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돼지 발정제'의 효과에 대한 진실

한세현 기자 vetman@sbs.co.kr

작성 2017.04.22 10:47 수정 2017.04.22 14:2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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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대학 시절, 한 친구가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 돼지흥분제를 준비했다." 어느 철없는 대학생이 친구들에게 한 농담 같아 보이지만, 놀랍게도 이 발언의 주인공은 유력 정치인이었습니다. 그것도 대통령 선거에까지 출마한 정치인이었습니다. 바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입니다. 홍 후보가 지난 2005년 발간한 자서전 『나 돌아가고 싶다』에 나온 ‘돼지 흥분제 이야기’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겁니다. 논란이 일자, 홍 후보는 “해당 내용은 내가 관여한 것이 아니다”라며 책에 쓴 내용을 일부 뒤집는 듯한 해명했지만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기자로 근무하고 있는지만, 저는 대학에서 수의학을 전공한 수의사입니다. 대학원에선 병리학이란 기초의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전엔 예방의학연구실에서 ‘인수공통전염병’에 대해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연구실에선 주로 돼지의 질병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는데, 그 덕(?)에 자연스럽게 돼지발정제에 대해서도 알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런 돼지 발정제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 돼지발정제란?

돼지발정제는 기본적으로 '호르몬제'입니다. pregnant mare serum gonadotrophin(PMSG)와 human chorionic gonadotrophin(hCG)가 주된 성분입니다. 목적은 '돼지의 배란 촉진'입니다. 왜 돼지의 배란을 촉진할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새끼를 더 많이 낳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돼지는 흔히 ‘산업동물’로 불리는데, 새끼를 빨리 많이 낳아야 농가에 수익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각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사람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은 고유의 '성 주기'(Sexual Cycle)를 갖고 있습니다. 동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게는 배란은 끝난 뒤 번식이 가능해집니다. 이렇게 번식할 수 있는 시기를 ‘발정기’라고 합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배란은 발정으로 이어지고, 발정은 다시 번식으로 연결되는 겁니다. 앞서 얘기한대로, 산업동물은 새끼를 낳아야 경제적으로 이익이 남습니다. 그래서 배란 주기를 앞당기려고 돼지에게 배란촉진제를 투여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봐야 하는 건, 발정기가 왔을 때 암컷들의 반응입니다. 암컷들은 이 발정기에만 수컷을 받아들입니다. 중요한 건 ‘수컷을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발정이 온 암컷들은 성적으로 흥분한다기보단 수컷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결국, 발정제란 동물의 배란을 촉진해 수컷을 쉽게 받아들이게 돕는 호르몬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돼지발정제가 성적인 흥분을 일으키나?

앞서 설명드린 대로, 돼지발정제는 호르몬제입니다. 호르몬도 일종의 단백질이라, 음식으로 먹거나 음료로 마실 경우(즉, 경구투여) 위산 등에 분해가 돼 체내로 흡수가 거의 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먹거나 마셔서는 아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물론, 매우, 아주 많이 먹는다면, 약간의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미한 효과라도 보려면, 거의 하루 세끼 호르몬을 계속 먹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외부에서 과잉 투여된 물질을 처리하느라 간은 말 그대로 ‘죽을 지경’이 될 겁니다. 게다가, 주사제나 호르몬제제가 경구로 섭취되었을 경우, 간에서 대사되는 과정에서 95% 이상 다른 물질로 변형됩니다.
 
또, 발정제를 ‘페로몬(pheromone)’과 혼동해 쓰는 경우도 있는데 둘은 엄격하게 다릅니다. 페로몬은 동물 개체 사이에서 신호전달을 위해 이용되는 화학물질(Chemical material)로, ‘체외로 배출’됩니다. 반면, 호르몬은 체외로 배출되는 게 아니라 ‘체내에서 분비(내분비)’됩니다. 그런 점에서, 돼지발정제를 향수로 만들어 뿌린다고 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돼지발정제는 먹거나 마시거나 혹은 뿌려서는 전혀 효과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발정제는 호르몬제이기 때문에, 효과를 보려면 체내로 직접 주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돼지발정제가 사람 체내로 주사되더라도 '성적 흥분'이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몸에 해로운 다른 ‘흥분 작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돼지발정제는 약리학적으로, Adrenergic receptor -subtype alpha 2 antagonist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자율신경계 흥분을 억제하는 기전'을 '억제'하는 약물입니다. 즉, '흥분 억제'를 '억제'하다 보니 결과론적으론 흥분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흥분은 우리 몸에서 ‘교감신경’이란 부분이 담당합니다. 교감신경이 활성화하면 혈관이 확장되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호흡수도 증가합니다. 의학계에서는 혈관확장 효과 등을 이용해 이 약물을 발기부전제 등으로 쓰려고도 해봤지만, 부작용이 크고 약물 효과도 불분명해 경구 약물, 즉 먹는 약으로는 개발하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성적으로 흥분은커녕 그냥 몸만 상할 수 있는 겁니다.
 
●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다르다!!

앞서 설명해 드린 내용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은 “사람은 동물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동물의 암컷은 기본적으로 호르몬 분비에 따라 '주기적'으로 발정이 오고, 그때만 교미를 허용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동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그런 호르몬에 따른 ‘성적 흥분 사이클’을 극복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사람은 호르몬만이 아닌 자신의 '이성과 감성, 판단'에 따라 성적 행위를 결정한다는 겁니다. 호르몬만 투여하면 성적으로 흥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사람을 동물로 보는 것'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불임 치료를 위해 사람에게 사용하는 배란촉진제를 적정용량 주사하더라도, 단시간 내 성욕 증강이 나타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