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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예은 아빠가 겪은 그 날 하루 - 국가 상대 손배소 당사자 신문 ①

더 이상 2014년 4월 16일은 다른 날과 마찬가지의 만 하루, 24시간의 물리적 시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작 가장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어야 할 누군가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은 자기 자신을 주어로, 그날의 일을 대체로 정확히 복기할 수 있다. 어디서 무엇을 하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고, TV를 켰을 때엔 어떤 화면이 보였는지. 다행한 소식이 전해졌는데, 나중에 그것이 아니라 정정하는 일이 벌어졌고 이후 늦은 저녁, 밤이 되자 불안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까지... 모두 바로 어제 일처럼 또렷이 떠올릴 수 있다.

그날의 일을 분초 단위로 가장 자세히 기억하고 있을 사람은 당사자들이다. 생존자, 생존자의 가족, 유족, 그리고 실종자 9명의 가족들. 지금껏 그들의 입으로 재구성한 4월 16일을 들어본 적 없었다. 죽음에 비견할 만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 게 분명하다는 사실만 넘겨짚어 알 뿐.

1월 1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10부(이은희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2차 기일에서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등 347명이 국가와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의 당사자 신문이 진행됐다. 당사자 신문을 위해 출석한 유족은 '예은 아빠' 유경근(48) 씨였다. 사고 당시 세월호 근처에 있던 둘라에이스호 선장 문예식씨는 이날 증인신문이 예정돼 있었지만, 외국에 체류 중인 관계로 다음 변론기일에 나오기로 했다. 유경근 아버지는 4.16 세월호 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간 세월호를 취재했던 기자들에겐 낯익은 분이다. 개인적으로는 두 달 전 세월호 연재기사를 시작하며 조을선 기자와 함께 오랜만에 인사드린 터였다.

이날 재판을 방청하며 기자는 예은 아빠의 눈으로 재구성한 4월 16일을 간접 경험했다. 2시간 30분 가까이(취재 일정 사이에 들른 거라 재판 모두를 방청하지 못했다. 실제 재판은 3시간 넘게 진행됐다) 계속된 진술 속에서 몰랐던 사실들을 꽤 알게 됐다. 참사 당시 현장에서 취재했고, 이후 그에 대한 책과 논문을 여럿 찾아 읽었지만, 당사자 입장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또 달랐다. 소름 돋을 정도로 구체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어서 받아 적는 가운데 틈틈이 꿈을 꾸는 것처럼 멍한 기분을 느꼈다. 방청석에 노란 점퍼를 입고 앉은 수십 명의 유족들도 예은 아빠의 진술에 따라 기억을 더듬는 것처럼 보였다. 한숨을 쉬다가 끙끙 신음소리를 내며 참다가, 어느 때엔 숨죽여 오열했다.
지난해 11월 22일, 첫 변론기일에 촬영한 사진. 법정에서 사진 촬영은 금지되지만 재판장은 노란 점퍼를 입은 유족들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세월호 유족 제공
참사로 자식을 잃은 아비가 보낸 하루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자문자답했다. 재난을 하나의 ‘이야기’로 소비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그날의 고통을 환기해 독자를 우울하게 하려는 건 더더욱 아니다. 시스템이라고 통칭하는 모든 것들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아니 애초에 부재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사고 직후 가족들이 겪어낸 일들은 누군가 그대로 반복할 수밖에 없는 필연의 것이 아니었다. 당연해서 기록할 필요 없는 것 같지만, 그 당연한 것이 자리 잡지 못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 앞서 밝혔지만 3시간 넘게 진행한 재판을 모두 방청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나온 다른 기사들을 통해 유추하건대 기자가 방청한 시간은 앞뒤로 30여 분이 부족합니다. 다만, 맥락상 무리가 없다고 생각해 기록합니다. 수기한 내용이라 혹여 관계자 가운데 수정할 사항에 대해 연락주시면 확인 후 바로 반영하겠습니다.
4월 16일 팽목항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가족들 / 출처: SBS 보도국 촬영 영상 아카이브
원고 측 대리인:
원고는 세월호 참사로 숨진 유예은의 아버지인가

유경근(예은 아버지):
쌍둥이 딸 가운데 둘째였던 유예은의 아버지 유경근이다

원고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20분쯤 출근 준비를 하다가 TV뉴스를 통해 세월호 침몰 소식을 알았나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던 중 예은 엄마가 급히 부르는 걸 듣고 YTN TV를 통해 알았다. 처음엔 오하나마 호가 아니었기 때문에 관계없는 일인 줄 알고 있었는데 자막으로 단원고 학생들이 탔던 배라는 것을 보고 그 때 예은이가 탄 배라는 것을 알았다.

원고는 세월호에 타고 있는 예은이와 연락이 닿았나
예은 엄마와 같이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가 잘 안됐다. 나와 예은 엄마가 한 차례 씩 통화가 된 것으로 기억하는데 얘기를 하던 중 신호가 끊어지는 바람에 그 다음엔 문자 메시지와 카톡으로 몇 차례 주고 받았다.

