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명예의 전당에 오른 '전길남'…그의 집념

권재경 에디터, 하대석 기자

작성 2015.11.13 21:24 수정 2015.11.15 14:5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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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1월 13일은 세계최초의 웹페이지 ‘월드와이드웹(WWW)’이 등장한 날입니다. 영국의 과학자 ‘팀 버너스 리’가 발명했습니다.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는 2012년, ISOC(인터넷 소사이어티)가 만든 ‘인터넷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명예의 전당 목록에서 익숙한 ‘한글 이름’이 보입니다. 팀 버너스 리와 함께 2012년 인터넷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전길남’. 그는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선구자입니다. 그의 업적이 무엇이길래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남긴 걸까요? 
1979년 한국정부는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국적 과학자를 유치하는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재일교포로 미국 NASA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던 전길남 박사는 이를 계기로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 정부가 그에게 맡긴 연구는 ‘수출용 컴퓨터 개발’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IT 불모지 한국에 꼭 필요한 건 컴퓨터 개발보다 ‘네트워크 구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뚜렷한 형태도, 수익모델도 없는 네트워크 연구에 정부는 무관심했습니다. 결국 전남길 박사는 컴퓨터 개발을 하는 와중에 홀로 네트워크 연구까지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1982년, 구미 전자기술연구소와 서울대학교를 연결하는 원거리 네트워크 교신에 성공합니다. 아시아 최초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을 구축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곧이어 최초의 국산 개인컴퓨터, SSM16 개발까지 성공한 전길남 박사. 컴퓨터 개발까지 끝내자 전길남 박사는 본격적인 네트워크 구축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박사는 먼저 한국의 인터넷을 미국 네트워크에 연결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선 핵심장비인 ‘라우터’가 필요했지만, 미국에서는 라우터 판매를 거절했습니다.
그 당시 인터넷은 군사기술로 여겨졌기 때문에, 미국과 동맹을 맺은 일부 국가만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북한 중국 등 공산국가와 가까운 우리나라의 경우 기술 유출이 우려돼 거절한 것입니다. 하지만 전 박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라우터 장비의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대체하는 기술로 ‘직접’ 미국 네트워크와 연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한국의 독자적인 기술 발전은 폐쇄적인 인터넷망이 전 세계에 공개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전 박사는 카이스트 교수로 재직하며 우리나라 IT 산업의 주축이 된 인재를 양성했습니다. 한국최초 인터넷 회사 ‘아이네트’ 창업자 허진호, 국내 최대 게임회사 넥슨 창업주 김정주, 국민 게임 리니지를 개발했던 XL게임즈 대표 송재경 등이 모두 전남길 박사의 제자입니다.
현재 세계적인 IT강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 이 눈부신 성과의 토대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네트워크 기술에 몰두한 ‘전길남’ 박사의 집념이 있었습니다.






 

(SBS 스브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