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라서 몰매 맞아 죽은 男, 대통령을 움직이다

작성 2015.11.13 07:18 수정 2015.11.13 21:4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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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미국 와이오밍 주 라라미의 외곽 지역. 그곳을 지나가던 행인이 피범벅이 된 채 울타리에 묶여있는 청년을 발견합니다. 청년은 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나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닷새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누군가에게 심한 구타와 고문을 당한 채 허망하게 죽은 학생의 이름은 매튜 웨인 셰퍼드. 사망 당시 그의 나이는 불과 21세였습니다. 대학교 환경위원회 대표로 선출되는 등 누구보다 사교적이고 이해심이 많았던 매튜가 왜 이런 구타를 당하고 목숨까지 잃었던 걸까. 

바로 그가 ‘게이’였기 때문입니다. 매튜를 죽인 피의자들은 ‘동성애 혐오주의자’들로 술집에서 매튜를 만난 뒤 의도적으로 접근,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차에 태운 뒤 살해했습니다. 미국 전역을 들썩이게 한 매튜의 죽음.

하지만 이 논란은 그가 죽은 후에도 계속 됐습니다. 한 침례 교회 교인들이 반 동성애를 외치며 매튜의 장례식장에서 맹렬한 시위를 벌였고, 이에 맞서 매튜의 친구들은 천사 복장을 한 채 말없이 에워싸는 이른바 ‘엔젤 액션’을 벌였습니다.

피의자들은 종신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하지만 ‘성 소수자’도 증오범죄 보호법의 대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미국의 증오범죄 피해자 보호법은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 피살을 계기로 제정됐습니다. 하지만 인종과 피부색, 종교 등만 인정됐고 ‘성 소수자’는 보호대상에서 제외돼 있었습니다. 2007년, ‘매튜 셰퍼드법’ 제정이 추진됐으나 당시 대통령 조지 부시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됐습니다. 

그의 죽음이 잊혀져 갈 무렵인 2009년, ‘매튜 셰퍼드-제임스 버드 주니어 증오범죄 금지법안’이 통과됐습니다. 서명을 한 사람은 오바마 대통령. 하지만 법안이 마련된 이후에도 이른바 ‘동성애 혐오주의자’들의 범죄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2010년 성 소수자 증오범죄가  2009년에 비해 13% 증가했다고 보도했습니다. 2013년 FBI 통계에 의하면 증오 범죄 중 20.2%가 피해자의 성적 지향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단지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피해를 입은 겁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성 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한 파격행보는 계속 됐습니다.

“우리 모두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한다. 이 일이 옳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더 안전하게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국정연설에서는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성 소수자인 ‘LGBT’의 인권 문제를 언급하면서 이들의 인권을 강조했습니다. 지난 4월에는 성 소수자를 ‘치료 대상’으로 보고 치료하는 것을 금지하고, 7월에는 트랜스젠더 채용 차별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습니다. 

“평등을 향한 우리의 여정에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우리는 미국을 좀 더 완벽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연방 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판결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난 10일,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동성애자 잡지의 표지모델이 됐습니다. 

“우리는 모두 동등하게 태어났고 누구도 아메리칸 드림에서 배제돼서는 안 된다.”

차별에 대한 반대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라는 오바마. ‘제 2의 매튜’를 만들지 않기 위한 그의 행보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SBS 스브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