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백세미'를 아시나요?…닭시장 교란하는 이종교배종

표언구 기자 eungoo@sbs.co.kr

작성 2016.06.23 10:25 수정 2016.06.23 11:4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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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정도 키운 백세미● 이종교배로 태어난 '백세미'란 닭

'백세미'라는 닭이 있다. 백은 흰색을 말하는 白이고 세미는 준(準), 반(半), 어느정도를 뜻하는 영어의 'semi'를 표시했다. 흰색의 잡종닭이란 의미다.

한국에서 만들어졌지만, 농림축산식품부는 물론 농촌진흥청이 닭 전문가들도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모른다. 80년대 후반 남부지방의 민간이 만들어 유통되기 시작했다고만 전한다. 

닭은 쓰임새에 따라 병아리를 만들기 위한 알을 낳는 종계((種鷄), 식용 계란을 낳는 산란계(産卵鷄), 고기를 이용하는 육계(肉鷄) 등의 종류로 나뉜다. 관상용이나 일반 가정에서 소규모로 사육하며 산란과 육용을 겸하는 닭도 있다. 출신에 따라 토종닭, 외래종으로도 나뉜다. 

가장 크게 쓰임새에 따라 나뉘는 두 종류는 종계(種鷄)와 실용계(實用鷄)다. 종계는 종자를 계속 만들기위한 닭이고 실용계는 바로 쓰이는 닭이다. 그래서 식용 계란을 생산하는 산란계나 육계는 실용계로 분류된다. 단 육용 종계도 있다. 정자 생산을 위한 육용 수닭이다. 암·수탉이 같이 있는 종계● 종계와 산란계의 차이

같은 알을 낳는 닭이지만 종계와 산란계는 차이가 많다. 종계는 병아리를 만드는 계란을 낳는 닭이다. 유정란(有精卵)을 낳는다. 종계가 있는 곳을 종계장이라 한다. 이 계란을 가져다 병아리로 부화시키는 곳은 부화장이다. 산란계는 식용 계란을 생산한다. 산란계가 낳는 계란은 유통과정을 거쳐 소비자에게 간다.

종계장과 이 유정란을 부화시켜 병아리를 만드는 부화장은 농식품부의 방역 고시가 따로 있을 만큼 가장 강력한 방역이 펼쳐지는 곳이다. 먼저 추백리, 가금티푸스, 닭마이코플라스마병 같은 닭 전염병에 대해 예방접종을 하지 못한다. 항균약제 사용도 제한된다.

종계는 세 차례나 정해진 절차에 따라 추백리, 가금티푸스, 닭마이코플라스마병 검사를 받아야한다. 여기서 양성 판정을 받으면 종계로 생명은 끝이다. 살 처분된다. 하지만 산란계는 일반 농가의 방역 절차만 따르면 된다. 예방접종도 하고 항생제도 먹인다. 산란계에서는 닭 전염병이 생겨도 약을 먹이고 접종을 해서 다시 알을 낳게 할 수 있다. 병을 쉽게 막는 방법이다.
● 방역 차이는 하늘과 땅

예방접종을 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더 강력한 방역인지 의문이 들것이다. 예방접종을 하지 않으니 병을 막으려면 철저한 위생과 깨끗한 환경,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축사 환경 등이 필요하다. 이게 최상이고 가장 강력한 방역이란 얘기다. 약을 쓰지 않아도 비용이 많이 든다. 병이 있는지 주기적으로 검사해야하고 증세가 있으면 도태시킨다.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아예 없는 상태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OIE, 즉 국제수역사무국은 가축 1종 전염병인 구제역이나 고병원성 AI의 경우, 백신을 쓰는 나라와 백신을 쓰지 않고 살 처분 정책을 쓰는 나라를 철저히 구별한다. 최상은 백신을 쓰지 않는 것이다. 한국은 구제역에 대해서는 백신을 도입했고, AI는 살 처분 정책을 쓰고 있다.종계장 입구● 종계장에는 일반인 접근도 어려워

아무튼 산란계는 일반적인 방역 절차를 따르지만 종계장은 최상의 방역이 펼쳐지는 곳이다. 취재를 위해 종계장과 산란계장을 다 다녀봤다. 종계장의 경우 방역 문제로 정문 통과도 힘들다. 모든 취재는 정문 밖에서 이뤄진다. 아무리 설득해도 요지부동이다. 산란계는 그렇지 않다.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축사 안까지 들어갈 수 있다. 방역 복을 입고 소독을 하면 일반인도 출입이 가능하다.

축사 환경이 좋고 관리도 비교적 좋다보니 같은 품종이라도 종계는 산란계보다 몸집이 크다. 거의 두 배 차이가 난다. 평생 낳는 계란은 산란계가 300개 정도지만 종계는 200를 넘지 않는다. 종계 암탉은 보통 축사에서 수탉과 같이 지낸다. 산란계 축사에는 수탉이 없다. 백세미● 병아리값은 일반 육계의 절반 정도

모든 닭이 종계가 낳은 알을 부화시켜 만드는 데 비해 백세미는 산란계가 낳은 알을 부화시킨다. 육용 종계 수 탉의 정자를 산란계 암탉의 몸에 주입시키는 방식이다. 인공 수정이다. 그 과정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수 만 마리의 암탉 몸에 정자가 든 주사기를 찔러 수정시킨다고 한다. 얼마 전 SBS 동물동장에서 다뤄 충격을 줬던 강아지 공장의 무자비함과 비슷할 것이다. 이 자체가 사실은 불법(不法)이었다. 종계장이 아닌 곳에서 병아리 부화용 계란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문제는 정기적인 닭 전염병 검사 절차가 없는 곳에서 부화용 계란이 생산되는 것이다. 이 계란을 부화시킨 것이 백세미다. 태생적으로 위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병아리 값도 육계의 절반밖에 안 된다. 백세미 농장● 닭고기 시장 교란하는 백세미

