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부작침] 양심적 병역거부 ① 그들은 왜 무죄를 선고하는가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작성 2016.09.28 14:24 수정 2016.09.29 08:0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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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하급심의 판단 요지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최고법원인 대법원은 예외 없이 유죄 판결을 내리고 있고, 헌법재판소는 병역법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하급심에서는 무죄 선고가 잇따르고 있다. 최고 사법기관의 헌법 해석과 법률적 판단을 하급심이 따르지 않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법관들은 자신의 판결이 상급심에서 뒤바뀌는 걸 원하지 않기 마련이다. 그런 법관들이 '파기 수순'이 불보듯 뻔한데도 이를 무릅쓰고 무죄를 선고하는 이유는 뭘까. 일각에선 국가의 현실을 모르는 ‘일부 법관의 돌출행동, 위험한 진보적 판결’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상당수 하급심 법관들은 양심은 인간의 가치와 직결되기에 법 앞에 세울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엇갈린 두 시선이 평행선을 달리는 사이, 입영통지서를 받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겐 아직도 양자택일의 선택지만 주어져 있다.

"의무를 불이행한 2등 국민, 국가보다 개인의 신념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가 될 것인가."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정체성을 망각한 채 살 것인가."

헌법이 부여한 신성한 국방의 의무,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 두 가치가 충돌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여전히 사회적 논란 속에서 미해결의 숙제로 남아 있다. 난마가 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매듭을 푸는 단초를 찾는다는 뜻에서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양심적 병역거부의 실태를 조사했다.

[마부작침] 양심적 병역거부가 소수자 인권? 1민8천8백명 투옥


우리나라에선 병역거부를 거론할 때마다 항상 이 단어가 따라붙는다. 바로 ‘소수자’다. 국민의 다수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 같은 특정 종교를 믿는 소수라는 시각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처벌 불가를 주장하는 근거로 ‘성숙한 민주사회란 다수의 지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소수의 인권을 보장할 때 이뤄진다’는 점을 내세우기도 한다.

[마부작침]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 현황 그래프
그러나 이젠 이 사안을 '소수자 인권'이 아닌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 바라볼 때가 됐다는 주장도 있다. 양심은 민주적 다수의 사고나 가치관과 꼭 일치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적 현상으로서 지극히 주관적인 것일 수 있다는 철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즉, 100명이 있으면 100개의 양심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연구해온 이재승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인격적 결정에 따른 것으로, 모든 국민의 존엄성과 정체성에 직결되는 인권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특정 종교를 둘러싼 마이너리티(소수자)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로 바라봐야 이 사안에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소수자의 문제로 한정하는 사이 '주홍글씨'는 늘어만 갔다. 지난 1950년부터 최근까지 양심적 병역 거부로 처벌받은 이들은, 확인된 것만 1만8천8백여 명으로, 지난 8월말을 기준으로도 370명이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상황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가운데 여호와의 증인을 믿는 사람이 아닌 경우도 지난 2002년 이후 72명이나 됐다. 이제 소수자의 문제로만 보긴 어려워지지 않았을까.

[마부작침] 사회의 외면.. '가혹해진 처벌' 징역 3만 6천년
[마부작침]  육군 의무복무 기간 그래프

병역거부는 정부 수립 직후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다. 한국전쟁 당시엔 남북한의 어느 군에도 입대하지 않아서 처벌을 받은 경우도 있다. 본격적인 처벌은 1950년대부터 이뤄졌는데, ‘입영거부’를 이유로 병역법을 적용해 민간법원에서 통상 징역 1년형이 선고됐다.

그러던 것이 박정희 정권 때 처벌이 강화됐다. 지난 1973년, 정부는 입영률 100% 달성을 목표로 선포하면서 병역거부에 대한 형량을 높였고, 민간법원이 아닌 군사법원에서 군형법을 적용하도록 했다. 강제로 입영시킨 뒤 집총과 같은 군사훈련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군형법상 ‘항명죄’로 처벌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 처벌한 뒤 다시 군사훈련을 거부하면 재차 처벌하는 방법으로 징역 5년(60개월)을 선고하기도 했다. 당시 육군 복무기간인 33개월의 2배 가까운 시간을 군감옥에서 보내게 한 것이다. "남북대치라는 특수한 안보환경에서 징병제를 근간으로 하는 병역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게 군당국의 설명이다.

'형벌권 남용' 논란을 빚었던 이런 처벌은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총을 들도록 연속해서 명령한 뒤 집총을 거부하면 두 번 불복종 한 것으로 간주해 가중 처벌하는 방식도 있었다. 군형법상 항명죄 형량이 높아진 1994년부터는 최고 형량인 징역 3년(36개월)을 선고하는 게 일반화됐다. 당시 육군 일반사병의 복무기간은 26개월이었다.
[마부작침]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 변화 그래프
강제입영이 사라진 2001년부터는 군사법원이 아닌 민간법원에서, 군형법이 아닌 병역법이 적용돼 징역 1년 6개월의 형이 선고됐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징역 1년 6개월이란 형량이 '정찰제'처럼 적용된 것이었다. 이는 1년 6개월 이상의 실형을 받아야만 병역을 면제토록 한 병역법 시행령(136조)에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1950년부터 현재까지 양심적 병역거부로 처벌받은 사람들의 수감 기간을 모두 더하면 얼마의 시간이 될까? 60년 넘게 처벌이 이뤄지는 동안, 그들의 총 수감 기간은 3만 6천 년으로 추산된다.


