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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지폐 속 세종대왕은 진짜가 아니다?…표준영정을 둘러싼 논란들

윤영현 기자 yoon@sbs.co.kr

작성 2017.04.11 15:02 수정 2017.04.11 15:24 조회 재생수7,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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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리포트+] 지폐 속 세종대왕은 진짜가 아니다?…표준영정을 둘러싼 논란들
오만 원권 지폐에 실린 신사임당과 만 원권 지폐에 그려진 세종대왕, 오천 원권에 그려진 율곡 이이.

지폐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생김새는 어떻게 그린 걸까요?
혹 정부의 ‘표준영정’을 토대로 만든 가상의 얼굴이라는 점을 알고 계시나요?

표준영정의 정식 명칭은 ‘정부표준영정(政府標準影幀)’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한국사 역대 위인들의 표준으로 지정한 초상화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표준영정은 지폐뿐만 아니라 정부 자료, 교과서에도 사용되고 있는데, 이를 둘러싸고 일종의 역사 왜곡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리포트+에서는 ‘표준영정’이란 무엇인지, ‘표준영정을 둘러싼 논란’은 무엇인지 짚어봤습니다.

■ ‘표준영정’이 뭐기에?

표준영정이란 역사에 등장하는 선현의 동상이나 영정을 제작할 때 그 모습이 일정하도록 통일시킨 초상화를 말합니다.

실제 얼굴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선현들의 모습을 각 분야의 전문가인 심의위원들의 심의를 거쳐 국가 공인을 받은 초상화인 겁니다.
외국인을 닮은 율곡 이이의 초상표준영정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1972년 율곡 이이의 초상화를 둘러싼 논란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오천 원권이 발행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율곡 이이의 콧날이 서양 사람 같다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이 같은 논란은 오천 원 권의 원판 제작을 영국의 화폐전문제조회사인 토마스데라루(TDLR)에 의뢰하면서 빚어진 일이었습니다.

이후에도 화폐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인물의 동상이나 영정을 제작할 때 그 모습에 차이가 생겨 사회적인 물의를 빚는 일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결국, 정부는 1973년 6월 ‘선현의 동상 건립 및 영정 제작에 관한 심의절차’를 제정하여 동상이나 영정 제작 등에는 반드시 정부가 최종 승인한 표준영정만 사용하도록 조치했습니다.

■ ‘표준영정=선현모습’, 넘겨도 되는 문제일까?

그동안 정부가 지정한 표준영정은 97개에 달합니다.

후손의 얼굴이나 구술 등을 토대로 제작해왔는데, 자료가 부족하다 보니 얼굴 생김새보다는 옷이나 머리 모양 등 고증에 더 신경을 썼습니다.

조선 시대 왕의 초상인 ‘어진’도 6.25 전쟁 때 대부분 소실됐고 왕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3점뿐입니다. 현재 교과서 등에 등장하는 왕의 초상은 대부분은 표준영정인 겁니다.
표준영정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표준영정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표준영정을 실제 역사 속 선현 모습이라고 단정 지어도 되느냐’라는 점입니다.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그린 영정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전해지지 않는 얼굴의 형태를 국가에서 표준으로 공인하는 것은 역사 왜곡의 일종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 외국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표준영정

표준영정으로 두고 일부 후손들이 반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6·25전쟁 등으로 소실된 영정을 새로 그리고 표준영정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주도한 영정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실제로 후손이 소지한 초상과 표준영정이 차이를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 2015년, 초등학교 국정 역사교과서에 실린 태조 왕건의 초상이 후손들이 가진 초상과 다른 것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태조 왕건의 초상 논란당시 정부가 지정한 태조 왕건의 표준영정도 후손들이 기려오던 초상과 달라 문제가 됐습니다. 이 같은 이유로 외국의 경우, 교과서 등 공식 자료 등에 출처를 밝히고 역사 속 인물의 다양한 초상을 인정하는 상황입니다.

화폐에 역사 인물을 그려 넣을 때도 초상화나 사진 등으로 실제 모습을 바탕으로 합니다. 고증할 자료가 없는 경우에는 상징적 동·식물이나 건물 등을 화폐에 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표준영정, 수정도 쉽지 않다

정부는 표준영정과 관련한 논란이 생길 때마다 일부 초상에 대한 문제를 인정하고 개선책을 논의 중이라는 입장만 반복해왔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한 번 지정한 표준영정은 교체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동안 영정에 문제가 제기돼 추가 자료 발굴 등으로 표준영정이 교체된 사례는 유관순 열사뿐입니다.
실제 교체된 것은 유관순뿐지난 2006년 유관순 열사의 이전 표준영정은 고문으로 얼굴이 부어있는 서대문 감옥의 수형자기록표 사진을 토대로 그려져 얼굴 모습과 나이 등이 실제와 다르다는 지적을 이유로 교체됐습니다.

같은 해 오죽헌에 있는 신사임당의 표준영정도 교체될 뻔했지만 무산됐습니다.

표준영정을 둘러싼 논란이 여전하고 교체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표준영정을 정부 자료와 교과서 등에 획일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다시 한번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기획·구성: 윤영현, 장아람 / 디자인: 김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