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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독일제에 웬 중국어? 줄줄 새는 소방 예산

[취재파일] 독일제에 웬 중국어? 줄줄 새는 소방 예산

김지성 기자 jisung@sbs.co.kr

작성 2015.09.12 16:2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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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이 국민안전처에서 제출받은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지난해 소방방재청(당시는 국민안전처가 설립되기 전이었음)이 국무조정실로부터 관련 비위를 통보 받고 중앙119구조본부(이하 중구본) 등의 장비 구매 내역을 자체 조사한 보고서입니다. 2011년 1월부터 2014년 6월까지 3년 6개월 동안의 구매 내역이 조사 대상이었습니다.

국민안전처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수사를 의뢰했고, 경찰은 올해 8월 말 소방공무원 15명과 납품업체 대표 4명을 업무상 배임과 허위 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를 적용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별도로 감사원 감사도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아직 기소되기 전인 만큼 법원 판결 등을 통해 확정된 내용은 아님을 미리 밝혀둡니다. 해당 당사자의 반론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 규격 변경하고 후순위 업체와 계약, 그러고도 '짝퉁' 받아

중구본은 2013년 5월 독일 한 회사의 무인항공기 사양서와 견적서를 받았습니다. 카메라 등을 장착해 재난 현장에서 유독물질이 있는지, 붕괴 위험이 있는지 탐색하는 장비입니다. 중구본이 독일 회사로부터 직접 받은 게 아니라, 중간 업체를 통해 받았습니다. 국민안전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무인항공기 제조·판매와 전혀 관련 없는 스쿠버장비 판매업체'를 통해서였습니다.

중구본은 이 업체가 제출한 사양서를 토대로 규격 일부를 변경해 최종 규격서를 마련했습니다. 예를 들어, 비행체 무게 총량을 당초 10㎏에서 20㎏으로, 비행 시간을 20분에서 40분으로 변경하는 식입니다. 아무래도 사양서를 제출한 회사의 제품이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낙찰 과정도 문제였습니다. 중구본은 응찰 결과 1~4순위 업체를 놔두고 5순위 업체와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규격 충족 불가', '납품 계획서 미제출' 등 계약 거부 이유도 여러 가지였습니다. 이 가운데 4순위 업체는 상품안내서(카탈로그)상 비행 시간이 문제가 되자 "배터리를 추가해 규격대로 40분으로 맞추겠다"고 확약서를 제출하겠다고 했는데도 상품안내서에 30분으로 돼 있다는 이유로 부적합 통보를 받았습니다. 반면 5순위 업체는 역시 상품안내서에 탑재 중량이 입찰 기준과 다르게 기재돼 있었는데도, "입찰 기준에 맞게 공급하겠다"는 확약서를 받고 적합하다고 결정했습니다. 똑같이 확약서를 제출하겠다고 했는데,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됐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제대로 된 제품이 납품됐을까요? 국민안전처의 자답(自答)은 "아니오"였습니다. 무인항공기의 내부를 들여다보니 군데군데 중국어 표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계약 내용과 다른 제품이 납품된 겁니다. 독일 제품이 아니라 '메이드 인 타이완'이었고, 제품인증서도 중국 광둥성 소재 회사 것이었습니다. 배터리도, 충전기도, 컨트롤러도 계약 내용과 달랐습니다. 국민안전처는 자체 보고서에서 아예 "짝퉁 제품"이라고 명기했습니다. 무인항공기의 낙찰 가격은 1억 4천만 원, 하지만 국민안전처는 이 '짝퉁 제품'은 부가세와 이윤을 포함해도 4천만 원이면 충분히 구입이 가능하다고 적시했습니다. 세금 1억 원이 낭비된 셈입니다.

수중정밀영상탐색기와 수중추진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특정 회사의 제품 사양을 바탕으로 규격서 기준을 정했고, 납품된 제품 역시 계약 내용과 달랐습니다. 제대로 된 가격 조사도 없었다는 것이 국민안전처의 판단입니다. 무인항공기, 수중탐색기, 고무 보트, 산악 장비 등을 포함해 구조 장비 구매에서 낭비된 예산만 4억 6천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국민안전처는 산정했습니다.

● 특수소방차량 구매에 63억 낭비…보호복 규격에 '내화성' 빼기도

특수소방차량은 고가(高價)의 장비인 만큼 낭비된 예산도 더 많았습니다. 다목적 제독차 3대를 67억 5천만 원에 구매했는데, 국민안전처가 추후 자체 조사한 적정 가격은 35억 2천만 원이었습니다. 두 배 가까이 비싸게 주고 산 셈입니다. 화재가 났을 때 지붕이나 벽을 부수고 건물 안에 물을 뿌리는 무인 파괴 방수차의 경우 2대에 15억 원이면 될 것을 29억 3천만 원이나 지급해 14억 3천만 원의 국고 손실을 야기했습니다. 다목적 굴착기 3대 도입하는 데 9억 8천만 원, 장비 운반차 6대에 4억 8천만 원, 고성능 화학차 2대에 2억 3천만 원의 예산을 낭비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모두 1곳 또는 2곳에서만 견적을 받아 처리하다 낭비를 초래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수소방차량 구매 과다 지출 내역(자료: 국민안전처, 단위: 억 원)
구분 구매 가격 적정 가격 차액
다목적 제독차(3대) 67.5 35.2 32.3
무인 파괴 방수차(2대) 29.3 15.0 14.3
다목적 굴착기(3대) 17.5 7.7 9.8
장비 운반차(6대) 21.5 16.7 4.8
고성능 화학차(2대) 9.8 7.5 2.3
합계 145.6 82.1 63.5
  
소방관들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2013년 화학보호복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최초 구매안에는 '내화성이 있을 것'이라는 규격이 포함됐는데, 막상 구매를 의뢰할 때는 이 규격이 빠진 것입니다. 내화성(耐火性)은 말 그대로 불에 견디는 성능을 말합니다. 국민안전처는 특정 업체에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이 규격을 뺀 것 아닌지 의심이 된다고 밝혔습니다.



● "구매 전문성 부족…장비 구매 부서 신설"

어떻게 이런 일들이 발생하게 됐을까요? 국민안전처는 회계·장비 분야 전문성을 가진 소방 공무원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분석했습니다. 특히 중구본은 대형·특수 재난사고에 대비해 설립된 구조 전문 조직으로, 대다수가 구조 전문가이기 때문에 장비 구매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대원은 전무(全無)한 실정이라고 국민안전처는 밝혔습니다.

중구본의 한 소방공무원은 "재난 현장에 출동하는 대원이 장비까지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며 "여러 업체에 일일이 견적을 요구하고 적정 가격을 조사하기는 불가능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국민안전처는 올해 중구본에 장비 구매 전문 부서를 신설했습니다.

'사후 약방문' 격인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개선이 돼서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아쉬움은 큽니다. 국민안전처가 이번 자체 조사를 통해, 중구본의 3년 6개월 치 구매 내역에서만 밝혀낸 국고 손실액이 70억 원이 넘습니다.

일선 소방관들은 개인 돈을 들여 장갑을 사서 쓰거나 대원들끼리 방화복을 돌려 입기도 합니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지급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드러난 70억 원이면 장갑은 7만 켤레, 방화복은 1만 2천 벌을 살 수 있습니다. 앞으로라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보다 소방관들의 안전을 위해 소방 예산이 똑바로 사용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시는 이런 보도가 없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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