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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왜 하필 지하 2층에'…장애인 울린 사전투표소

"공공기관과 그 소속원은 장애인이 사법·행정절차 및 서비스 이용과 참정권 행사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송인호 기자 songster@sbs.co.kr

작성 2017.05.09 08:09 조회 재생수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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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왜 하필 지하 2층에…장애인 울린 사전투표소
2009년 4월 11일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 7개 항목 가운데 '사법/행정절차 및 서비스와 참정권'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쉽게 말하면 비장애인과 똑같이 대우하라는 얘기입니다.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보이지 않는 차별은 여전합니다.
 
지난 5월 4일~5일 사전투표일에 맞춰 장애인의 참정권이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지 서울시 강서구청에 마련된 사전투표소를 방문했습니다. 화곡동으로 이사 온 지 채 한 달도 안 되는 김진석 님이(이하 김 씨) 지체장애인을 대표해서 함께 동행해주셨습니다. 김 씨는 전동휠체어로 이동해야 할만큼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습니다.
1급 지체장애 김진석씨(오른쪽)사전투표소에 들어서니 많은 분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분주히 오갔습니다. 전동 및 일반 휠체어를 탄 사람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주부 등도 눈에 많이 띄어 사전투표 열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투표하기까지 험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강서구청의 사전투표소는 지하 2층에 마련됐는데, 구청이 지어진 지 40년이나 돼 장애인 편의시설이 갖춰지지 못했던 겁니다. 엘리베이터는 지하로는 아예 운행이 안됐고 지하로 내려가는 장애인 리프트도 전동휠체어는 탑승이 불가능했습니다. 현장의 투표 사무원은 “안전상 전동휠체어는 안돼요. 무게를 견디지 못해요”라며 막았습니다. 김 씨가 지하 투표소로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강서구청 사전투표소로 가는 계단구청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의 구조는 이랬습니다. 지하 1층까지 걸어서 내려가면 구내식당이 나오는데, 구내식당을 가로질러 20m쯤 걸어가면 다시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왔습니다. 그 계단을 내려가서 미로 같은 통로를 3번 돌아야 비로소 기표소에 도착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에서 기표소까지 제 걸음으로 시간을 재보니 1분 30초가량 걸렸습니다. 장애인은 이보다 몇 배 더 이동하는데 시간이 걸리겠죠. 문제는 투표를 하고 나오는 출구도 가파른 계단이어서 설사 기표소에 어렵게 도착했다 하더라도 다시 계단을 올라와야한다는 점입니다.
지하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미로 같은 통로를 3번 돌아야…어린 자녀를 유모차에 태우고 투표하러 온 주부도 아예 아이가 탄 유모차를 안내데스크에 맡기고 투표하는 광경이 목격됐고, 거동이 불편한 노모를 휠체어에 태워 함께 투표하러 온 50대 딸도 결국 혼자 투표하러 다녀오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장애인은 물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도 지하 2층에서 사전투표하기가 쉽지 않았던 겁니다. 물론 선관위 측에서 거동이 불편한 유권자를 위해 1층에 임시 기표소를 만들어놨습니다. 절차는 이렇습니다. 선관위 직원에게 신분증을 맡기면 직원이 지하2층으로 가서 신원을 확인하고, 다시 투표용지를 가지러 갑니다. 투표용지를 가지고 오면 임시기표소에서 투표하고, 봉투에 넣어 다시 지하 투표함으로 가져갑니다.
유모차 맡기고 투표하러 가는 주부얼핏 보면 몸이 불편한 유권자를 위한 것 같지만, 장애인 단체들은 ‘그냥 도와주면 되지’라는 이런 관행이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 못 하고 땜질식으로 처방만 하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지적합니다. 이날 함께 동행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의 박김영희 대표는 “참정권은 누가 도와줘서가 아니라 내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편의가 제공돼야 한다. 1층에 임시기표대만 있고 주민등록증과 투표용지를 다른 사람한테 맡기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권리로써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사전투표하러 갔던 김 씨도 결국 투표를 포기했습니다. 김 씨는 “지하로 내려갈 수도 없고, 다른 지역에 비해 좀 심한 것 같다.”며 기분 나빠서 투표하기 싫어졌다고 토로했습니다. 김씨는 이날 장애인 편의시설이 갖춰진 인근의 다른 투표소로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이동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습니다. 투표하러 간지 2시간 만에 겨우 투표를 마친 셈이었습니다.
시각장애인용 투표용지비단 사전투표소의 위치뿐만 아니라 투표용지와 임시기표대 등도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부족했습니다. 임시기표소에 마련된 기표도장은 오른쪽에 설치돼 있어 왼손잡이 유권자는 기표하기가 매우 불편했고, 전동휠체어가 기표소로 들어가기에 기표소도 작아 보였습니다. 기표도장을 중앙에 설치하는 것이 그나마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투표용지도 배려가 없는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각 대선 후보들의 이름을 점자로 알 수 있도록 인쇄했지만 정작 기표하는 공간이 너무 좁았고, 정확하게 사각형 안에 도장이 들어가기 힘들어 보였습니다. 대선 후보가 많다 보니 비장애인도 정확하게 사각형 안에 기표하기 힘든데 시각장애인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통역사도 현장에 없어서 필요하면 선관위 측에서 호출하는 식이었습니다.
휠체어가 들어가기 힘든 임시기표소오른쪽에 설치된 임시기표대 도장뉴스가 나가고 4천 개 넘는 댓글이 붙었습니다. 이곳 뿐만 아니라 전국의 많은 사전투표소가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배려하지 못했다는 제보가 이어졌습니다.
 
“해운대구청은 5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걸어 올라갔습니다”
“청량리 쪽 갔었는데 엘리베이터 없는 4층이었음. 어르신들 무릎 두드리며 올라가심”
“우리 동네도 3층이더라. 만삭인데 올라가기 힘들었음”
“유모차 끌고 갔는데 엘리베이터 없는 2층이라 아이 앉히고 유모차를 들고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계단밖에 없는 투표소장애인 화장실 가로막는 장애물장애인과 노약자를 배려해야 하는 이유는 그분들이 약자이어서가 아닙니다. 참정권을 행사하는 엄연한 유권자이기에 한 표, 한 표가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후천적 장애 발생률이 전체 장애원인의 90%를 차지합니다. 누구든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가 발생할 수 있고 거동이 불편해질 수 있는 겁니다.

2016년 12월 말 현재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장애인은 모두 251만 명으로 이 가운데 절반가량인 126만 명이 몸이 불편한 지체장애인입니다. 시각장애인도 25만 명, 청각 장애인은 27만 명이나 됩니다. 지적장애인도 20만 명 가량입니다. 요양시설에 있는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선 일정이 국정농단 사태로 앞당겨진 탓도 있지만 누구를 탓을 할 때가 아닙니다. 적어도 참정권을 행사하는데 불편함 없이, 누구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우리 모두가 좀 더 숙고하고 배려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