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법원이 이렇게 빨리, 이렇게 완벽하게 박태환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으로, 복싱에 비유하면 1회 KO승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박태환의 완승 요인, 바꿔 말하면 대한체육회의 완패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서울동부지방법원이 내놓은 판결문에 나와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박태환의 리우올림픽 출전을 가로막았던 국가대표 선발규정 <제5조6항>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과 세계반도핑규약(WADC)을 위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2011년 10월 도핑 징계선수에 대한 ‘이중처벌’을 <올림픽 헌장>과 세계반도핑규약 위반이라고 판결했고 IOC는 관련 조항을 즉각 삭제한 바 있습니다.

판결문을 보면 대한체육회가 얼마나 궤변을 폈는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박태환의 가처분 신청에 대해 대한체육회는 “<올림픽 헌장> 제61조 2항에 따라 국내 법원의 관할권을 배제하고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가 관할권을 갖는 전속적 중재조항을 정관 제65조에 규정하고 있는 바, 이 사건 가처분 신청을 국내 법원에 제기하는 것은 관할권이 없어 부적법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쉽게 말해 이 안건이 CAS에서만 해결될 수 있는 사항이기 때문에 국내 법원에서 다루는 것은 법에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대한체육회의 주장은 궤변인 동시에 자가당착에 불과합니다. 그동안 대한체육회는 “CAS의 판결에 승복하겠느냐?”는 언론의 줄기찬 질문에 “결정이 나오면 대응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승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을 시사했습니다. 대한체육회 정관 제65조 2항에 CAS가 유일한 분쟁 해결 기구라고 명시해놓고도 불복할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시한 것입니다.
대한체육회의 태도는 박태환이 국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하자 또 바뀌었습니다. “박태환의 리우올림픽 출전 여부는 오로지 CAS에서만 해결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국내 법원은 관할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한체육회 특유의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감탄고토’식 행태를 또다시 보인 것입니다.
하지만 대한체육회의 이런 이율배반적 태도와 궤변이 법원에서 통할 리가 없었습니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채무자들(즉, 대한체육회, 대한수영연맹)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기한 위 분쟁사안에 관하여 이 사건 가처분신청의 심문 종결 당시까지 위 중재절차에서 이루어지는 결정에 대하여 국내법적 기속력이나 집행력 등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등 이를 이의 없이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지 아니한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채무자들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밝혔습니다.

국내 법원에서 망신을 톡톡히 당한 대한체육회는 이제 며칠 안에 국제 망신을 또 당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국제스포츠계의 ‘대법원’으로 불리는 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박태환이 제기한 항소건에 대한 판결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CAS가 이미 5년 전에 ‘이중 처벌’을 <올림픽 헌장>과 세계반도핑규약 위반이라고 결정한 판례가 있기 때문에 결과는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국내 법원에서 박태환에게 패소한 대한체육회는 규정에 따라 소송비용을 모두 부담하게 됩니다. 만약 CAS 판결에서도 진다면 역시 박태환 측 비용까지 전부 물어야 합니다. 1억 원이 넘을 것으로 보이는 이 막대한 비용은 사실상 국민 세금으로 지불됩니다.
처음부터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었던 대한체육회는 스스로 아집을 버리지 못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문화체육관광부의 지령이 무서워 그랬는지 간에, 결국 혈세 낭비까지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이 책임을 어떻게, 또 누가 질 것인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