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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의사의 '한글 사랑'…공병우 박사의 '삶'

나는 내 식대로 행복하게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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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식대로 행복하게 살아왔다
나는 내 식대로 행복하게 살아왔다
나는 내 식대로 행복하게 살아왔다




최초의 국산 워드프로세서 '아래아한글'을 개발한 이찬진. 그와 동료들이 연구할 때 부터, 그들에게 지원을 아까지 않았던 노인이 있습니다. 이 노인은 1980년대 당시 여든이 넘은 나이에 매킨토시 컴퓨터를 직접 활용하며 한글의 글자꼴을 개발하고, 국내 최고의 프로그래머들과 교류하며 한글의 과학화에 앞장선 혁신적인 인물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노인은 컴퓨터를 공부한 프로그래머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언어를 연구했던 언어학자도 아닙니다. 이 노인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는 바로 한글의 과학화를 이끌었던 '공병우 박사‘입니다. 그의 본 직업은 프로그래머도, 언어학자도 아닌 '안과의사'입니다. 일본에서 의학을 전공 한 뒤 한국 최초의 안과의사가 된 공병우 박사. 1983년 서울에서 병원을 연 그는 치료를 위해 찾아온 한글학자 이극로 선생을 만나면서 한글과 연을 맺었습니다.

사실 공병우 박사는 일본 학교에서 의학공부를 했기 때문에,정식으로 한글을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한글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하며 한글을 합리적인 문자체계라 생각한 그는, 한글을 전국에 보급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는 국내 최초로 한글로 된 시력 검사표를 만들었고 눈병에 대한 정보를 한글로 써 무료 배포했습니다. 심지어 기존의 한글 타자기에 한계를 느낀 그는 직접 타자기를 개발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렇게 실용성에 중심을 두고 개발에 집중한 결과 1948년, 한국 최초로 세벌식 한글 타자기를 제작했습니다. 그의 타자기는 매우 효율적이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대부분의 군관련 문서는 그의 타자기를 통해 쓰여졌습니다.

공병우 박사는 꾸준히 한글 과학화를 위해 힘썼습니다. 1988년에는 직접 한글문화원을 설립하며, 한글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언제나 환자를 생각하는 참된 '의사'였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고, 시각장애인 인권을 위해 싸우는 운동가였습니다.

여든이 넘은 나이까지 연구를 멈추지 않았던 공병우 박사는 1995년 3월 7일,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누구보다 한글을 사랑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를 생각한 공병우 박사. 그는 끝까지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 말했습니다. 

(SBS 스브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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