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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우리 집 강아지 주사는 내가 직접?" 위험에 빠지는 반려동물들

[취재파일] "우리 집 강아지 주사는 내가 직접?" 위험에 빠지는 반려동물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는 1천만 명에 이릅니다. 4명 가운데 1명꼴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겁니다. 물리적으로 단순히 생활공간만 공유하던 존재가 아닌 이제는 생을 함께 살아가는, 말 그대로 '반려' 동물로 거듭나고 있는 겁니다. '양적 변화'는 '질적 변화로 이어지는 법이죠. 늘어나는 동물 수에 비례해 그만큼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각 후보들이 동물복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게 좋은 예입니다.

비록 지금은 기자로 근무하고 있지만, 저는 대학에서 수의학을 전공한 수의사입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저도 회사 동료 등 지인들에게서 동물 진료와 관련된 질문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고양이가 말을 잘 안 듣는데 우울증에 걸린 걸까?”, “강아지가 밥을 잘 안 먹는데 아픈 걸까?”와 같은 비교적 간단한 질문부터 “예방접종 주사해 줄 수 있어?”, “무릎을 다쳤는데 치료해줄 수 있어?”, “강아지가 숨을 잘 못 쉬는 거 같은데 어쩌지?” 등 제법 어려운 질문까지 범위는 다양합니다.

하지만,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제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이런저런 증상이 의심되는데, 동물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시는 게 같습니다.” 이렇게 말로만 답할 뿐 어떤 물리적인 진료행위는 하지 않습니다. 비록 제가 수의사이긴 하지만, 대학원에선 병리학이란 기초의학을 전공한 이른바 ‘비임상 수의사’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동물을 ‘진료’하는 수의사가 아니라 병이 생긴 원인과 과정에 대해 ‘연구’하는 수의사이기에, 같은 수의사라고 할지라도 사소한 진료 행위마자도 삼가는 겁니다.

물론, 이런 증상이 왜 생겼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에 대해선 나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말’로 지식을 전하는 거지, 의료행위를 직접 하지는 않습니다. 의료행위란 작게는 동물 복지에, 크게는 생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직접적인 진료는 충분한 지식을 갖추고 훈련을 받은 전문가 즉, ‘임상 수의사'에게 받으라고 권하는 겁니다. 이는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란 말도 나온 것과도 같은 이치입니다. 그만큼 생명은 존귀한 거라, 구체적인 진료는 각각의 전문가에게 받아야한다는 뜻에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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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 학대 조장하는 ‘자가 진료’

그런 점에서 지난해 저희 SBS 프로그램 ‘동물농장’을 통해 방영된 영상은 시청자들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어느 개 사육 농장 주인이 자신이 키우던 개의 배를 열러 직접 새끼를 빼는 수술을 한 겁니다. 당연히 그 주인은 전문지식을 갖췄거나 제대로 훈련받은 전문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까지 하며 자신의 행위를 마치 자랑스러워하는 듯했습니다. 생명에 대한 죄책감이나 미안한 마음 대신 말입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사실은 그런 만행을 저지른 농장주인을 처벌조차 할 수 없었단 점입니다. 현행 수의사법(제10조)엔 ‘수의사가 아닌 자가 동물을 진료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매길 수 있다고 명시해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예외 조항입니다. 12조 3항 ‘자신이 키우는 동물이라면 그것이 비록 진료행위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예외 사항을 따로 만들어 둔 겁니다. 농장 주인은 예외 조항을 교묘하게 이용해 처벌을 피한 겁니다.

그럼, 왜 이런 예외 조항이 생겼을까요? 이는 과거 수의사가 많지 않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진료를 제대로 받기 어려웠던 농가들의 편의를 위해, 자신의 동물에 한해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해준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반려동물 인구가 급속하게 늘어났고, 오래 전 만들어진 이 예외조항은 오늘날 동물복지 관점에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자기가 소유한 동물은 함부로 다룰 수 있게 허락해준 대표적인 ‘반 동물복지 법 조항’이 된 겁니다.

농식품부 “자기가 키우는 동물에 대한 피하주사는 허용”

동물보호단체를 중심으로 이 같은 비판이 잇따르자, 정부는 이 법 조항을 개정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동물정책 담당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의 행정적 판단입니다. 농식품부는 법 시행에 따른 혼란을 줄이겠다며, 자신이 소유한 동물에게 할 수 있는 치료 범위에 ‘피하 주사’ 행위를 포함시키려고 한 겁니다.(※ 피하는 ‘피부 아래’란 뜻으로, 피부와 근육 사이에 약물을 투여하는 주사법입니다.)

