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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차기 정부의 과제 ① : 거버넌스가 답이다

‘더 좋은 사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제언

* 5월 9일 대선 이후 차기 정부의 당면 과제는 무엇인지를 SBS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미래한국리포트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5편에 걸쳐 정리합니다. 

국가 운영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미래한국리포트는 거버넌스 연구를 확장해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 이외의 국가에서도 거버넌스가 작동하지 않을 경우 위기를 겪게 되는지 분석했다. 거버넌스는 협치라고도 하는데, 이를 풀어보면 '공통의 문제해결을 위해 이해 당사자들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조정하고 협력한다'는 의미이다. 본래 민주주의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누군가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견제의 틀이다. 불확실성을 제도화한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지나친 견제가 재앙을 낳기도 한다. 타협이 없는 다수결 민주주의를 '비토크라시(vetocracy)'라고 하는데, 2013년 오바마 케어를 둘러싼 공화당의 비토권 행사로 연방정부가 셧다운 된 미국 상황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재열 서울대 교수는 거버넌스를 '민주주의라는 견제의 틀 위에 신뢰와 타협을 보탠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이해 집단들이 국정에 참여하게 되면, 정책 결정의 정당성과 투명성이 커질 뿐 아니라 집행의 효율성과 효과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좋은 거버넌스는 충분한 토론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합의민주주의'와 잘 맞는다. 또한 장기적 협력을 요한다는 점에서 '조정시장경제'와도 잘 어울린다. 조정시장경제란 경제 주체들이 장기적 협력을 통해 변덕스러운 시장을 규율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업은 노동자에게 고용 안정과 경영 참여를 허용하고, 국가는 노동자에게 직업 훈련 기회를 제공하며, 노동자는 높은 숙련과 공정 혁신으로 보답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거버넌스가 작동했을 때와 작동하지 않았을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 일본과 독일 도시의 사례를 차례로 보자.
일본 유바리 시
한때 석탄 산업으로 유명했던 일본 유바리 시는 이제 몰락한 도시의 대명사이다. 시민들이 떠나버린 도시의 모습은 황량함 그 자체이다. 현재 유바리의 인구는 1만 여 명으로 일본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도시 중 하나이다. 유바리의 불행은 1980년대에 석탄 산업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유바리는 발 빠르게 관광 도시로의 변화를 시도했고, 필요한 돈은 중앙 정부로부터 빌렸다. 이 사업을 진두지휘한 사람은 민선 시장 나카타였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독단으로 처리했다. 곳곳에 관광 시설이 생겨나고 광부들은 새로운 일터와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무리한 사업 진행으로 시예산의 열 배가 넘는 빚을 안고 지난 2006년 재정 파탄을 선언한 것이다. 회계 장부까지 조작해 재정을 흑자라고 속여온 것도 나중에야 드러났다. 시가 파산하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이 떠안아야 했다.

행정 유지를 위해 세금을 더 내야 했고 복지 혜택은 크게 줄어들었다. 일자리도 잃고, 노후 연금조차 중단되자 많은 시민들이 이 도시를 떠났다. 유바리의 불행은 사회적 합의와 거버넌스 없이 시 정부가 모든 것을 독단으로 처리한 데서 온 결과였다. 유바리 시의 사례처럼 일본의 노동, 사회 정책 역시 '위기'라는 평가가 많다.

카나이 도쿄대 교수는 "지금 일본에서는 인간관계가 없는, 말하자면 모래알 같은 사람이 많은 상황이어서 거버넌스가 점점 축소되는 현실입니다."라고 말한다. 국가 주도의 의사 결정 방식, 그리고 노조가 사회적 파트너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일본. 이 때문에 전체 노동자의 30%가 비정규직인 상황에서, 일자리를 위한 일본의 '거버넌스' 역시 여전히 멀어 보인다.
독일 도르트문트
독일 서부의 중소도시 도르트문트는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석탄과 철강, 맥주 이 세 가지 말고는 아무것도 나지 않는 척박한 땅이었다. 그나마 지역 경제를 지탱하던 석탄과 철강 산업도 80년대로 접어들며 급격하게 쇠락하기 시작했다. 한때 7만 명이 넘던 석탄, 철강 분야의 종사자 수는 10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당장 일자리를 잃게 된 노조는 고속도로를 봉쇄하는 등 격렬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자리를 되찾기 위한 대책을 내놨다. 노조의 제안에 대해 대기업 티센크루프(ThyssenKrupp)는 500만 유로의 컨설팅 비용을 들여 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했고, 지난 2000년 도르트문트 시 정부는 아예 시장 직속의 노사민정 기구인 '도르트문트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목표는 명확했다. 10년 내 일자리 7만 개 창출. 이를 위한 10년간의 길고 긴 대화가 시작됐다.

10년의 길고 긴 대화 끝에 도르트문트는 IT와 나노, 물류뿐 아니라 전기차와 바이오산업 등 10개의 클러스터를 가진 도시로 성장했다. 지역 주민의 일자리는 물론이고 이제는 주변 도시의 인재들까지 끌어들일 정도가 됐다. 쇠락하던 탄광 마을이 제2의 라인 강의 기적을 이끄는 첨단 산업 중심지로 변신한 가장 밑바탕에는 바로 사회적 대화가 있었다. 일본 유바리 시의 사례는 권력을 견제하지 못했을 때 공동체가 위기에 처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반면에 독일 도르트문트 시의 사례는 사회적 대화가 위기 극복의 비결이었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더 좋은 사회 더 나은 미래
* 윗글은 2004년부터 매년 열린 SBS '미래한국리포트'를 정리한 '더 좋은 사회 더 나은 미래' (SBS 미래부/이창재 엮음, 한울)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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