던 이 한국 취재진은 소파 쪽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증거라는 심각한 단어까지 써야할 지 모르겠지만 이런 증언을 입증할 근거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 한국 취재진이 당시 촬영한 동영상에는 테이블이 흔들리는 장면까지 담겨 있는데, 상황이 발생하기 직전 촬영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카메라가 심하게 앞으로 흔들리며 요동치는 모습까지 그대로 담겼습니다. 본인이 일부러 몸으로 소파를 밀었다면 나올 수 없는 영상입니다.
한미정상회담 취재진 흔들린 사진또 트럼프 대통령이 현장에서 한국기자들에게 역정을 냈다는 일부 미국 매체 보도도 사실이 아닙니다. 당시 영상을 확인해 보니 테이블이 흔들리면서 전등이 떨어질 뻔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진정해 친구들(Easy Fellas)"이라고 반복해서 말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당시 집무실 안에 있던 전체 취재진에게 한 이야기였지 한국 기자들에게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현장에는 미국 기자들이 한국 취재진의 2~3배 규모로 훨씬 더 많았고 오히려 이들끼리의 경쟁이 매우 심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실제로는 매우 친근한 기자들(It's actually a very friendly press)"이라며 약간 반어법을 섞어 말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취재진을 지목해서 말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국 취재진들 꾸짖는 트럼프 (사진=뉴욕 포스트 캡쳐)방송 카메라 기자와 스틸 사진 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는 것은 어느 나라나 있는 일입니다. 문 대통령 미국 순방 취재 현장 곳곳에서도 미국 기자들이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앞서 나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 한국 취재진은 취재 현장의 상황을 고려해 대통령의 모든 일정을 앞서 말한 '풀 시스템'으로 운영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한국 기자들끼리 경쟁할 이유가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다수의 미국 기자들과 소수의 한국 기자들이 현장에서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한 경쟁이 있었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이례적으로 많은 한국 기자들, 대규모 파견단이 와서 경쟁하느라 엉망이 됐다'는 주장은 미국 기자들의 일방적 주장이어서 유감스럽습니다.

오히려 미국을 비롯한 다른 외국 정상들이 한국을 방문해 우리 대통령을 만나면, 우리는 해당국 영상 및 사진 취재진을 위해 미리 충분한 취재 위치를 보장해 주는 것이 그동안 관례입니다. 한국을 찾은 손님 성격도 있는 만큼 배려를 한다는 취지입니다. 물론 미국 백악관 정상회담 취재에서 한국 언론에 이런 배려를 해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 나라는 그 나라 나름의 규칙과 관례가 있는 것이니까요. 전혀 그런 배려는 없었지만 그걸 문제삼는 게 아닙니다. 다만 이번 논란의 기저에 '왜 한국 취재진이 백악관에 와서 미국 취재진과 동등하게 취재하려고 하느냐?'는 미국 언론의 일방적 인식이 깔려 있는게 아니냐는 의구심은 버리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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