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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호의시사전망대] "1988년 광주 청문회, 軍 보안사 의도대로 치러져"

SBS뉴스

작성 2017.05.18 08:20 수정 2017.05.18 09:34 조회 재생수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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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SBS라디오에 있습니다. 전문 게재나 인터뷰 인용 보도 시, 아래와 같이 채널명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방송 : 박진호의 시사 전망대 (FM 103.5 MHz 6:20-8:00)
■ 진행 : SBS 박진호 기자
■ 방송일시 : 2017년 5월 18일(목)
■ 대담 : 정수만 5.18 유족회 前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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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안사, 분석반 만들어 광주 청문회 대비
- 5.11분석반이 의도하는 대로 청문회 치러져
- 위증했어도 누구 하나 처벌받은 사람 없어
- 청문회참여 의원들 질문지 만들어줬다는 기록도
 
▷ 박진호/사회자:
 
잠시 후 10시에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립니다. 국민 참여를 통해 10,000명이 넘는 참석자가 모일 오늘 기념식에서는 9년 만에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공식 식순에 포함됐습니다.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 파문이 있었지만 5.18 당시의 진상 규명 작업은 아직도 뚜벅뚜벅 진행 중인데요.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사실이 공식 확인 됐고, 또 어제는 만행을 주도한 군 보안사령부가 1988년 청문회를 대비해서 군의 관련 기록과 증언을 왜곡·조작했다는 신문 보도가 나왔습니다. 진실을 밝히는데 누구보다 앞장서왔던 분이죠. 정수만 前 5.18 유족회장을 만나보겠습니다. 정수만 회장님 안녕하세요.
 
▶ 정수만 5.18 유족회 前 회장:
 
예. 안녕하세요.
 
▷ 박진호/사회자:
 
정 회장님은 5.18 당시에 동생을 잃으셨죠.
 
▶ 정수만 5.18 유족회 前 회장:
 
예. 그렇습니다.
 
▷ 박진호/사회자:
 
기억이 나십니까? 동생에 대해서요.
 
▶ 정수만 5.18 유족회 前 회장:
 
그렇죠. 아주 생생하죠. 5월 20일 낮에 동생을 제일 치열하게 데모하던 금남로에서 봤어요. 봤었는데. 그게 군인들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 만날 수가 없었어요. 하도 복잡해서. 그 뒤로 동생을 볼 수가 없었고요. 5월 27일 날 광주시에 실종 신고를 했었어요. 그동안 광주 시내에 있는 모든 병원들, 전남대병원이라던지 기독병원, 또 적십자병원. 그리고 군 통합병원까지 가서 저희들이 확인을 했는데. 어떻게 찾을 수가 없었어요.
 
▷ 박진호/사회자:
 
정 회장님은 5.18 기록자, 또 걸어 다니는 5.18 백서라는 호칭을 얻으실 정도로 이 진실 규명에 앞장서 오셨는데. 오늘 기념식에는 9년 만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이 된다고 하는데요.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 정수만 5.18 유족회 前 회장:
 
글쎄요. 왜 저는 이걸 제창을 하지 못하게 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이 노래는 김일성을 찬양하는 노래라고 해서 못 부르게 했는데. 정말 어이가 없는 발상이죠.
 
▷ 박진호/사회자:
 
어제 한겨레 정대하 기자의 기사를 보셨을 텐데요. 12.12와 5.18을 일으킨 신군부의 보안사령부죠. 당시 1988년 국회 광주 청문회를 앞두고 민주화운동을 왜곡하기 위해서 군의 서류와 증언을 조작했다는 것인데요. 이 일을 주도했다는 당시 보안사의 비공개 조직이죠. 이른바 5.11 분석반인데. 여기에 대해서 혹시 정 회장님 알고 계셨습니까?
 
▶ 정수만 5.18 유족회 前 회장:
 
사실은 저희들 먼저 알고 있었어요. 5.11 분석반이라고도 하고요. 또는 5.11 연구회라고도 하더라고요. 그런 조직을 만들어서 청문회를 대비해왔습니다. 결국 이 청문회는 5.11 분석반이 의도하는 대로 치러졌어요. 당시 기록을 보면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하는 군인들에 대해서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을 내세웠고요. 사실 그것이 위증을 했어도 누구 하나 처벌을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건 또 마음 놓고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의미가 되겠죠. 심지어는 청문회 질의를 하는 의원들의 질문까지 만들어줬다는 기록까지 있더라고요.
 
