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차가운 바닷속에서 74년…조세이 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천도재'

김영아 기자 youngah@sbs.co.kr

작성 2016.02.02 16:11 수정 2016.02.02 20:39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차가운 바닷속에서 74년…조세이 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천도재
 일본 야마구치(山口)현 우베(宇部)시 도코나미(床波) 해안에 환기구 '피아'(Pier)가 솟아 있다. 이 환기구는 1942년 2월 3일 수몰사고가 발생한 조세이(長生) 탄광의 흔적이다.일본 야마구치현 서남부에 우베라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일본의 오래된 탄광 도시입니다. 우베시 남단 도코나미 해안엔 바다 위로 파이프처럼 생긴 콘크리트 구조물 두 개가 섬처럼 떠 있습니다. 1940년대 일본 최대 탄광 가운데 하나였던 조세이(長生) 해저탄광의 환기구입니다. 바다 밑 탄광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공기가 드나들게 만든 통로입니다.

1940년대 우베시에는 59개의 탄광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조세이 해저탄광은 열악한 작업조건으로 악명을 떨치던 곳입니다. 거미줄처럼 얽힌 막장이 해저 10여km에 뻗어 있고, 갱도가 너무 얕아 지나가는 배의 엔진 소리가 들릴 정도였습니다. 높은 실내온도 때문에 노동자들은 반라 상태로 채탄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상존하는 사고 위험 때문에 일본인은 좀처럼 일하려 하지 않던 곳입니다.

그런데도 조세이 탄광은 당시 59개 우베 탄광 가운데 생산량 3위를 자랑했습니다. 조선인 징용자들 덕분입니다. 일제와 탄광회사는 조세이 탄광에 조선인 징용자들을 강제 투입했습니다.

조선인 징용자들은 3.6m 높이 울타리로 둘러싼 숙소에 감금돼 하루 12시간 씩 2교대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임금은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탈출을 막기 위해 회사 측이 모든 임금을 강제로 저축시킨 탓입니다. 회사는 용돈 명목으로 지급하는 약간의 현금조차 지급하기 않았습니다.

1942년 2월 3일 오전 9시~10시 사이. 위태롭던 갱도가 결국 무너졌습니다. 무리한 채탄작업 때문에 바닷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탓입니다. 작업 중이던 노동자 183명이 순식간에 무너진 갱도 아래 깔려 숨졌습니다. 조선인 징용자 136명이 희생됐습니다. 이들을 감독하고 관리하던 일본인도 47명 함께 사망했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지 만 74년이 지났지만, 희생자 183명은 지금도 여전히 무너진 갱도 아래 수장돼 있습니다.

사고 당시 바다 위로 솟아 있던 환기구를 통해 3일간 물기둥이 솟구쳐 올라왔다고 목격자들은 전합니다. 갱도 입구 바닷가에는 유가족과 징용자들이 몰려나와 오열했습니다. 하지만 탄광회사는 희생자들을 구조하기는커녕 갱도로 들어가는 입구를 널빤지로 막아버렸습니다. 일제는 경위를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기는 대신 쉬쉬하며 사고를 덮기에 급급했습니다. 전쟁 중이던 국민들의 사기가 떨어질까 두려웠던 겁니다.

탄광회사와 정부가 손을 잡고 수십 년 동안 은폐해 온 진실을 드러낸 건 평범한 일본 시민들이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 우베여고 역사교사였던 야마구치 다케노부 씨가 논문을 발표하면서 조세이 탄광의 비극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후 양심적인 일본 학자들이 가세해 조사를 이어갔습니다. 1991년엔 뜻을 같이 하는 일본 시민들이 모여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직접 한국인 희생자들의 유족을 수소문 해 1993년부터 함께 위령제를 지내 왔습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유족들의 여비까지 지원하며 해마다 행사를 주도했습니다. 사고 현장 인근에 작은 추도 광장을 조성하고 2013년엔 추도비도 세웠습니다.

기금은 회비와 기부금을 모으고 대출까지 받아 마련했습니다. 그 과정에 일본 정부는 물론, 한국 정부의 역할은 없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모르는 일이라며 철저히 외면했고, 한국 정부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그저 지켜만 봤습니다.일본 야마구치(山口)현 우베(宇部)시에서 지난달 30일 조세이(長生) 탄광 수몰사고 희생자를 위한 천도재가 열렸다.양심적인 일본 시민들이 힘겹게 이어 온 위령 행사에 올해 처음으로 한국 불교계가 동참했습니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소속 17개 종단 스님들이 현장을 찾아 함께 위령제를 지내고 천도재를 올린 겁니다. 천도재는 한 많은 영혼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억울함을 달래서 왕생극락하기를 비는 불교 의식입니다.

국적과 종교를 떠나 위령제에 참여한 이들의 바람은 같습니다. 이제라도 사고 경위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를 벌이고 책임질 사람에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분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시급한 건 희생자들의 유골 발굴입니다. 한 많은 인생을 살다 억울하게 생을 마친 분들을 차가운 바닷물 속 진흙더미 아래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조세이 탄광의 비극을 알리는 데 앞장서 온 일본 시민단체는 지난해부터 유골 발굴을 위해 갱도의 위치와 입구 등을 찾는 조사에 나섰습니다. 유골 발굴은 막대한 비용과 노력이 드는 일입니다. 기술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나선다면 못할 게 없습니다. 돈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와 성의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공동대표인 이노우에 요코 씨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 정부 뿐 아니라 한국 정부와 모든 한국인이 함께 말입니다.일본 야마구치(山口)현 우베(宇部)시에 있는 조세이(長生) 탄광 추도광장의 희생자 위패.“일본이 저질러 온 ‘강제연행·강제노동’의 역사를 미래지향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유골 수습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유골 수습이라는 사업을 통해서 돌아가신 분들의 존엄성을 회복시키고 한반도와의 강건한 유대와 깊은 우호를 이뤄가기 위한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일본 정부가 역사적 사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반성의 증표이자 일본 정부와 일본인의 양심의 증표로서 이곳 조세이 탄광의 유골수습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한국 정부의 협력 속에서 양국의 공동 사업으로 완수해 주기를 바랍니다.”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