[마부작침] 20세기에 해결된 문제, 21세기에 관심 가진 사법부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해묵은 논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사실 이 사안이 공론화 된 것 자체가 얼마 되지 않았다. 덴마크는 1917년, 네덜란드는 1922년, 분단 상태였던 독일도 1960년부터 양심적 병역거부를 보장하는 등 상당수 국가는 이 문제를 20세기 초반에 사회적으로 정리했다. 한국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해 미약하게나마 관심을 가지게 된 건 21세기, 정확하게는 2001년부터다.

[마부작침] 양심적 병역거부 언론 보도량
뉴스 분석시스템 ‘빅카인즈(BIGKIND)’로 분석해본 결과, 1990년부터 최근까지 ‘양심적 병역거부’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는 모두 3,462건이다. 이 중 1990년부터 2000년까진 7건이다. 7건 역시 칼럼 또는 외신으로 국내 병역거부와는 관련이 없었다. 그러다 2001년 47건으로 늘어났다. 2001년은 병역거부자 재판이 군법원에서 민간법원으로 다시 옮겨간 시점으로, 처음으로 국내 수감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심층 보도가 언론 지상을 통해 나오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공론의 장이 형성된 건 이듬해인 2002년으로, 사법부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한 시점과 일치한다. 서울남부지법(당시 남부지원) 박시환 당시 판사(전 대법관)가 2002년 1월 ‘2001고단5819 양심적 병역거부자 사건’에서 병역법 조항에 대해 최초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법원이 사건에 적용된 법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해 "더 이상 재판을 진행할 수 없으니 헌법을 해석할 권한을 지닌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결정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뜻한다.


[마부작침] 변치 않는 판례.. 14번의 위헌제청 '하급심의 반란?'

[마부작침] 14번의 위헌제청 '하급심의 반란?' 그래프
비록 1심이지만 사법부가 처음으로 병역법 조항에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판단하면서, 기사도 260건으로 늘어나는 등 사회적으로 관심이 모이기 시작했다. 첫 위헌 제청 2년 후인 2004년 5월 서울남부지법 다른 재판부(1심)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게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하는 등 관행적으로 실형을 선고하던 법원의 분위기도 바뀌기 시작했다.

하급심의 잇딴 무죄 판결로 사법기관이 이제라도 인권의 감수성에 눈을 떴다는 인권단체의 평가도 있었지만, 최종심은 바뀌지 않았다. 사법부 내에선 이례적인 핑퐁 게임이 시작됐다. 하급심에서 처음으로 위헌 제청과 무죄 선고가 내려지자 대법원도 이 사안을 심도 있게 다루기 위해서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그리고 2004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처음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 소수 의견은 단 1명(이강국 당시 대법관)에 그친, '유죄'라는 결론이었다.

한 달 뒤인 2004년 8월 헌법재판소는 역시 처음으로 병역법 조항에 대한 헌법적 해석을 내린다. 재판관 7대 2의 '합헌' 결정이었다. 헌재는 "남북한 대치상황 속에서 강력한 전쟁 억제력을 위해선 공평한 병역의무라는 공익 실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확고했다.

대법원도 이런 헌법적 해석에 동참하며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이든, 단순한 병역 기피이든 모두 병역법 위반이라는 기존 판례를 고수했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양심의 자유는 중요한 기본권이지만, 그렇다고 병역 의무와 국가 안보 등 다른 공익을 무시할 수 있는 절대적 기본권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급심은 이후에도 위헌 제청과 무죄 선고를 반복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유죄 판례를 변경하지 않았다. 헌재도 2011년 8월 합헌 결정을 포함해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하급심과 대법원·헌재 사이의 핑퐁 게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급심이 위헌 제청과 무죄 선고를 이어가고 있지만, 대법원은 '유죄'로 응답하고 있는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된 위헌 제청(예비군 훈련인 향토예비군법 포함)은 지난 2001년을 시작으로 지난해 1월까지 열 네 번이나 이뤄졌다. 이례적으로 많은 위헌 제청으로 볼 수 있는데, 일선 법원에서만큼은 양심적 병역거부자 처벌이 반헌법적·반인권적이라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판례의 변화는 하급심부터라는 말이 있듯, 이는 사법부의 건강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면서도 "하급 법원과 상급 법원의 시각이 극심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권지윤 기자(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장동호
디자인/개발: 임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