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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미운 친구' 오바마 맞는 사우디…복잡한 속내

[월드리포트] '미운 친구' 오바마 맞는 사우디…복잡한 속내

정규진 기자

작성 2016.04.20 14:41 수정 2016.04.20 17:5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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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미운 친구 오바마 맞는 사우디…복잡한 속내
▲ 사진= 게티이미지
 
참 미묘한 시기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합니다. 사우디는 최근 유가가 급락한 가운데 예멘 내전에 돈을 쏟아 부으면서 재정상태가 상당히 약화된 상탭니다. 17일 산유국의 원유 생산량 동결 합의도 무산됐습니다. 유가하락세는 당분간 더 지속될 전망입니다.

오랜 우방인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최악의 수준입니다. 미국이 지난해 7월 앙숙인 이란과의 핵 협상 타결을 주도하면서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미국 하원은 9.11 테러에 대한 피해 배상을 테러범의 출신 국가와 단체에도 물리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우디 정부가 9.11 테러범을 지원했다’는 의회조사 보고서 공개를 놓고도 공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사우디가 ‘중동의 대 테러전에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짜증난다”고 까지 표현하며 사우디를 대놓고 비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야말로 경제며 정치며 외교며 모든 관계가 악화된 사우디를 ‘미운 친구’ 오바마가 임기말에 방문하는 것입니다.

오마바 미국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과 관련해 이런저런 자료를 찾다가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카네기평화연구소에서 사우디의 현재 상황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담은 짧은 보고서가 있길래 소개할 겸 글을 올립니다. 중동 정세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다 아는 내용이지만 간략하게 잘 요약이 됐습니다. 여기에 제가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과 의견을 더해서 씁니다. 
오바마와 살만 국왕
● 강력한 사우디, 비틀린 외교정책

살만 빈 압둘라 아지즈, 줄여서 살만 사우디 국왕이 취임한 지 1년 3개월이 지났습니다. 살만 국왕은 취임하자마자 ‘강력한 사우디’를 주창하고 나섰습니다. 압둘라 전 국왕의 온건노선을 탈피하고, 중동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군사개입도 마다하지 않는 강경노선을 택했습니다.

자기들끼리 ‘살만 독트린’이라고 부르는데, 그 선두엔 국왕의 아들이자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모하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자가 있습니다. 나이 서른에 사우디 경제발전위원회 위원장 겸 국방장관 겸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의 최고회의 의장까지 도맡고 있는 인물입니다. 나라의 돈과 군대를 손에 쥐었다면 말 다한 거죠.

수니파의 영향력 강화를 목표로 살만 부자는 예멘 내전에 군사개입을 하고 시리아 사태에까지 뛰어들었습니다. 셰일가스와 전쟁을 선포하며 원유생산량을 늘리는 강수도 뒀습니다. 동기야 어쨌든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다 악수로 판명 났습니다.

유가는 곤두박질하고 예멘에서는 주먹 한방에 날아갈 것 같은 후티 반군이 끈질기게 버티고 있습니다. 오히려 알카에다나 IS같은 테러조직이 자랄 토양만 마련해줬다는 비난에 직면했습니다. 곳간이 비어가니 ‘충분한 목표를 이뤘다’라며 후티반군과의 평화협상을 통해 예멘에서 발을 빼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습니다.

사우디에 이끌려 예멘 사태에 개입한 걸프 왕정국가들은 얻은 것도 없이 힘만 낭비한 셈입니다. 카네기연구소는 살만 체제의 강경노선은 역효과만 낳았다고 판단합니다. 더 큰 문제는 오일 머니가 힘을 잃으면서 수니파 사슬을 갈수록 느슨하게 만들고 있다는 겁니다. 
원유생산량 동결 합의를 무산시킨 모하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자
● 이란 견제, 자승자박

스스로 자초한 유가하락으로 사우디는 죽을 지경입니다. 그래서, 지난 17일 카타르 도하에서 OPEC 회원국 뿐 아니라 러시아 등 주요산유국 15개국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산유량을 동결하자는 거죠. 회의 전부터 “지난 1월 수준으로 10월까지 생산량을 동결하는데 서명만 남았다”라는 긍정적인 보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늦어지고 길어진 회의의 결과는 ‘Nothing’ 이었습니다. 없던 일이 된 거죠.