원고는 예은이와 문자 메시지로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는가
아침 9시 56분 전화를 걸었고 그 전엔 잠깐 통화가 됐는데 끊어졌다. 10시가 넘어서부터는 문자로 대화했다. 주로 배가 기울어졌다, 무섭다는 이야기였고 이후엔 해경이 도착했다는 말을 했다. 헬기가 왔는데 무섭다, 그래서 침착해라. 해군들이 들어오고 있어서 곧 구조될 것 같다, 돌아가겠다, 이런 대화를 하다가 답이 없어서 10시 15분에 아직 객실에 있다고 하는 문자를 보내고 그 후로 연락이 끊겼다.

마지막으로 연락이 된 시각이 10시 15분
그렇다. 문자 메시지로.

원고는 10시 30분 경 출발해 오후 2시 20분 경 진도에 도착했나
아이와 연락이 다 끊어지고 어떻게 할 길이 없어서 예은이 입힐 옷가지를 들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바로 출발하지 못했다. 내가 가는 게 맞는 건지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 계속 전화 통화 시도하다가 10시 50분 경에 빨리 가는 게 낫겠다 싶어 출발했고 2시 20분 경 진도 체육관에 도착했다.

누구와 함께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했나
내 차로 혼자 갔다.

진도 체육관으로 갔나
네비게이션에 체육관을 찍고 바로 내려갔다.

진도 체육관이라는 장소를 가야 하는 건 어떻게 알았나
방송에 그렇게 나와있었다. 예은이 엄마는 당시에 여기저기 학교에도 전화하고 심지어는 진도에 있는 교회에 전화도 하고. 섬에 있는 교회를 아무 거나 검색해서 번호를 알아내 전화해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빨리 체육관으로 일단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차로 타고 가는 도중 심경은 어땠나
(긴 침묵) 태어나서 진도라는 곳을 처음 가는 길이었다. 주변에 차가 있고 없고가 보이지 않았고 운전하면서도 계속 전화기를 손에 붙잡고 반복해서 통화 버튼을 누르면서 왜 집에선 예은이와 연락이 닿았다는 소식이 안 오지? 생각했다. 갓길이 보이면 갓길로 갔고, 단속 카메라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느 순간 가다 보니 차가 시속 180km를 넘기고 있었다. 그런데도 차가 왜 이렇게 느리지 싶어 쉬지 않고 속도를 밟았다.

진도 체육관에 일부 생존자가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딸을 찾지 못해 원고는 다시 팽목항으로 갔다고.
체육관에 도착한 지 3~40분 지났던 것 같다. 곧 구조된 사람을 태운 버스가 체육관으로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갔는데 정말 차가 왔다. 45인승 대형 버스 1대와 중형버스 2대가 왔다. 차가 오자마자 달려 나갔는데 주로 우리 아이들, 단원고 학생들이 내렸고 상당히 많은 아이들의 몸이 젖어 있었다. 적십자에서 준 모포를 뒤집어 쓴 채 내린 아이들이 체육관으로 들어왔다. 당연히 아이들 무리 속에 예은이가 있을 줄 알고 찾았는데 없었다. 체육관에 쫓아 들어가 혹시 예은이를 본 적 있는지 일일이 물어보고 다녔다. 그 중 한 아이가 나에게 “예은이 아빠세요” 묻더니 앞의 한 아이를 가리키며 “애가 예은이를 봤대요”라고 말했다. 그 아이는 모포를 머리끝까지 뒤집어 쓴 채 아무 말도 못하고 꼼짝 않고 있었다. “애가 아까부터 이러고 있는데 말하기 힘든 것 같아요. 그런데 애가 나오면서 그러길 예은이가 자기 뒤에 서 있었다고. 뒤에 서 있는 걸 봤으니 내가 나왔으니 예은이도 곧 나올 것이라고 했어요.” 그러면 우리 예은이도 곧 다음 차량으로 오겠구나, 그 때 분명히 누군가 ‘뒤에 구조된 사람들이 추가로 들어올 것이다’, 그래서 어디로 오느냐 물었더니 ‘팽목항에서 차를 타고 체육관으로 올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바로 팽목항으로 갔다. (* 참고로 진도체육관에서 팽목항까지 차로 이동할 경우 40분 가량 걸린다)  확실하게 들었기 때문에 팽목항으로 가 그곳의 경찰과 소방대원, 제복을 입은 모든 사람을 붙잡고 물었지만 ‘팽목항으로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없다.’ ‘모르겠다’ 라고 답했다. 2~30분 정도 헤매고 있다가 ‘여기 있는 사람은 알 수가 없겠구나. 여기 와 있는 동안 예은이가 체육관으로 갔을 지도 모를테니 다시 또 체육관으로 가자’. 그래서 체육관으로 갔다. 거기서 또 3~40분 기다렸는데 누구에게 물어봐도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거기서 또 ‘아니다, 팽목항이 제일 빠르겠다’ 싶어서 다시 팽목항으로 갔다. 그리고 예은이 시신이 나오기까지 팽목항과 침몰 현장을 오갔다.

