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폭탄 된 무더위'…불쾌지수 치솟아 걸핏하면 주먹질

박진호 기자 jhpark@sbs.co.kr

작성 2016.07.23 09:15 수정 2016.07.23 11:0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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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건구온도+습구온도)+40.6', 여름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등장하는 불쾌지수 산출 공식입니다.

기온과 습도가 높을수록 불쾌지수는 올라갑니다.

80 이상이면 대부분이, 75∼80 미만이면 절반가량이 불쾌감을 느낍니다.

68∼75이면 적지 않은 이가 불쾌감을 나타내기 시작하고, 68 미만이면 대부분이 쾌적함을 느낍니다.

요즘처럼 최고기온이 33도 안팎까지 올라가고, 습도 또한 높은 찜통 날씨가 연일 계속되면 불쾌지수도 함께 치솟습니다.

신체 기능이 떨어지고 가뜩이나 만사가 귀찮은 상태에서 남과 살짝 스치기만 해도 의도하지 않은 충돌로 이어지기 십상입니다.

더위에 알코올까지 더해지면 상승 작용을 일으켜 전혀 예상치 않은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시원하게 걸친 한 잔 술이 오히려 독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지난 15일 새벽에는 충북 청주시 청원구의 주택가에서 39살 A씨가 술에 취해 길에 쓰러져 잠이 든 44살 B씨를 깨우다 화들짝 놀랐습니다.

잠에서 깬 B씨가 갑자기 화를 내며 주먹질을 한 것입니다.

고맙다는 인사는 못할망정 적반하장 식 태도에 덩달아 화가 치민 A씨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휘둘렀고, B씨는 그대로 나가떨어져 땅에 머리를 부딪쳤습니다.

B씨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틀 뒤 결국 숨을 거뒀고, A씨는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취객을 도와주려고 했다가 쇠고랑을 차면서 순식간에 인생을 망친 신세가 됐습니다.

47살 C(47)씨는 술에 취해 밖에서 잠들었다가 자신을 도와주던 경찰관을 폭행해 검거된 경우입니다.

C씨는 지난 21일 새벽 청주시 서원구 자신의 아파트 계단에서 경찰관을 발로 걷어차고 손으로 밀치는 등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달 14일 새벽에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의 한 아파트 단지 공원에서 잠을 자던 고교 교장이 경찰관 2명을 폭행하고 순찰차에서 난동을 부려 체포됐습니다.

이 교장은 지구대로 호송되면서도 순찰차 천장을 수십 차례 발로 걷어차기도 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자기들끼리 싸우다 112 신고를 하는 경찰관들도 있었습니다.

광주광역시의 모 지구대 52살 A 경위는 지난 6일 동료 C 경위에게 폭행당했다고 112상황실에 신고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자신과 말다툼을 벌이다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는데, 결국 훈방 조치로 마무리됐습니다.

더위와 폭력 사건의 상관관계는 통계로도 확인됩니다.

국가통계포털(KOSIS)을 보면 2012년의 경우 전체 폭행 사건에서 여름철인 6∼8월 비중이 전체의 28%로 가장 높았습니다.

다음이 9∼11월(26%)과 3∼5월(25%)이며, 겨울철인 12∼2월(21%)이 가장 낮았습니다.

월별로도 7월에 발생한 폭력사건이 1만8천785건으로, 가장 적은 1월의 1만2천188건보다 54.1%나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비슷한 내용을 뒷받침하는 해외 연구 결과도 잇따라 발표되고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연구팀은 2013년 세계적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게재한 보고서에서, 기온이 올라가면 폭력 범죄나 전쟁 같은 공격적 행동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연구팀은 인류역사의 제국 멸망과 최근의 전쟁, 미국 폭력 범죄 발생률 등에 관한 보고서 60건을 분석한 결과, 폭염과 가뭄 같은 기상이변이 있으면 폭력이 늘어나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기온이 3도 올라갈 때마다 폭력 범죄 발생 가능성이 2∼4%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뉴질랜드 캔터베리 대학에서는 크라이스트처치 지역의 경우 평균기온이 10도인 겨울보다 25도인 여름에 폭력 범죄가 8% 더 많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건국대 충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남범우 과장은 "인간의 공격적이고 폭력적 성향은 교육이나 이성의 힘으로 조절되는데, 불쾌지수가 올라가면 통제능력이 떨어져 사소한 자극에도 평소보다 훨씬 강한 반응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남 과장은 "치밀하게 계획한 범죄에는 똑같이 적용하기 힘들지만, 우발적 충돌에 따른 폭력사건이나 충동 범죄는 기온, 습도 같은 기후 요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여름철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시비가 붙어 지구대나 파출소에 오는 경우가 많다"며 "남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조심하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