합의 무산의 중심엔 모하마드 빈 살만 왕자가 있었습니다. 이 분이 “이란이 끼지 않으면 우리도 못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한 겁니다. 이란은 핵협상 타결 이후 경제발전 자금 마련을 위해 원유 생산량을 팍팍 늘리고 있습니다. 제재 이전에 하루 400만 배럴 정도 생산했는데 현재 330만 배럴 정도를 뽑아내고 있습니다. 갈길 급한 이란은 누가 뭘 하든 우린 생산량 동결을 할 수 없다고 못 박았고 도하 회의에도 불참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란이 죽도록 미운 사우디는 이란 혼자 돈을 더 벌게 놔둘수 없다고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생산량 동결을 합의해도 불참한 이란은 산유량을 계속 늘릴테고, 생산량 동결로 유가가 올라가면 이란은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 될 거라는 생각에섭니다.

유가하락에 예멘 내전에 53억 달러를 쏟아 부은 사우디 경제는 엉망입니다. 예산을 15% 삭감할 정돕니다. 돈이 없으니 투자도 줄어들고, 중국과 인도 등에서 원유시장 점유율을 빼앗기는 실정입니다. 그런데도 이란을 견제해야 한다는 종교.정치적 논리가 결국 경제 논리를 눌렀다는 평갑니다.

● 좁아진 수니파 종주국의 입지

변덕스러운 정치 행태에 대한 변명으로 누군가 “정치는 생물(生物) 이라고 했는데, ‘국제외교도 생물’입니다. 자국의 득실에 따라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로 바뀔 수 있습니다. 사우디의 오일머니에 기대살던 중동의 가난한 나라들도 그렇습니다. 사우디는 그동안 주변의 가난한 수니파 동맹국에게 사실상 무상 원조 방식으로 지원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요즘 자기 살림살이가 궁해지다 보니 원조를 차관 형식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이집트의 경우를 볼까요? 사우디는 그동안 이집트에 보조금 형태로 지원하던 값싼 기름을 이제는 이자까지 붙여서 받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최악의 경제난에 빠진 이집트로선 어쩔 수 없이 유가보조금 삭감 같은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만은 커질 수 밖에 없겠죠. 그럼 국민의 불만을 줄이기 위해 권력자는 새로운 경제적 파트너(물주라는 표현이 적당하겠지만)를 찾게 됩니다. 이집트의 경우 러시아가 됩니다. 이집트 엘시시 정권은 러시아 푸틴 정부와 가면 갈수록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습니다. 푸틴이 이집트에 오면 엘시시가 러시아를 가고, 요즘은 이집트가 미국보다 러시아와 가깝다는 말까지 나올 정돕니다.

러시아가 누굽니까?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의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사우디가 그렇게 쫓아내야 한다고 외치고 다니는 시아파입니다. 대신 이집트는 사우디와 충성을 맹세하는 듯 하면서도 정작 예멘에 군대를 보내라는 사우디의 요청은 못들은 척하고 있습니다. ‘받은 만큼 주는 것’ 국제외교도 마찬가집니다.
살만 사우디 국왕을 환영하는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 ‘미운 친구’ 오바마

