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하기

[취재파일] "임신하면 죄인입니다"…출산도 자유롭지 못한 간호사들

송인호 기자 songster@sbs.co.kr

작성 2017.06.01 10:12 조회 재생수7,435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임신하면 죄인입니다"…출산도 자유롭지 못한 간호사들
신생아들의 힘찬 울음소리를 듣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신생아 수는 2011년 47만 1천 명, 2012년 48만5천 명으로 반짝 늘었다가 이후 줄기 시작해 지난해 40만6천 명으로 40만 명 선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미래를 짊어질 어린이(5~14세) 인구도 오는 2020년 452만 1천 명으로 전체인구의 8.7%로 급감하고, 2039년에는 4백만 명을 밑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정부가 80조 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음에도 합계 출산율은 1.17명으로 OECD 평균 1.66명보다 현저히 낮은 게 현실입니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죄인 취급받을까 봐 출산을 연기하고 꺼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보건의료 노동자들입니다. 얼마 전 실태조사결과가 나왔는데 이 조사를 보면 초저출산 현상은 단순히 개인의 취향이나 선택이 아닌 비인권적인 사회, 직장 분위기와 맞물려 있음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출산지방의 한 대학병원에서 최근 실제 일어난 일입니다. 수간호사가 후배 간호사들을 모아놓고 이런 말을 합니다.

"임신한 게 무슨 죄는 아닌데, 죄인처럼 되고 있다 맞지? 그렇게 뭐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는데…. 그런데 결혼하면 일단 야간근무 안 하고 육아 들어가면 휴직할 거니까 남아 있는 동료들이 죽을 쑤든 밥을 짓든 모르겠고 나는 도망가 버린다는 개념으로 지금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도 드는데…. 피임 안 하면 임신이죠. 100% 임신입니다. 알겠죠? 결혼하면 몇 달 내 임신입니다. 마음가짐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처음에는 후배들을 다독이는 것처럼 들리지만, 결국 결혼해서 임신하면 출산/육아 휴직기간 동안 업무가 동료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니 피임을 해서 아이를 갖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아이를 갖더라도 간호 인력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사실상 순번을 강요하고 있는 겁니다. 기자가 만난 수도권 공공병원의 10년 차 간호사도 비슷한 경험을 털어놨습니다.

"한 병동에 한 명만 임신해라 이런 암묵적인 지시가 내려오고, 수간호사 선생님들은 그걸 관리하기 위해서 겹치지 않게 임신하면 좋겠다 이런 말씀을 하세요. 만약 겹치게 임신이 되면 그것도 눈치 보이고 내가 야간근무를 안 하게 되면 다른 동료들한테 업무가 과중되다 보니까 눈치가 당연히 보이게 되죠"
저출산 그래픽임신과 출산도 자유롭지 못한 대한민국, 실제 병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입니다. 때마침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에서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결과를 지난 22일 발표했습니다. 결과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입니다.

'임신 결정의 자율성'이 없다는 응답이 31%로 3명 중 1명이나 됐습니다. 그 이유로는 '동료에게 업무가 가중'이 53%로 가장 많았고, '부서내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 여성이 많아서'가 19%, '부서 분위기가 자유롭지 않아서'가 12.8%로 뒤를 이었습니다. '추가로 인력채용을 하지 않아서'도 11.8%나 됐습니다.

법으로 금지돼 있는 임신부의 야간근로는 어떨까요? 간호사들은 대부분 3교대로 교대근무를 하기 때문에 야간 근로라 함은 밤샘 근무를 말하는 겁니다. '야근근로 경험 있다'가 17.9%로 20%에 육박했습니다. 지방 공공병원에 근무하는 한 간호사는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중환자실에 있으면서 임신을 했었는데, 밤에 일을 하게 되면 아이가 밤에 배에서 많이 활동을 해서 무리가 가더라고요. 배도 많이 뭉치고 무척 힘들었습니다. 위험하다는 임신 3개월까지 밤 근무를 안한다고 하지만,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가 대부분 8주~10주거든요. 결국 임신한 사실도 모르고 밤근무를 하니까 거의 1달 정도만 밤근무를 안하고 그 이후는 계속 야간근무를 한다고 봐야죠"

'임신 중 초과근로'를 묻는 질문에 절반 가량인 48.5%가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임신 중 쉬운 업무로 전환', '임신 중 하루 2시간 근로시간 단축', '유급수유시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 모성보호 관련 제도의 미사용률이 무려 90%를 넘어 임신에 따른 배려를 거의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임신,출산,육아로 인한 불이익 경험'은 17.8%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않았다'도 24.5%로 ‘사용했다’의 거의 두 배나 많았습니다.

왜 이렇게 비인권적인 행위가 보건의료현장에서 벌어질까요? 수간호사가 왜 후배 간호사들에게 ‘임신을 돌아가면서 하라’고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악역을 맡게 됐을까요? 다름아닌 간호인력의 부족 때문입니다. 민간병원이든 공공병원이든 일부 대형병원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간호인력은 인구 1천명당 5.2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9.1명)의 절반 수준입니다. 스위스, 덴마크 등은 15명을 넘어 우리보다 3배나 더 많습니다. 준공무원 신분인 공공병원에서는 예산에 묶여 간호인력을 충원 못하고, 민간병원은 인건비 때문에 간호인력을더 못 뽑는 겁니다. 처우가 열악하고 근로여건도 좋지 않으니 간호사들은 결혼과 임신, 출산은 커녕 이직을 결심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실제로 '임금수준' 만족도는 37.5%에 불과했는데 연봉 3천5백만 원 미만이 34%나 됐습니다. 환자를 돌보다 보면 식사를 거르기 일쑤고, 평균 식사 시간은 '20분 미만'이 35.3%로 그들의 표현을 빌자면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마시는 수준이었습니다. 이렇게 노동조건과 처우가 열악하다보니 '최근 3개월간 이직 고려 경험'은 57%로 두 명중 한 명 이상이 간호사를 관두고 싶어했습니다.

보건의료노조 한미정 사무처장은 "보건의료 사업장의 모성보호가 되지 않으면 간호인력이 병원을 떠나게 되고 결국 국민들에게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 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이 강도 높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저출생 문제가 갈수록 심화하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고 싶어도 못 낳는 일이 벌어진다는 건 선진국 수준에 진입한 대한민국의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단 병원이나 보건의료 사업장 뿐만 아니라 다른 일반 사업장에서도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 관련한 휴직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임신과 출산이 뜻대로 되지 않는 나라에서 아이를 낳는 건 불행일 수 밖에 없고 그런 나라에는 미래도 희망도 있을 수 없습니다.  적어도 아이를 낳고 싶은 여성들이 충분히 배려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심각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