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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묵살해선 안 될 '김영란법' 피해 주장들

[취재파일] 묵살해선 안 될 '김영란법' 피해 주장들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 그 후, 축산업과 농어업은 결국 ‘김영란 법’의 직격탄을 피하기 어려운 처지입니다. 법의 취지는 관료나 위정자의 청렴 의무를 강화하려는 것인데, 당장 피해는 농사꾼이 보게 됐다는 정서가 반발을 키우는 모양새입니다. 유통업체들은 저렴한 가공식품 등 대체 상품으로 충격을 줄일 수가 있다지만, 이대로 법이 시행되면 해당 농어민들은 직격탄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사정이 어떻기에, 농축산 어민들은 이런 시름까지 떠안게 된 걸까요. 

벌써 백화점에선 추석 선물용 국내산 굴비 세트를 살 수 있습니다. 다음 주 본격적인 예약 판매에 앞서 내놓은, 일종의 샘플 제품들입니다. 비교적 싼 편에 속하는 게 열 마리 한 상자에 30만 원입니다. 45만 원부터 200만 원 짜리까지 다양합니다. 김영란법 기준대로, 선물용 5만 원에 맞춰 제작하면 2마리도 담기 어렵습니다.
한우는 사정이 더 나쁩니다. 이 백화점에서 파는 최고급 한우 안심 100g이 14,900원이니까, 포장에 거의 신경을 안 쓴다고 해도 5만 원 짜리 상품을 만들려면 300g 담기도 벅찹니다. 전체 선물 상품의 93%가 10만 원이 넘고, 99%가 5만 원 초과 상품입니다. 위법 소지 없는 상품을 내놓는 게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상품 기획자마저 이런 상황을 안타까워합니다. 한우나 굴비, 인삼 같은 선물 세트는 도저히 단가를 맞출 수 없는 상황이라, 대체 선물 세트를 몇 달 전부터 이미 준비해 왔습니다. 과일과 김, 육포 그리고 와인이나 통조림 등 가공 식품이 대체재로 마련됐습니다. 일단 이번 추석엔 5만 원 미만 선물 세트가 예년보다 20% 늘 거란 전망입니다.

결국, 헌법재판소에서 김영란법 합헌 결정이 나자,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가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식사 금액과 선물 기준을 올려 달라는 내용입니다. 한우협회 등 관련 단체들은 시행령 제정 등 법 시행 준비 과정에서, 농축수산물 제외를 강력히 요구해 나갈 걸로 보입니다.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일종의 피해 도미노가 올 수 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아직까진 개별적으로 피해가 큰 재배 작물이나 사육 분야를 중심으로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만 나오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농축산어업 전반에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가령, 농업 분야 가운데서도 가장 극심하게 김영란법 시행에 반발하는 화훼 분야의 사정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기준대로 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 10만 원 제한이 시행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승진용 난은 경조사비에 해당하지 않고, 선물로 규정돼 있습니다.

현재 인터넷이나 전화 주문으로 구할 수 있는 난의 최저가는 거의 6만 원 대. 재배한 난과 화분, 선물용 장식에 따른 인건비, 배송료 모두를 더하면 5만 원 아래로 떨어뜨릴 수가 없다고, 농민과 판매업자 모두 입을 모읍니다. 결국, 공직이나 국가가 출연한 기관의 승진 인사를 축하하려면, 위법 소지 없는 축하용 난을 사실상 구할 수 없습니다. 경조사에 쓰이는 화환이나 조화는 10만 원 기준이라 타격이 작지만, 승진이나 당선 축하용 화분 유통에 관련된 사람들은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한 겁니다.

이런 소득 감소에 대응해 화훼 농가들은 다른 작물을 키울 수밖에 없습니다. 임영호 화훼협회장은 “대부분 기존 비닐하우스를 활용해 채소나 파프리카 등 다른 작물도 병행 재배하게 될 것이고, 이런 현상은 다른 작물의 과잉 생산과 가격 하락 등 부수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우와 인삼, 굴비 등 다른 분야에서도 피해 농민들은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일부 분야의 위축이 농축산어업 전반에 부담을 줄 수 있는 겁니다.

그럼, 유통업계는 대안을 마련했으니 안도하고 있을까요. 우선 5만 원 이하 선물 세트의 ‘객단가’가 10만 원 넘는 세트보다 높을 리 없습니다. 게다가, 하반기부터 소비 심리가 위축하진 않을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당장 이번 추석은 전처럼 판매한다고 해도, 앞으로 선물하는 관행 자체가 점차 줄어들 거란 걱정입니다.
법이 시행될 올 하반기 동안, 국내 선물 세트 시장은 재편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위법 소지 없이 선물 세트로 만들 수 있는 제품들이 대개 공산품이란 겁니다. 유통업계에선 와인 2~3병 넣은 선물 세트나, 대기업이 만드는 가공 식품 수요가 늘 걸로 보고 있습니다. 명절 선물 판매로 농어민이 얻던 수익이 와인이나 통조림 등 값싼 대체재를 공급하는 기업으로 이전될 양상입니다.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 청탁과 접대 관행에 제동을 걸고, 부당한 특권 행사 역시 제한하는 효과가 있을 걸로 보입니다. 주로 힘있는 자들의 청탁 때문에 보이지 않게 피해를 봐 온 서민들은 고충을 덜 수 있을 겁니다. 그 결과 부패는 줄어들고, 신뢰 수준은 높아져 우리 사회를 더 나은 공동체로 만드는 데 이바지할 거라 기대됩니다.

농축산수산업 분야 종사자들이야말로, 누구보다 '약자'의 권리를 회복하고, 공정한 사회의 기틀을 마련할 김영란법의 성공을 바라고 있습니다. 큰 뜻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경제적 약자인 농축수산 분야의 피해를 줄여주기 위한 세심한 배려와 구제 방안을 고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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