앞서 적은 대로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역대 최악입니다. 두 나라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루즈벨트 정권 때부터 시작됐죠. 미국은 사우디에게 군사적 지원을 해줬고, 사우디는 대신 안정적인 기름 공급처가 됐습니다. 여기에 종파적 대립관계인 이란이 반미의 기치를 내걸면서 미국은 중동에서 영향력 유지를 위해 사우디의 안보 지킴이로서 역할을 자청해왔습니다. 사우디 역시 하루 100만 배럴의 석유를 미국에 공급해주며 맹방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이 둘의 관계가 비틀어지기 시작한 건 ‘아랍의 봄’ 때부터 였습니다. 2011년 이집트 시민혁명 당시 미국은 사우디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바라크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습니다. 시리아 내전에서도 시아파인 알 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까지 쓰며 시리아주민을 학살하는데도 미국은 모른 척 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소한의 개입’을 의미하는 오바마 독트린을 내걸었고, 사우디 입장에선 ‘중동의 위기’를 남의 집 불구경하듯 넘겼습니다. 사우디로선 혼란의 다음 차례가 자신들이 될 지 모를 위기상황인데 미국이 과연 약속대로 자신들을 지켜주기나 할 지 의심이 들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오바마 대통령은 결정적으로 이란과 관계 개선에 나섰습니다. 사우디로선 절친이 세상에서 제일 미워하는 애랑 손을 잡는 걸 보게 된 겁니다. 오바마는 핵 위협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이란의 족쇄까지 풀어줬으니 사우디는 중동내 영향력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된 겁니다. 아마도 사우디가 미국의 셰일가스를 죽이겠다며 유가하락을 선도한 것도 이런 미국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담기지 않았나 하는 추정도 나옵니다. 결과적으로는 제 발등을 찍은 격이지만…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 오바마 대통령은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이란을 핵합의 위반이 아니라고 감싸더니 거침없이 ‘사우디 무임승차’ 발언을 했습니다. 미 의회는 9·11 테러 관련 재판에서 테러범들과 사우디 정부·왕가의 연계 의혹을 법정에서 다루도록 법안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우디도 더는 못 참는 듯 자신들이 보유한 수천억 달러의 미국 채권을 처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운 친구’ 오바마가 사우디를 방문하는 겁니다.

● 미워도 다시 한번?

우정보다는 실리 측면에서 미국이나 사우디나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사우디는 어찌보면 독재나 다름없는 왕정국가입니다. 사우디 왕실로선 언제 터질지 모를 반대세력의 위협에 대항해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미국이란 큰 우산이 필요합니다.

사우디가 어려운 거지 망한 건 아닙니다. 미국에게 사우디는 여전히 최고의 돈줄입니다. 미국의 채권을 사줄 나랍니다. 그리고, 중동의 대테러 전에서 가장 많은 무기와 자금을 지원한 몇 안 되는 나랍니다. 더구나, 이슬람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수니파를 대표하는 나랍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내년 1월까지 입니다. 사우디로선 오바마는 미워도 미국을 미워할 수 없습니다.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지 오마바처럼 사우디에 대해 냉담하게 대응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미국 싱크탱크의 관측입니다. 결국 양측 모두 이번 방문에서 뒤틀어진 관계를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미국 뉴욕타임즈가 오바마 대통령이 사우디를 비롯한 GCC 걸프협력회의 6개국(쉽게 말해 걸프왕정국가)들에게 무엇을 제시하고 받아낼 것인가를 관측하는 기사를 올렸습니다. 이 신문은 아마도 이란과 미국의 관계 개선으로 화난 걸프국들에게 새로운 미사일 방어 시설과 사이버 공격 방어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할 게 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란과 다시 말을 텄지만 그렇다고 너희 동네를 위험하게 만들지는 않을거야. 여전히 지켜줄께“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거라는 겁니다. 그리고, 사우디에게는 덤으로 ‘의회의 개정 테러법을 거부’하겠다는 약속을 해줄지도 모릅니다.

대신에 자국과 지역 방위비를 더 많이 부담하라고 걸프국들에게 요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도 새 시스템으로 너희를 든든하게 지켜주겠지만 너희도 이제는 주머니를 열어야 하는 거 아니니?'라고 말합니다. ‘대 테러 무임승차’ 발언도 다 이런 협상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걸프국도 경제가 어렵다지만 죽을 만큼은 아니라서 아마 미국의 방위비 증액 요구를 무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대신 예멘 사태나 시리아 사태에서 미국이 자신들의 요구에 맞게 영향력을 행사해 줄 것을 요청할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의 축출 요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우디는 자신들이 지지하는 반군 대표단의 요구를 내전의 주도권을 되찾은 시리아 정부측이 들은 척 마는 척 하는 상황이 참기 힘들 겁니다. 평화회담을 유엔이 중재하고 있다지만 실질적으로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한 새 판짜기는 미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상황입니다.

오바마가 싫지만 미국과 등질 수 없는 걸프 왕정국가로서는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마음으로 오마바를 맞이하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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