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나치 수용소' 트레블링카…마지막 생존자의 당부

권재경 에디터, 권영인 기자

작성 2016.03.01 08:08 수정 2016.03.01 16:1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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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버전>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이뤄진 ‘아우슈비츠 수용소’. 그런데 ‘아우슈비츠’에 가려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수용소가 있습니다. 그곳의 이름은 ‘트레블링카 수용소’. 87만 5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곳에 갓 20살이 된 청년 수감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희생자들의 옷 무더기를 정리하다 생사를 알 수 없던 여동생들의 죽음을 마주해야 했던 이 청년. 1943년 수용소를 탈출하기 전까지 그는 강도 높은 노역에 시달리며 끔찍한 학살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사무엘 빌렌베르크(Samuel Willenberg). 끔찍했던 트레블링카 수용소의 생존자입니다. 트레블링카 수용소는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을 영문도 모른 채 가스실에서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그와 함께 왔던 6천5백명도 그날 가스실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용소에서 우연히 만난 그의 고향 사람이 ‘벽돌공’이라 말하면 살 수 있다 말해줬습니다. 이에 그는 자신을 벽돌공이라 속였습니다. 노역자가 필요했던 나치는 그를 살려두었습니다. 그는 그 날 6천5백명 중 유일한 생존자였습니다.

10개월 동안 지옥 같은 노역에 시달리던 그는 1943년 8월, 무기를 빼돌린 수감자들과 함께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한 쪽 다리에 총상을 입은 채, 널브러진 시체들을 넘어가며 수용소에서 탈출했습니다. 이날 봉기에 참여한 수백명의 수감자중 67명만 살아남았습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겨우 살아났지만, 그는 다시 총을 들고 독일군과 맞섰습니다. 폴란드 군인 출신이었던 그는 2차 세계대전 사상 최대규모의 군사 봉기로 뽑히는 ‘바르샤바 봉기’에 참여했습니다. 

항상 투쟁의 현장을 떠나지 않았던 그는 전쟁이 끝난 뒤, 이스라엘에서 주택공급부 측량사로 일하며 평범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은퇴할 무렵, 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은퇴 후 예술을 다시 공부한 그는 자신의 끔찍한 경험을 ‘조각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그의 조각상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세계 각지에서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트레블링카 수용소의 마지막 생존자로서 나치의 만행을 전세계에 증언했던 사무엘 빌렌베르크. 지난 2월 19일, 그는 향년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그날의 비극을 경험한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언제나 당부하던 말처럼 이 비극의 역사는 절대로 잊혀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SBS 스브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