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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나…시진핑 주장에 대한 고찰

남승모 기자 smnam@sbs.co.kr

작성 2017.04.21 07:55 조회 재생수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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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일과 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때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힌 걸로 전해졌습니다. 이 발언은 지난 12일 트럼프 대통령이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 때 언급했던 것으로 미국의 한 온라인 매체가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서 누락됐던 내용을 인터뷰 발췌본에서 찾아내 추가 보도하면서 알려졌습니다.

중국 정부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습니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0일 정례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전한 이 발언으로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이 우려하고 있다는 질문에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한국 국민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루 대변인은 "미·중 정상이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정상회담을 했을 때 한반도 문제에 대해 매우 깊이 충분히 의견을 교환했으며 관련 상황은 이미 제때 발표했다"고만 밝혔습니다. '두 대국(大國)이 너희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의견을 나눴으니 걱정 말고 있어라.'라는 뜻일까요? 역사 인식이 잘못된 것 아니냐는데 사과는 못할 망정 무슨 걱정을 하지 말라는 걸까요?

● 중국의 세계관 화이(華夷)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땅이 넓은 중국에서는 큰 나라들이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거듭했고 그 동쪽에 자리잡은 우리 선조들의 나라는 그런 중국 여러 나라들과 복잡한 상호관계를 맺으며 발전해왔습니다. 세계 4대 문명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황하 유역을 끼고 있는 중국은 19세기 서양 문물이 밀고 들어오기 전까지 명실상부한 동북아 선진국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넓은 영토와 풍부한 자원, 앞선 문화를 가진 중국은 매력적인 교역 대상국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자연스레 자리를 잡은 것이 바로 이른바 조공-책봉(朝貢-冊封) 관계입니다. 물론 그 밑바탕에는 중화(中華)가 세계의 중심이고 그 주변에 동이(東夷)-서융(西戎)- 남만(南蠻)-북적(北狄)이라는 사이(四夷), 네 부류의 오랑캐가 있다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이 깔려 있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 조공국은 속국?

조공-책봉 관계는 명목상 군신(君臣) 관계를 의미합니다. 천자(天子)의 나라인 중국이 우리 나라를 포함해 주변국 왕들을 지역의 통치자로 임명하는 방식입니다. 중국과 오랜 투쟁의 역사를 가졌던 고구려 역시 당시 중국 왕조들로부터 책봉을 받았습니다. 가장 활발한 대외 정복활동을 펼쳤던 광개토대왕조차도 후연(後燕)의 왕 모용보로부터 평주목요동대방이국왕(平州牧遼東帶方二國王)에 책봉된 바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언이 사실이라면,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라고 했다는 시진핑 주석의 발언은 바로 이런 조공-책봉 관계에 근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공-책봉관계가 실질적인 군신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북아 지역에서 발달한 독특한 국제관계의 틀로 이해 해야 한다는 게 학계의 견해입니다. 독립된 국가 간에 외교관계를 맺는 방법이었다는 겁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앞서 말씀 드린 대로 후연의 왕 모용보에게 책봉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 후연이 신의를 깨고 남소성과 신성을 침공하자 보복전을 개시해 407년경 사실상 후연을 멸망시켜 버리기에 이릅니다. 또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은 중국의 동진(東晋)과 남송(南宋), 북위(北魏) 등 여러 나라부터 연이어 책봉을 받았습니다. 당시 동북아 패자로 군림한 고구려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거나 고구려를 자국의 이익에 맞게 이용하기 위한 조치로 실제 종주국으로서 고구려에 지배력을 행사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 고려, 천자국(天子國) 송(宋)을 활용하다

고대사에서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중세에 해당하는 고려시대에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 가장 발달한 문명국가는 송(宋)나라였습니다. 고려 역시 문물이 발달한 송나라와 교역하길 원했고 기꺼이 사신을 통해 조공을 보냈습니다. 송나라는 어땠을까요? 국방력이 약해 늘 요(遼)나라의 눈치를 봐야 했던 송나라 역시 어떻게든 바다 건너 고려를 이용해 요나라를 견제하고자 했습니다.

