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다음 달 전기 요금 고지서입니다. 연일 이어지는 불볕더위를 피하려고 튼 에어컨이 누진제 적용으로 '요금 폭탄’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죠.
그렇다고 찜통더위에 집에서 에어컨을 안 틀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에어컨, 어떻게 사용해야 누진제 부담을 최대한 덜 수 있을까요?
● 요금 폭탄의 주범 '누진제'란?
누진제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많이 쓸수록 값이 비싸지는 것’입니다. 많이 버는 사람에겐 비용을 많이, 적게 버는 사람에겐 적게 내게 하는 것이죠.
누진제를 도입하는 이유는 경제력 격차와 소득 간 불평등을 바로잡자는 취지입니다. 지금 한창 논란인 가정용 전기 요금도 바로 이러한 누진제 대상이죠.
가장 누진율이 높은 6단계에선 무려 709.5원의 요금이 매겨집니다. 1단계부터 6단계로 나뉜 가정용 누진 요금은 최대 11.7배까지 차이가 납니다.
에어컨을 켜기 전 평상시 300㎾h를 사용하는 가정은 4만 4,400원 정도의 전기료를 냅니다. 그런데 여름철 한 달 동안 에어컨을 틀면 요금은 확 뛰어오릅니다.
한 달간 매일 3시간씩 틀었다면 9만 8,466원, 6시간씩 가동했다면 18만 3,060원으로 급증합니다. 각각 121.8%, 312.3% 증가하는 것이죠. 에어컨의 추가 전력 사용분에 누진율이 적용되면서 ‘요금 폭탄’이 떨어지는 셈입니다.
에어컨을 틀더라도 전력 소비를 최대한 적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무엇보다도 에어컨의 컴프레셔 작동을 줄여야 합니다.
컴프레셔란 냉매를 압축했다가 방출하는 과정을 통해 실내의 열을 바깥으로 빼는 역할로 에어컨의 핵심 장치입니다. 사실상 전기 대부분을 잡아먹는 곳이기도 하죠. 에어컨 대기업 제조사가 밝힌 에어컨의 전기 절약 방법은 이렇습니다.
왜냐고요? 에어컨이 정해진 목표 온도에 도달한 이후에는 컴프레셔가 살살 돌아가기 때문이죠.
만약 에어컨을 강한 냉방으로 계속 틀어놓는다거나, 켰다가 끄기를 반복하면 결과적으로 컴프레셔의 운전 시간과 강도가 늘어서 전기 소모가 많아집니다.
또, 에어컨을 돌릴 때 목표 온도를 26℃에 맞춘 뒤 선풍기를 함께 쓰는 게 좋습니다. 에어컨 한 대가 소모하는 전기는 선풍기 30대와 맞먹기 때문입니다. 에어컨을 약하게 틀고 선풍기를 여러 대 쓰는 편이 전기료를 줄일 수 있습니다.
실내 온도를 1℃씩 낮출 때마다 전기 소비가 7%씩 늘어납니다. 에어컨 설정 온도를 22℃에서 26℃ 올리면 한 달 전기 요금을 9만 원가량 절약할 수 있습니다.
● 제습은 냉방과 비슷…'설정온도'가 중요
누진 폭탄을 피하는 방법으로 ‘제습 기능’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제습은 말 그대로 습기를 제거하는 기능으로, 실내 습도를 사람이 쾌적감을 느끼는 55~60%로 맞춰 줍니다. 제습 기능의 전기 소모량은 일반 냉방 운전의 40~50% 수준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 에어컨 제조사나 관련 논문 등을 살펴보면 제습의 전기 소모는 냉방 운전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습이나 냉방 운전 모두 컴프레셔가 똑같이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두 기능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습도를 보고 조절을 할지, 온도를 보고 조절을 할지 사용 목적의 차이입니다. 결국, 에어컨을 틀 당시 실내의 기온과 습도가 어떤지에 따라 전력 소모가 다른 것이죠.
가령 평소보다 습도가 지나치게 높은 장마철에 제습 기능을 사용하면 목표 습도를 위해 컴프레셔 가동이 늘어나기 때문에 전력 소모가 냉방 운전보다 많아질 수 있습니다.
냉방 운전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표 온도를 지나치게 낮으면 제습할 때보다 전력 소모가 심해질 수 있습니다.
실외기 위치도 중요합니다. 바깥에 설치한 실외기가 벽에 바짝 붙어 있으면 냉방 성능이 떨어집니다. 벽으로부터 최소 10㎝ 이상은 공간을 띄워놓고 사용하는 게 절전에 유리합니다.
● '기-승-전-누진제' 형평성 논란은 여전
에어컨을 지혜롭게 사용한다고 해도 누진제에 대한 국민 불만은 여전합니다.
정부는 누진제를 유독 가정용 전기 요금에만 적용한 이유에 대해 전 국민적 절약을 유도하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합니다. 전기를 많이 쓰는 부유층 가정은 많이, 적게 쓰는 저소득층 가정은 요금을 적게 매김으로써 소득 재분배 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이죠.
돌이켜보면 우리나라가 가정용 전기 요금에 누진제를 처음 적용한 시기는 1974년입니다. 당시 1차 석유파동으로 기름값이 급등해 전 세계 경제가 어려웠습니다.
이때 누진제를 통해 전기 절약을 유도하는 한편 저소득 가정에는 요금 부담을 줄이고자 한 것입니다. 특히 에어컨은 가전제품이라기보다 주로 부유층 가정에서 쓰던 사치품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죠.
가정마다 전기를 아껴 쓰고 있지만, 정작 전기는 누진제 적용을 안 받는 산업 현장이나 상업 시설에서 훨씬 더 많이 쓰고 있는 현실도 형평성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데, 가정용 전기 요금의 누진제는 40년이 지나도 그대로입니다. (기획·구성: 임태우, 김다혜 / 디자인: 임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