▷ 박진호/사회자:
 
이것이 어제 보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같은데요. ‘80년 5월 21일 오후에 계엄군의 집단발포 이전에 광주 시민들이 먼저 총을 쏜 것처럼 조작했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 정수만 5.18 유족회 前 회장:
 
말도 안 되는 주장이죠. ‘80년 5월 27일 이후 광주가 군인들에 의해서 장악이 됐을 때 그 이후로 모든 총기를 피탈 당했던 기관에 대해서는 조사를 했어요. 그 때 당시에 그 기관에 있었던, 파출소나 경찰서에 있었던 방위병이나 경찰들을 상대로 조사가 다 이뤄졌던 것인데. 단 한 군데도 그 날, 5월 21일 1시 이전에 시민들이 와서 총을 탈취해간 적은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갑자기 그 이후로 좀 바뀌었어요.
 
▷ 박진호/사회자:
 
발포가 있었던 날 아침에 무기를 탈취했다. 이런 식으로 조작이 된 거죠?
 
▶ 정수만 5.18 유족회 前 회장:
 
그럼요. 이렇게 조작이 된 것이죠. 그 사람들은 우리가 먼저 총을 쏘았다고 주장을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요. 이런 것들도 5.11에서 상당한 개입이 됐다는 것을 저희들 기록으로 봤습니다.
 
▷ 박진호/사회자:
 
그런데 정말 안타깝고 화가 나는 것은. 결국 이 때 당시에 조작된 자료가 나중에 검찰이 1996년에 12.12 사태와 5.18 관련해서 수사를 할 때 결국 시민들의 죽음이 내란 목적 살인죄로 단죄를 하지 못한 근거가 돼버린 건데요.
 
▶ 정수만 5.18 유족회 前 회장:
 
그런 것은 사전에 자기들이 공모를 했고, 위증자에 대한 처벌이 없었기 때문에 혼동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 박진호/사회자:
 
이제 보면 가장 중요한 숙제는 발포 명령을 내린 자를 밝혀내서 단죄하는 것인데. 발포 책임에 대해서 조사가 진전이 됐습니까?
 
▶ 정수만 5.18 유족회 前 회장:
 
보안사가 개입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확실하고요. 5월 20일 날 저녁부터 사실은 발포가 있었어요.
 
▷ 박진호/사회자:
 
당시 보안사령관은 전두환 씨였고요.
 
▶ 정수만 5.18 유족회 前 회장:
 
그렇죠.
 
▷ 박진호/사회자:
 
그런데 최근에 굉장히 늦기는 했지만 작은 진전이 있었던 것이. 국과수가 감식을 했지만 그 탄흔의 위치나 탄흔 자국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이것은 상공에서 사격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결론을 냈던 거죠.
 
▶ 정수만 5.18 유족회 前 회장:
 
예. 맞습니다. 이건 앞에 가시거리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밑에서 쏘면 도저히 바닥에 총을 맞을 수 없다는 것이죠.
 
▷ 박진호/사회자:
 
이것이 단순히 헬기에 탄 군인이 소총 사격을 한 게 아니고, 헬기에 거치된 무언가 중화기에서 발사된 것 같다. 이런 분석이 나오는 것 같은데요.
 
▶ 정수만 5.18 유족회 前 회장:
 
물론 그렇게도 이야기할 수도 있는데. 우리는 목격을 하지 않은, 직접 총 쏘는 것을 그쪽으로 목격하지 못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잘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자국을 보고 어느 총이 쐈다고 이야기할 수는 좀 없는 것 아니냐. 우리 스스로. 이것이 실탄의 방향이라든지, 쏘아진 방향이라든지. 이런 것을 볼 때 공중에서 헬기에서 쏜 것은 분명하다고 이야기를 하고요. 그러나 헬기를 출동해달라고 요청을 했었고, 그 때 당시에 많은 헬기가 출동을 했었어요.
 
▷ 박진호/사회자:
 
읽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최근에 전두환 전 대통령 회고록을 냈습니다. 5.18은 폭동이라는 입장, 또 북한의 개입까지 시사하는 내용이 담겨있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 정수만 5.18 유족회 前 회장:
 
그렇게 또 하지 않는다면 당시 만행을 저질렀던 자들이 감히 한국에 살 수 있겠어요? 죽는 날까지 거짓말을 하겠죠.
 
▷ 박진호/사회자:
 
최근에 공개된 미국 CIA 문서에서도 당시 북한의 움직임이 없었다. 이런 게 또 확인이 된 바가 있습니다. 오늘 이른 아침에 말씀 감사드립니다.
 
▶ 정수만 5.18 유족회 前 회장:
 
네. 감사합니다.
 
▷ 박진호/사회자:
 
지금까지 5.18 前 유족회장이신 정수만 전 회장과 얘기 나눠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