고려사를 보면 고려는 북송이 멸망할 때까지 이런 저런 혜택을 많이 받아냅니다. 천자가 직접 선물을 챙겨 보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고려는 철저하게 실리에 입각해 외교관계를 이어갔습니다. 말로만 송나라에 칭신(稱臣)했을 뿐 송나라를 위해 군사를 일으키거나 요나라 혹은 금나라에 맞서지 않았습니다.

고려 성종 12년(993년) 거란(遼)의 대군이 고려를 쳐들어 온 것도 따지고 보면 고려가 송나라와 군사적 협력에 나설 것을 우려한 거란이 고려와 송나라의 외교관계를 끊어놓기 위해 취한 조치였습니다. 서희가 거란의 80만 대군을 돌려 세우고 강동 6주까지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당시 국제정세를 잘 알고 활용한 덕분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고려와 요나라, 송나라가 각자 독립국가로서 서로가 서로를 자국의 이익에 맞게 활용하기 위해 움직였고 그 형식적 틀이 조공과 책봉이었다는 얘기입니다.

몽고제국 침략 때는 어땠냐고요? 네, 그때는 사실상 속국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하지만 전세계 숱한 나라들이 몽고제국의 말발굽 아래 사라져 갔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형식적으로나마 국호와  자치 정부를 유지했던 고려는 평가할 점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성과는 고려 원종이 후계자 분쟁을 겪고 있던 몽고제국의 상황을 제대로 읽어 적극적인 외교를 펼친 결과입니다. 당시 원종은 왕위를 놓고 경쟁 중인 두 사람 가운데 쿠빌라이(후에 원 세조)를 택해 찾아가 스스로 칭신(稱臣)함으로써 특별한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 ‘하나의 중국’…피할 수 없는 위협

하지만 여기서 하나 유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조공-책봉 관계가 비록 과거 동북아 지역의 외교관계의 기본 틀이라고는 하나 단순한 외교관계를 넘어 실질적인 영향력으로 작용한 전례 또한 적지 않습니다. 공통점은 바로 중국이 통일된 왕조를 이뤘던 시기였다는 겁니다. 5호 16국이나 남북조 시대 우리 나라는 여러 중국 내 국가들과 복잡한 조공-책봉 관계를 맺으며 국익 외교를 펼칠 수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중국이 분열돼 있던 때입니다.

하지만 통일된 시기에는 직접 영향을 받거나 설사 그렇지 않았다 해도 그 영향력 아래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한(漢), 수(隨), 당(唐), 원(元), 명(明), 청(淸) 시기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가능합니다. 한나라 때 고조선 멸망, 수나라 때 고구려 침공, 당나라 때 고구려, 백제 멸망, 원나라 때 고려 항복, 명나라와 청나라 때 조선의 사대......

현재 중국은 통일된 국가입니다. 그냥 통일만 돼 있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의 중국’이란 기치 아래 공산당 1당이 국가 전체를 통제하는 철저한 중앙집권적 체제입니다. 그런 중국을 상대해야 하는 지금의 우리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중국의 자국 이기주의에 맞서 국익을 지켜내야 하는 쉽지 않은 현실에 직면해 있습니다.

한가지 생각해볼 수 있는 방안은 지금 시대에 맞게 먼저 전략적 시야를 넓히는 것입니다. 과거 분열된 중국을 상대로 외교전을 펼쳤듯이 이제는 통일된 중국을 전세계 여러 강대국 중 하나로 간주해 국제 외교 무대에서 우리 국익에 맞게 견제와 균형을 이뤄내는 방법입니다.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이 저마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외교전으로 승부를 보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보입니다. 북핵 문제로 G2인 미국과 중국의 국익이 충돌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한 상황입니다. 답답한 것은 차기 정부를 책임질 대선 후보들이 제시하고 있는 해법 가운데 이렇다 할 묘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역사의 교훈을 곱씹어봐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