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삼성은 왜 바이오의약품에 뛰어들었을까?

한세현 기자 vetman@sbs.co.kr

작성 2015.12.26 12:0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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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삼성은 왜 바이오의약품에 뛰어들었을까?
‘삼성'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아마 휴대전화나 TV와 같은 가전제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반도체나 건설사 혹은 리조트를 떠올리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럼 ‘제약회사 삼성’은 어떤가요? 아직은 낯설고 어색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머지않아 ‘제약회사 삼성’으로 불릴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3월 열린 ‘2015년 보아오포럼’ 개막 연설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IT, 의학, 바이오의 융합을 통한 혁신에 큰 기회가 있을 겁니다.” 이 연설에서 방점은 바로 ‘바이오’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여기서 바이오란 정확히 ‘바이오의약품’을 의미합니다. ‘바이오의약품’은 생체가 가진 단백질이나 세포를 이용해 만든 의약품으로, 최근 제약업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분야입니다. 삼성은 이미 세계적 IT 기업인 동시에 (메르스 파동으로 곤욕을 치르긴 했지만)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종합병원인 ‘삼성의료원’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부회장의 이 연설은 ‘바이오의약품’ 산업에 뛰어들어 이미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IT, 의학 기술을 더해 시너지 효과를 내겠단 뜻으로 풀이됩니다.
 
실제로 ‘바이오의약품’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는 인사와 대규모 투자 통해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신약 개발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고한승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고, 지난 21일엔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인천 송도에 세계 최대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장 착공식도 열었습니다. 과연 ‘바이오의약품’은 삼성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요?
 
● 211조 원(바이오의약품) vs 97조 원(메모리반도체)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바이오의약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2010년부터입니다. 당시 삼성은 태양전지와 자동차용 배터리, 발광다이오드(LED), 의료기기 등과 함께 바이오의약품을 신수종 산업(미래 산업을 이끌어갈 유망한 사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통해 2020년까지 매출 50조 원, 고용창출 4만 5,000명을 달성하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의학계와 제조업계의 반응은 회의적이었습니다. 바이오의약품은 공산품과 달리 상당한 수준의 노하우와 기술이 축적돼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데다, 무엇보다 세계적 제약회사들의 만든 시장 장벽이 너무 높단 지적이었습니다. “기계를 만지던 엔지니어가 갑자기 약을 만들 수 있겠느냐"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컸던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그룹의 사운을 걸고 바이오의약품 산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나날이 성장하는 바이오의약품의 시장 규모입니다. 삼성이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시장 규모는 825억 달러, 97조 원가량입니다. 반면, 바이오의약품 시장 규모는 1,790억 달러, 210조 원으로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2배가 넘습니다.
 
이처럼 바이오의약품 시장이 커진 건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됐기 때문입니다. 유엔경제사회국(UNDESA)이 펴낸 '세계인구전망 2015년 개정판'에 따르면, 전 세계 60세 이상 인구는 현재 8억 9,790만 명(전체 12.3%)에서 2030년 18억 2,750만 명(21.5%), 2100년엔 31억 6,960만 명(28.3%)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여기에 최근 중국와 인도를 중심으로 ‘비싼 약값’을 감당할 부유층이 확대되며 바이오의약품에 대한 수요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삼성이 사운을 걸고 바이오의약품 시장에 도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 바이오의약품 VS 화학합성의약품
도대체 ‘바이오의약품’이 무엇이기에, 삼성은 이토록 ‘바이오의약품’에 목을 맬까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약은 대부분이 ‘화학합성의약품’입니다. 말 그대로 화학물질을 결합해 만든 약으로, 우리 몸에 들어와 화학적 반응을 유도해 원하는 효과를 내게 됩니다. 특정 환자군을 대상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폭넓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작용이 많고 암이나 당뇨, 아토피와 같은 자가면역질환엔 적용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게 바이오의약품입니다. 바이오의약품은 바이오(생체)란 뜻처럼, 화학물질이 아닌 세포와 단백질, 유전자 등 생명체를 구성하는 물질을 이용해 약을 만듭니다. 그렇다 보니 부작용이 적고, 앞서 말씀드린 암이나 당뇨, 아토피, 류머티스성 관절염 같은 자가면역질환, 유전질환 치료에 효과가 뛰어납니다. 이런 장점으로 바이오의약품은 세계적으로 중요한 산업으로 떠올랐습니다.
 
● 삼성, 바이오의약품 ‘생산’과 ‘개발’ 이원화

다시 삼성 얘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삼성의 ‘바이오의약품’ 진출 전략은 ‘생산’과 '개발'로 이원화돼 있습니다. 쉽게 말해, 약을 만들어내는 '공장'과 약을 개발하는 '연구실'이 나뉘어 있는 겁니다.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하는 공장 역할은 ‘삼성 바이오로직스’가 맡습니다. 바이오의약품을 개발하는 연구실 역할은 ‘삼성 바이오에피스’가 담당합니다. 두 회사 가운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회사는 약품을 생산하는 ‘삼성 바이오로직스’입니다.
 
삼성 바이오로직스는 지난 2011년 4월 창립됐습니다. 2년 뒤인 2013년에 연간 바이오의약품 3만 리터를 생산할 수 있는 제1공장을 세웠고, 올해 2월엔 다시 15만 리터 규모의 제2공장도 준공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1일엔 박근혜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제3공장 착공식까지 열었습니다. 제3공장엔 공사비 8,500억 원이 들어갔으며 오는 2018년 완공되면 연간 18만 리터의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삼성 바이오로직스는 일 년에 바이오의약품 36만 리터를 생산할 수 있게 돼, 스위스 '론자'(26만 리터), 독일 '베링거 인겔하임'(24만 리터)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큰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장으로 올라서게 됩니다.
 