농식품부가 밝힌 논리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피하 주사 정도는 동물에게 큰 위해가 없으며, 피하주사를 허용하면 동물 보호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줄어든다.” 하지만, 먼저 병리학 전공자로서 볼 때, 피하주사가 동물에게 위해가 없다는 주장은 한마디로 ‘난센스’입니다. 기본적으로, 생체 안으로 직접 약물을 직접 투여하는 모든 주사는 투여 약물과 용량에 따라 ‘급성 쇼크’와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성을 안고 있습니다.

특히, 예방접종 대부분은 피하주사로 이뤄지는데, ‘염증’과 ‘쇼크사’ 등 예방접종을 잘못해 생긴 부작용은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습니다. 또, 피하주사로만 투여되어야 할 약물이 근육 혹은 혈관으로 들어간다면 부작용은 매우 직접적이고 즉각적이며 치명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투여용량 조절도 문제입니다. 몸에 전혀 무해한 생리식염수도 다량 주사하면, 폐에 물이 차 죽게 됩니다. 만약, 비전문가가 피하주사를 하면서 투여용량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경우 혹은 빠른 치유와 같은 특정 목적을 기대하며 용량을 초과해 많이 투여했을 때 그로 인한 부작용을 막을 수 없을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도 의사 처방과 지도가 있으면 피하주사를 허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슐린 주사가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인슐린 주사기 경우도, 바늘이 매우 가늘고 짧게 특수 제작돼 있습니다. 비전문가가 의도치 않게 다른 경로로 투여하는 걸 막으려는 조칩니다. 그런 점에서, 사람보다 훨씬 몸집이 작은 동물에게 비전문가가 일반 주사기를 쓸 수 있게 허용한 건 동물의 복지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위험한 조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 현실성이 떨어지는 ‘경제성 논리’

동물보호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준다는 농식품부 주장도 득보단 실이 더 큽니다. 동물보호자가 종합백신을 직접 구매서 주사할 경우 드는 비용은 대략 5,000~10,000원입니다. 수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주사를 맞게 되면 15,000~25,000원 정도 비용이 발생합니다. 예방접종은 대게 1년에 한 번 내지 두 번 정도 실시합니다. 결국, 피하주사가 허용된다고 해도 실제 보호자가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은 최고 1년에 몇 만 원에 불과한 셈입니다. 과연, 연간 몇 만 원의 경제적 이득을 보전하는 것과 그로 인해 동물복지가 훼손되는 것,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한 가치일까요? 대다수 동물보호단체가 농식품부 정책에 반대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반려동물 개 고양이
● “한두 끼의 배부른 식사와 목숨을 바꾸고만 어리석은 개구리”

문재인 대통령은 1년에 8만 마리 이상 발생하는 유기동물을 재임 기간 연 5만 마리 이하로 줄이겠다는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기자이자 동물 관련 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 동물정책 주무부처인 농식품부의 정책은 이런 정책에 역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동물보호단체 ‘팅커벨프로젝트’ 황동렬 대표도 “자가 주사 행위를 허용하는 것은 유기견 양산의 근본 원인인 강아지 공장에서, 주인들이 처방전 없이 직접 주사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는 결국, 동물 생명권의 위협은 물론, 현재 전국적으로 3,000여 개소에 달하는 미신고 시설의 난립을 방조 내지는 지원하는 정책이다."라고 농식품부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조선 시대 실학자 성호 이익은 저서 '관물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민가는 땅이 기름져 벌레가 많다. 그 벌레를 보고 개구리는 민가로 내려온다. 하지만, 민가엔 벌레뿐 아니라 그 개구리를 잡아먹는 닭도 많다. 아! 이로움이 있으면 해가 뒤따른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거구나.” 눈앞의 이익에 팔려 앞뒤 가리지 못하고 죽음의 땅으로 뛰어든, 한두 끼의 배부른 식사와 목숨을 바꾸고만 어리석은 개구리를 비판하면서 한 말입니다.

이익이 있는 곳에는 항상 예기치 못한 해로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얻고 잃는 즈음에 손익의 계산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일이 가져다주는 이로움이, 이 일로 말미암아 일어날 수 있는 해로움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하는 겁니다. 적어도 ‘인간 개구리’가 되지는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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