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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인도 없는 차도'의 '곡예 운전'을 잡아라

손승욱 기자 ssw@sbs.co.kr

작성 2017.06.07 09:59 수정 2017.06.07 13:16 조회 재생수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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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없는 좁은 도로에서 거칠게 운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좁은 길을 "요리조리" "왔다 갔다"하면서 과속을 합니다. 보행자들을 향해 수시로 빵빵거립니다. 이들에게 시속 30km라고 써있는 제한속도는 무용지물입니다. 그런데, 이런 '곡예 운전자'를 단속하는 걸 보기는 참 힘듭니다.불법 주차된 차를 피해 도로 가운데로 걷던 보행자들은 깜짝깜짝 놀랍니다. 인도가 없으니 차들이 길가에 불법주차를 해놨고, 차를 피해 돌아가다 보면 아찔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우리 골목길의 모습입니다.

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인도(人道) = 보도(步道) : 보행자의 통행에 사용하도록 된 도로.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다니는 길 가운데 인도가 없는 도로가 많습니다. 특히 주택가에 있는 왕복 1차선 도로가 그렇습니다. 그나마 '보행자 길'이라고 바닥에 줄이라도 표시해 놨으면 다행이죠. 그런 길을 지날 때면, 보행자들은 지나가는 차 눈치를 봐야 합니다. 오늘은 사람보다 차(車)가 큰소리치는 '골목길 보행권'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 '인도 없는 도로' 교통사고로 하루 2.17명 사망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폭 9m 이하의 '인도 없는 도로'에서 1년에 791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합니다. 특히 6m 미만 골목길에서 67.6%가 사망합니다. 보통 1개 차선 폭이 대략 3m 정도 되기 때문에, 마주치는 차들이 서로 조심스럽게 비켜 가는 그런 뒷길에서 사망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는 얘기입니다. 연령별로 살펴보죠. 짐작하셨듯이 순간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층의 사망률도 높습니다. 65세 이상이 전체 사망자의 절반이 넘는 53.1%를 기록했습니다. 70세 이상은 전체의 43.1%를 차지합니다.이런 길이 떠오르시죠? 길 양쪽에 온갖 불법주차 차량이 서 있고, 마주친 차량이 서로 비키라고 "빵빵"거리고, 불법 주차된 사이로 아이들이 뛰어나오고, 어르신들이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조심조심 걷는 길. 차가 없다 싶으면 여지없이 '빵빵빵빵'거리면서 곡예 운전 하듯이 내달리는 차량이 폭주하는 길. 바로 그런 길이 위험하다는 겁니다.

● 좁은 길 사고 = 운전자 부주의 + 불법 주차

방송에서 나오는 이런 블랙박스 동영상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좁은 도로. 불법 주차 차량 사이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보행자. 갑자기 급정차하는 차량. 그리고 튀어나오는 운전자의 육두문자. "OOO, 죽으려고 OO했어?"
 
그런데 이걸 뒤집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보행자 입장에서 이 블랙박스 장면을 바라보자는 겁니다. 딱히 중앙선도 없고, 횡단보도도 없는 골목길이라고 해보죠. 양쪽을 살피고 건너려고 해도 불법 주차 차량 때문에 좌우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조심스럽게 차 사이로 나아가서 좌우를 살피려고 몸을 살짝 내밀었더니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빵빵빵빵"에 "야! 이 OOO야. 죽으려고 OO했냐" 식은 땀이 흐르면서 순간적으로 열도 받습니다.



이런 사고가 실제로도 가장 많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운전자 부주의 사고 ▲ 불법 주정차 통행 방해 사고라고 합니다. 운전자 부주의와 불법 주정차 통행 방해가 동시에 발생하는 사고가 전체의 41.2%로 집계됐습니다.

● '곡예 운전'이 실력이 아닙니다…시속 20km의 비밀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우리나라의 인도 없는 도로 12곳에서 평균 속도를 측정해봤습니다. 평균 속도는 시속 19km, 최고 속도는 시속 35km로 나타났습니다. 곡예 운전을 하는 분들은 분명히 그 이상의 속도를 냈을 텐데, 아마 이번 측정에 걸리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연구소는 이 때문에 인도가 없는 좁은 도로의 속도 제한을 시속 20km로 하자고 제안합니다. "20km? 그렇게 천천히 가라고?" 운전하시는 분 가운데, 이 생각부터 떠오르시는 분이 분명히 계실 겁니다. 좁은 도로에서 속도가 시속 20km를 넘어서면서 보행자 사망률이 빠르게 올라간다는 핀란드의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골목길 속도 제한을 엄격하게 하고 있습니다. 홈 존(Home Zone, 영국), 만남구역(프랑스), 교통진정구역(독일) 같은 이름을 붙이고 좁은 골목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제한속도를 20km로 엄격히 제한하는 겁니다.
 
뿐만 아닙니다. 바닥에 요란하게 표시를 해놓는 겁니다. 과속방지턱을 설치하고, 노면 요철을 만들고, 야광 노란색, 초록색 같은 밝은 색깔로 포장하는 겁니다. 불법 주차를 막기 위한 엄격한 단속과 대체 주차장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겠죠.

● '골목길 속도위반'을 단속하라

삼성교통연구소가 내놓은 이런 주장은 왕복 3~4차선의 큰 길을 막자는 게 아닙니다. 좁은 길을 보행자에게 돌려주자는 겁니다. 인도도 설치하고, 각종 안전장치도 하자는 겁니다. "가뜩이나 막히는데…"라면서 정색하실 분들이 있겠지만, 그 분들의 가족, 친구, 친지도 언제든지 차에서 내리면 보행자입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는 ▲사람 중심 도로 시설 개선 ▲보행자 통행우선권 확보 ▲제한속도 하향을 대안으로 내놨습니다. 조준한 책임연구원은 "주거 상업지역 내 인도 없는 도로에서는 선진국처럼 제한 속도를 시속 20km 이하로 낮추고 보행자 교통사고의 운전자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처벌을 강력하게 해야 한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일반 시민 59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봤습니다. 보행자 우선도로 도입에 88%가 찬성했고, 그 다음에 많이 찬성한 것이 법규 위반 처벌 강화입니다. 79%가 찬성했습니다. 학교 앞 도로 사고가 제한 속도나 처벌 규정이 없어서 발생하는 게 아닙니다. 규정이 있는데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강력한 단속과 처벌이 필요합니다. 큰 도로에서 신호나 속도 단속하는 경찰은 많습니다. 하지만 뒷골목에서는 참 보기 힘듭니다.

물론 먼저 엄격한 기준을 만들어야겠지요. 그리고 9m 이하의 인도 없는 도로에서 하루 2명이 사망하는 상황이라면, 학생들이 학교를 오가고, 어르신들이 마실 다니는 골목길에서 속도계 들고 근엄하게 보행자를 지키는 경찰관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뒤에서 '빨리가라'고 빵빵거리는 차량 눈치 보지 않고, 속도를 지킬 핑계도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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