이처럼 삼성은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바이오에피스'보다, 다른 제약회사로부터 약품 생산을 위탁받아 약을 대신 제조하는 생산전문업체(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 CMO) ‘바이오로직스'를 먼저 육성하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왜 삼성은 약품 개발보다 생산에 집중하고 있을까요?
 
● 강점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바이오산업에 도전
생명체는 매우 복잡하고 개인별로 독특한 생체반응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약을 개발해 환자들에게 투여될 때까지 오랜 연구와 검증, 시험적용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기 때문에 최대한 안정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 투자와 장시간의 시행착오는 불가피합니다. 더욱이 바이오의약품 시장은 세계적 제약회사들이 이미 장악하고 있어 진입 장벽이 매우 높습니다. 삼성도 이런 문제를 모를 리가 없습니다. 삼성이 아무리 뛰어난 기업이라고 해도, 세계적 제약회사들이 백 년 이상 쌓아온 노하우를 단번에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대신, 삼성엔 다른 제약사들이 갖지 못한 강력한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공정과 플랜트 설비 기술입니다.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을 짓고 최적화 작업을 거쳐 상업가동에 들어가기 까지는 보통 5년 정도 걸립니다. 하지만, 삼성은 이미 확보한 높은 플랜트 설비 기술력을 토대로 이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또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정은 매우 체계적이고 엄격한 위생관리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반도체 공정’과도 유사합니다. 아시다시피 삼성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생산업체입니다. 반도체 생산 기술을 바이오의약품 산업에도 적용했습니다. 한마디로, 장점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쓴 겁니다.
 
실제로 처음 만든 제1공장은 미국식품의약국(FDA) 생산 승인을 취득하면서 단 한 건의 결점도 지적받지 않았습니다. 이는 제2, 제3 공장 착공의 원동력이 됐고,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지며 스위스 ‘로슈’ 등 세계적 제약회사들과 생산계약을 이끌어내는 성과도 올렸습니다.
 
● 바이오의약품 ‘생산’과 ‘개발’ 회사 통합?

바이오의약품 생산 능력을 인정받으며 최근 업계에선 삼성이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하는 ‘바이오로직스’와 의약품을 개발하는 ‘바이오에피스’ 두 회사를 합칠 거란 소문이 돌았습니다. 생산과 개발을 함께 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 뒤따랐습니다. 더욱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에피스 지분 90.3%를 보유한 대주주라는 점에서 중장기적으로는 두 회사가 합쳐질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삼성은 이런 전망을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오히려 바이오의약품 ‘생산’과 ‘개발’을 나눠서 운영할 것이며, 각각 두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실제로 삼성그룹의 한 고위관계자는 "바이오 분야에서는 보안 의식이 매우 높다. 개발과 제조를 한 회사에서 하면 정보 유출을 우려해 다국적 제약사들이 위탁생산을 맡기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삼성 관계자는 "지배구조상 지분관계가 지금처럼 된 것일 뿐 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에피스는 실질적으로 모자회사 관계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바이오에피스의 고한승 대표가 연말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해 로직스의 김태한 사장과 동등해졌다는 점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 멀고도 험한 '세계적 제약사'로 가는 길
생산과 개발을 함께 하든 혹은 따로 하든, 어느 경우든 삼성이 세계적 제약회사로 발돋움하는 길은 멀고도 험해 보입니다. 한 수의과대학 기초의학 전공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이오의약품 산업은 IT·전자산업과 달리 매출 규모가 작고 성과를 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리고 세계적인 세계회사들이 쌓아둔 진입 장벽이 매우 높다. 이 때문에 신약은 만들어 보지도 못하고 위탁 생산으로 투자비만 건지는 선에서 그칠 수 있다”
 
또 다른 생명공학 교수도 “바이오의약품 생산 분야는 단순히 공장만 잘 짓는다고 대단한 성과가 나오는 게 아니다. 또 사장이 유전공학, 화학공학 박사라고 해서 좋은 약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임직원들의 노하우가 쌓여야 하는데 삼성은 그런 경험이 없다. 우수한 인력을 얼마나 빨리 확보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저도 이번 취재를 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업을 출입하는 경제부 기자 관점에선 미래 먹을거리를 찾아 나아가는 ‘방향’ 만큼은 적절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수의사이자 기초의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 입장에서 볼 땐, 기대보다는 우려가 큰 게 사실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바이오의약품 생산과 개발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갑니다. 또 전 세계 의료인과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도 필요합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의료인과 환자들이 ‘제약회사 삼성’이란 생소한 브랜드가 만든 약을 선택할지는 의문입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1980년대 삼성이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입장에서 반도체 사업에 사활을 걸었던 것처럼, 단기적인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그룹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과 신뢰를 보내야 바이오의약품 사업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과정을 시청자 여러분과 함께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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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과정에서 장인진 교수(서울대 의과대학 임상약리학 교실), 강주섭 교수(한양대 의과대학 약리학 교실), 정규식-박진규 교수(경북대 수의과대학 병리학교실), 최성균 박사(대구경북과학기술원) 외 전문가 5명의 자문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