잠시 증거 자료로 동영상들을 재생하는 시간이 있었다. 당시 가족들끼리 한데 모인 곳에서 예은 아빠가 이야기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이었다. 첫 번째 영상은 아마도 사고 직후, 아이들의 카카오톡 메시지와 부재중통화가 뒤늦게 전달되어 가족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던 그 즈음으로 보인다.
4월 19일 팽목항에 설치된 가족 대책본부 / 출처: SBS 보도국 촬영 영상 아카이브
“어제부터 아이들한테 연락이 왔어요. 그런데 저희가 요구하는 건 이게 사실이니까 구조해 달라 이런 게 아니에요. 이런 내용이 어쨌든 있는데, 설사 100개 중에 99개가 아니고 하나라도 맞는다고 하면, 그 하나를 위해서 구조에 임해달라는 거예요. 아까 위원장님이 말씀하신 많은 아이들이 아직 있다, 저는 그거엔 동의하진 못하겠어요. 하지만 저도 하나를 전해 받고 이걸 들고 상황실이라는 곳에 갔어요. 거기 사람들에게 보여줬더니 아무도 말 한마디 하지 않습니다. 다 입을 닫고 있어요. 저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요. 이건 애들 장난이다. 왜 애들 장난에 속느냐. 또는 통신이 자유롭지 않으니까 어제 아침에 보낸 게 지연되다 지연되다 밤에 온 것이다. 그러니 동요되지 말라. 그런 뜻으로. 저도 모르지 않아요. 그런 상황에서 통신 때문에 카톡이 지연되다 올 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하나라도 맞을 수 있으니 한 번 시도해 보겠다.' 이런 걸 요구하는 거예요. 그런데 무슨 말을 해도 아무 대응하지 않고 이 사람들은 말을 안해요. 신경을 안 써요.”

“앞에 유니폼 입은 사람들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아무도 대답 안 해요. 모르겠다는 거예요. 상황본부에 물어보면 팽목항이 안다, 팽목항에 물어봐도 아무도 몰라요. 그럼 상황본부를 왜 지었나요.”

“혹시라도 해서 배 타고 그곳에 나갔어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배를 보자 해경단정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갑자기 나타나요. 그런데 배의 선수에 접근을 안 해요. 우리가 소리쳐요. 달려가라, 안에 애들이 있다. 아무도 대답 안합니다. 거기 해경 배까지 쫓아가서 왜 잠수부를 투입하지 안하느냐 물었더니 지금 준비 중이래요. 1시간 뒤에 투입한대요. 그게 벌써 언제인데요. 그러더니 우리 배가 철수해야 한다고. 그래서 물러났더니 나왔던 해경단정들이 싹 철수해요. 이게 뭐냐면 쇼하는 겁니다. 그때 기자들이랑 같이 갔거든요. 카메라 들고. 거기서 외쳤어요. 들어갈 수 없다면 가까이에 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아이가 듣고 희망을 가질 수 있게 소리라도 쳐 달라. 그런데 그 부탁도. 그것도 위험한가요. 오늘 아침 바다보다 어제 새벽 바다가 더 잔잔했어요.”

“아까 방송을 보니 그런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내일 오후부터는 배의 인양 작업에 돌입한대요. 그리고 인양업체 사장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하는 얘기가 아마 내일은 시작하지 않을까. 인양을 위해선 배에 체인을 걸어야 하는데 배를 건져서 뭐할 거예요. 빠진 배에 체인 거는 것만 20일이 걸립니다. 그걸 끌어올리고 하는데 그 안에 갇혀있는 아이들은요. 이건 포기한다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하는데 여기서 어떤 부모가 좋게 얘기할 수 있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만약에 하나 그 안에 죽은 아이가 있다고 해도 시신을 구하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 인양이 중요한 게 아니고 사람이 중요한 거예요. 한 명이라도 거기 있다면. 한 명이라도 더 빨리 구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동영상을 모두 시청하고, 다시 원고 측 대리인의 신문이 진행됐다.
공개석상에서 발언하는 유경근 씨(예은 아빠)/ 출처: SBS 보도국 촬영 영상 아카이브
원고 측 대리인:
팽목항으로 갔더니 원고를 비롯해 다른 원고들이 애타게 가족을 찾고 있었는데 우왕좌왕할 뿐 아무도 움직임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정보 전달이나 책임있는 답변을 보여주지 않았다, 구조에 있어서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아 가족들을 애타게 만들었다, 이런 말씀인가

유경근(예은 아버지):
결정적으로 가족들이 현장에서 가장 분노했던 것은 거짓말이었다. 저는 4월 16일 밤에 현장에 나갔는데 낮부터 가 본 가족도 있었다. 저는 그러니까 사고가 난 후 최소한 12시간이 지난 후 나가본 거다. 그때까지만 해도 뭔가 하고 있을 줄 알았다. 발표도 그렇고. 그런데 그 시간에 나갔는데 정말 진짜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그때부터 가족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건 '뭔가 대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다. 우리가 듣고 있는 건 모두 거짓말이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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