백세미가 생기기 전까지 삼계탕은 토종닭이나, 웅추(雄皺)라고 부르는 산란계 수탉을 사용했다. 알을 낳지 못하는  산란계 수평아리를 적당히 키워 삼계탕용으로 쓰는 것이다. 그 맛을 잊지 않는 사람들은 지금도 웅추 삼계탕을 많이 찾는다. 전문점이 적기는 하지만 아직 인기다.

하지만 백세미가 점차로 삼계탕 시장을 장악해간다. 양계농가들은 백세미 사육 금지같은 퇴출이나 관리를 정부에 요구했다. 한국양계협회가 앞장섰다. 양계협회는 양계 농가, 산란계 농가들이 중심인 협회다. 토종닭협회도 목소리를 높혔다.

백세미를 주로 만들어내는 곳은 하림이나 마니커 같은 닭고기 기업들이다. 계열화 기업들이 여름 복 경기에 대비해 백세미를  대량 사육해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삼계탕용 닭이 따로 만들어지다 보니 웅추 같은 수평아리들은 쓸모가 없어졌다. 그래서 믹서에 갈려 반려동물 사료용으로 납품되는 신세로 전락했다. 한 해 수 억 마리의 수평아리들이 태어나자마자 이런 최후를 맞는다.

● "육계시장 15%까지 점유"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백세미가 길러진다. 병아리 값이 싸니 다 큰 백세미 값도 싸다. 치킨용으로 쓰는 프랜차이즈업체들이 늘었다. '두 마리 치킨'이나 '옛날통닭' 같은 이름으로 인기다. 도계장(屠鷄場)에서는 삼계탕용 닭과 육계로만 분류된다. 삼계탕용으로 분류되지 않은 백세미가 1억 마리 이상 육계로 도계된다. 업계는 육계시장의 15%를 점유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육계 시세가 떨어지면 만들어 놓은 백세미용 계란을 부화시키지 않고 시중에 유통시킨다. 가뜩이나 공급 과잉 상태인 육계, 계란 시장에 통계조차 되지 않는 백세미까지 가세하는 것이다. 정부가 내놓는 백가지 수급조절 정책이 다 효과가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는 닭고기 시장의 점유율을 높이려는 업체들의 '치킨게임'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농민들은 업체들의 경쟁을 방관한 것은 결국 농식품부라고 입을 모은다.

● 공급 과잉이어도 소비자 가격은 그대로

공급 과잉이라면 소비자라도 싸게 계란이나 치킨을 즐길 수 있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유통 상들의 마진만 늘어난다. 계란 값이나 치킨의 소비자 가격은 요지부동이다. 육계 한마리가 농가에서 1천 원도 안 되는 가격에 나갈 때도 치킨 값은 여전히 2만 원에 육박한다. 치킨 업체들은 연초에 계약한 금액으로 공급받기 때문에 치킨 값을 내릴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닭고기 업체들도 불황을 호소한다. 간혹 중견 업체가 부도로 쓰러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업체를 죽이기 위해 백세미까지 키운다. 양계업과 관련 남는 곳은 없고 어렵고 힘든 곳만 있다. 그중에 가장 힘든 곳은 농가다. 소비자들은 박탈감만 커지고 있다.   ● 정부가 한 일은 변칙적으로 합법화

이렇게 백세미는 광범위하게 퍼졌고 시장을 형성했다. 수출용 삼계탕도 전량 백세미로 만든다. 농식품부는 여기서 약간 변칙을 썼다. 백세미를 법 테두리 안에 일부 끌어오면서 합법화시킨 것이다. 농식품부 고시를 통해 부화장에서 백세미 알도 일반 종계 알처럼 방역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항목을 넣은 것이다.

부화장만 넣었고 종계장은 뺐다. 산란계장을 종계장으로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문제는 계속되고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별도 법을 만들어 따로 관리했으면 될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축산법은 지켜야하고 백세미는 관리해야 하다 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돼버렸다는 것이다.●삼계탕 수출…모래위의 성쌓기 될라

문제는 역시 위생이다. 부화장만 관리하고 종계장은 빼버렸기 때문이다. 난계대(卵係代) 감염, 즉 어미닭에서 계란으로의 감염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백세미용 계란이 유통되는 경우도 있다면 식중독을 일으키는 살모넬라균이 걱정이다.

미국에서 살모넬라균에 대한 공포는 엄청나다. 농가에서는 백세미가 가금티푸스나 닭 마이코플라스마 병 같은 닭 전염병의 온상이라고 강조한다. 난계대 감염으로 균을 갖고 있다 병아리로 부화된 뒤 곧바로 농가에 입식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큰 관심을 보이면서 농식품부가 전력을 다해 추진하고 있는 삼계탕 수출도 걱정이다. 살모넬라균은 가열해 조리하면 모두 없어진다. 하지만 종계를 통해 태어난 뼈대 있는 원료 닭이 아닌 것이 걸린다. 원칙의 문제다. 양계업계에서는 삼계탕 수출이 자칫 모래위에 성 쌓기가 될 수도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